인도에서 딱 하나의 관광지만 선택할 수 있다면?
인도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소가 어디였냐고 묻는다면 당장 떠오르는 것이 몇 가지 있다. 아잔타와 엘로라의 거대한 석굴, 도시 그 자체가 인류의 역사인 함피, 언제까지고 머물 수 있을 것만 같은 레와 라다크의 차가운 들판들... 그것들 중에 하나를 고르기란 정말 어렵다. 하지만 질문을 좀 바꿔서, 인생의 마지막 인도 여행에서 단 하나만을 보고 돌아와야 한다면 어떤 것을 선택하겠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단번에, ‘타지마할’을 꼽을 것이다.
처음 타지마할을 접하게 것은 중학교 시절 세계사 교과서를 통해서였다. 교과서에 수록된 사진 한 장과 짧은 몇 문단은 타지마할의 웅장함을 상상해보기에 터무니없이 부족한 설명이었지만, 갖가지 미사여구로 타지마할을 설명하셨던 세계사 선생님의 열성적인 강의 덕분에 그때부터 나는 타지마할에 대한 환상을 갖게 되었다. 온 마음을 다해 사랑했던 부인을 추모하고 기리기 위한, 세상 누구도 아닌 단 한 사람 뭄타즈 마할만을 위해 만들어진 아름답고 거대한 무덤 타지마할. 타지마할 전체를 덮은 대리석으로 인해 하루 종일 신비하고도 찬란한 빛을 발산한다는 이 로맨틱한 건축물을 처음 활자로 접했던 열네 살 그때부터, 어쩌면 인도를 향한 나의 막연한 동경이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무굴제국의 황제였던 ‘샤 자한’은 아내이자 왕비였던 ‘뭄타즈 마할’의 죽음을 추모하기 위해 22년에 걸쳐 타지마할을 만들었다. 샤 자한은 뭄타즈 마할을 잃고 난 이후 거의 제정신이 아닐 정도로 그녀를 그리워했으며, 자신의 모든 부귀영화를 아내를 위해 사용하겠다고 다짐한 후 수 십 년에 걸친 거대한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타지마할의 건축에는 엄청난 숫자의 인도의 기능공들이 투입되었고, 샤 자한은 자신의 대외적 능력을 한껏 발휘하여 유럽과 아시아의 유명한 건축가들을 모두 초청해 타지마할의 설계에 대한 조언을 얻었다. 타지마할에 사용된 모든 재료들은 반드시 샤 자한의 손을 통해 꼼꼼하게 점검된 후에야 비로소 건축에 사용될 수 있었고, 그 재료들 역시 아시아와 중동 각지에서 최고급으로 엄선해온 것임은 말할 것도 없다. 타지마할의 모든 것을 완벽한 대칭으로 만들고 싶어 했던 샤 자한의 요구에 국가의 기반이 뿌리째 흔들리고 공사 중에 수많은 장인들이 목숨을 잃어야 했지만, 이 과정을 통해 완성된 타지마할의 자태는 혀를 내두를 정도로 아름답기 그지없다. 죽은 왕비의 무덤을 위해 국가 재정 전부를 투자했던 샤 자한을 지금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겠지만, 샤 자한의 무모함과 욕심으로 인해 완성된 ‘타지마할’은 인도를 대표하는 건축물이자 인도의 가장 큰 관광자원으로 톡톡한 역할을 수행 중이다.
일생을 통틀어 어떤 건축물을 보고 소름이 끼칠 정도의 아름다움을 실감하게 되는 경우가 몇 번이나 있을까. 흙빛 성벽 안을 넘어, 샤 자한과 뭄타즈 마할이 잠들어있는 빛나는 무덤 ‘타지마할’을 마주했을 때가 나에게는 바로 그런 순간이었다. 아직 해가 채 뜨지 않아 어스름히 피어 올라와있는 냉기와 그를 감싸는 안개, 그리고 신화 속에서나 존재할 법한 몽환적인 자태로 홀로 하얗게 반짝이는 타지마할의 모습. 타지마할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순간, 너무나 당연하게도 할 말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아그라에 도착해서 타지마할에 오기까지 겪었던 온갖 혼란스러움을 단번에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매연과 경적소리로 진동하는 아그라의 한 복판, 타지마할만이 그곳에서 멀리 떨어져 전혀 다른 세상에 존재하고 있었다. 출입구에서부터 먼저 가기 위해 옥신각신하던 인도인 무리들이 나를 앞질러가며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 어떤 소음도 지금, 타지마할을 마주하고 있는 이 순간을 방해할 수는 없었다. 책 속의 글과 사진을 통해 타지마할을 보고 또 보며 마음속 깊숙한 곳에 담아두었던 시간들이 한꺼번에 스쳐 지나갔다. 정말 대자연에 견줄만한 아름다움이 타지마할에 존재하고 있었다.
타지마할 주변을 이루고 있는 아름다운 정원과, 타지마할 동쪽과 서쪽에 위치하고 있는 모스크 형식의 영빈관을 구경하며 시간을 보냈다. 안개와 함께 새벽이 걷히고 대리석이 햇빛을 받기 시작하는 아침이 다가오니 타지마할이 한층 더 밝게 빛을 내고 있었다. 타지마할은 새벽부터 자정까지 날씨와 시간에 따라 십 수 가지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고 한다. 저녁 늦게까지 아그라에 있을 수 없어 그 모습을 모두 볼 수는 없겠지만, 하루를 전부 타지마할에 쏟고 싶은 마음에 타지마할의 아름다운 돔이 가장 잘 올려다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다시 타지마할을 감상했다. 수 백 년의 시간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대리석 바닥 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타지마할을 바라보며, 그 어떤 그림이나 사진으로도 이 순간의 황홀한 느낌을 담아낼 수는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타지마할과의 첫 만남이 곧 마지막 만남이 될 거라 생각했지만,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그 후로 몇 년에 걸쳐 수 차례 인도를 여행할 때마다 나는 예기치 않게 아그라에 들렀고 매번 타지마할을 만났다. 한국에서 온 지인을 가이드해주기 위해 혹은 인도에서 우연히 만난 소중한 인연의 동행을 위해, 그렇게 블랙홀처럼 계속해서 타지마할로 빨려 들어갔다. 그 과정에서 일반 관광객들이 자주 지나치곤 하는 타지마할 뒤편의 아름다운 광경을 발견하기도 했고, 전에는 발견하지 못했던 타지마할 내부의 소소한 즐거움 등을 마주하기도 했다. 멀게만 느껴졌던 타지마할은 그만큼 내게 아주 가까운 존재가 되어버렸지만, 애석하게도 아그라는 그렇지 못했다. 모든 유적들을 대기오염의 위협에 노출시킬 정도로 매연을 뿜어대는 릭샤들로 인해 뿌옇게 회색 공기가 내려앉은 아그라의 하늘, 타지마할을 관람하기 위해 아그라를 방문한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값싼 저질의 재료를 통해 수 십 배의 이익을 꾀하는 대부분의 상점과 시장들, 음식점들. ‘눈 감으면 코 베어 간다’라는 속담을 먼 나라 아그라에서 실감하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그라를 벗어날 수 없는 이유는, 이 곳이 '타지마할'의 도시이기 때문이다.
죽은 왕비 뭄타즈 마할을 위한 무덤, ‘타지마할’에 일생을 바쳤던 무굴 제국의 황제 샤 자한은 아그라에서 숨을 거뒀다. 말년의 샤 자한에게 주어진 것은 그의 또 다른 작품이었던 아그라 포트뿐이었다. 아들에게 왕위를 빼앗긴 상실감보다 아내가 묻힌 곳에 머물 수 없다는 서러움을 견딜 수 없었던 샤 자한은, 아그라 포트에서 타지마할이 가장 잘 보이는 ‘무삼만 버즈(포로의 탑)’를 죽을 때까지 떠나지 않았다. 샤 자한은 매일 타지마할을 바라보며 뭄타즈 마할을 그리워했으며, 잠에 들기 직전까지 타지마할을 바라보기 위해 자신의 침대 옆에 여러 개의 거울을 설치하기도 했다. 타지마할 내 뭄타즈 마할의 무덤이 있는 곳의 외문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있다. ‘세상의 끝이 오는 날, 알라의 뜻에 따라 설계된 이 아름다운 천국의 문을 통해 이 곳의 주인 또한 부활하게 될 것이다’ 다소 섬뜩한 이야기지만 타지마할의 아름다움을 생각하면 믿지 못할 내용도 아니다. 인도 전역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무질서를 자랑하는 아그라에 오로지 타지마할을 보기 위해 매일 엄청난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으니 말이다.
잿빛 도시 아그라에서 유독 홀로 밝고 찬란하게 빛나는 타지마할을 보고 있으면, 샤 자한의 타지마할을 향한 집념 또한 헛된 것은 아니었다는 생각을 한다. 타지마할을 두고 ‘황제의 눈물로 만들어진 아름다운 마법’이라 이야기했던 인도의 시인 타고르의 말이 떠오른다. 타지마할은 혼돈의 아그라를 밝히는 단 하나의 등불이자, 세기를 뛰어넘는 영원의 사랑을 꿈꿨던 한 황제의 아름다운 마지막 눈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