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민영 Dec 28. 2018

지도 밖으로 행군하면, 죽는다

인도에서는 특별히 더 주의해야 할 호기심

'인도'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해탈, 철학, 그리고 자유로운 영혼들의 나라. 반은 맞고 반은 틀리지만 어쨌든 많은 여행자들이 인도에서 원래 자신이 살던 곳에서라면 절대 할 수 없는 다양한 경험을 얻어가곤 한다. 이를테면 길거리에서 코끼리를 만나 공손하게 인사하는 것, 45도를 웃도는 한여름의 더위 속에서 뜨거운 짜이를 마시며 이열치열을 경험해보는 것이라든지 우박과 같은 비가 쏟아지는 몬순, 빼곡한 야자나무 숲 아래 흐르는 시타르 연주, 24시간 불길이 끊이지 않는 화장터. 일어나지 못할 일은 없고 하지 못할 경험은 없다. 소위 인도여행을 배낭여행의 상급, 또는 끝판왕이라 부르는 이유는 한 나라에서 극과 극을 달릴 정도의 다양한 상황과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국가는 드물기 때문이다.


 인도는 땅덩어리가 넓은 만큼 선택지가 무궁무진하며 자유도 또한 높다. 아직 개발되지 않은 곳도 많으며 특정 장소에서는 영국 독립 이전, 아니 그보다 훨씬 오래된 고대 부족의 모습을 마주할 수 있는 곳도 있다. 종종 인도여행에 흠뻑 빠져있거나 배낭여행에 자신이 좀 붙은 사람들은 호기심을 이기지 못해 조금 더 깊은 곳으로, 조금 더 위험한 곳, 금지된 구역을 향해 달려가거나 위험을 무릅쓰고 기차에서 뛰어내리는 등의 행동을 하기도 한다. 실제로 인도 하층민의 삶을 파헤쳐 보겠다고 겁 없이 사창가나 불가족천민이 사는 마을에 뛰어든 여행자, 특정 종교를 전파하겠다고 사회와 동떨어져 사는 부족민의 섬에 들어갔던 여행자도 있었다. 두 경우 모두 살아 돌아오지 못하고 결국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호기심과 목숨을 맞바꾼 경우다.


 소수의 여행자들이 위와 같은 상황에서 살아 돌아와 그 에피소드를 바탕으로 여행기를 쓰고 책을 내기도 한다. 10년 전에 유행했던 여행 베스트셀러들을 들여다보면 살아 돌아와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신기할 정도로 위험한 상황을 겪었거나 어처구니없는 허황된 이야기들이 많다. 그 책들은 하나 같이 이렇게 이야기한다. '정해진 루트를 따르지 말고 지도 밖으로 나가라,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라고. 당신이 오지 전문 여행자나 긴급구호단체의 직원, 혹은 국경없는 의사회의 일원이라면 상관없겠지만 여행자, 그것도 인도를 처음 여행하는 사람이라면 절대 하지 말아야 할 일이 바로 이것이다. 한국에서도 낯선 사람이 말을 걸면 일단 경계하며 도심 한복판이 아닌 산간지방이나 가로등 하나 없는 도로는 온 촉각을 곤두세워가며 주의하지 않는가. 인도라고 다를 것은 없다. 하지 말라는 것은 하지 말고, 가지 말라는 곳은 가지 말아야 한다. 이 기본적인 룰이 때때로 지켜지지 않는 이유는 아마 '인도여행'이라는 이미지에서 흘러나오는 자유도 때문일 것이다. 물가가 싸고 넓고 돈 몇 푼 쥐어주면 무엇이든 가능할 것 같은 나라라는 이미지 때문이다.


델리에서 남쪽으로 향하는 3A기차 안

 인도를 수 차례 여행하면서 물론 나도 죽을 고비를 넘긴 적이 많았다. 말라리아 증상 때문에 사흘 밤낮을 고생했던 적도 있었고, 정보가 없는 낯선 동네에서 동이 트기 전에 움직여 개들의 습격을 받을 뻔한 적도 있었으며, 편법을 써보겠다고 인도인과 네팔인들만 이용할 수 있는 국경을 넘으려다가 경찰에게 잡혀 호되게 혼이 난 적도 있다. 바라나시에서 난 힌두교 극단주의자들의 테러로 인해 기차가 멈춘 상황에서 군인들의 검문을 받기도 했으며 빠하르간지에서 술에 취한 일행을 말리며 큰 싸움이 붙을 뻔 한 것을 가까스로 막은 기억도 있다. 아무리 자잘한 사고라고 하더라도, 13억이 넘는 인구의 나라 한국의 서른 배를 훌쩍 넘는 땅덩어리를 자랑하는 이 인도라는 나라에서는 커다란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다. 돌이켜 보면 이런 사고들은 모두 나의 부주의로 인해 일어난 일이라고 지금까지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나는 이 에피소드들을 필두로 인도라는 여행지를 소개하고 싶은 마음은 결코 없다. 몇 몇 여행자들이 금지된 구역을 여행하고 돌아와 그에 대한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는 것을 볼 때면 참 답답한 마음이 든다. 내가 살아돌아왔다고 해서, 나는 아니었다고 해서 그 이야기를 읽고 접하는 절대 다수 또한 아무 일 없으리라는 법은 없다. 나라고 기차에서 훌쩍 뛰어내려 낯선 들판을 가로지르는 꿈, 바라나시에서 보트를 타고 하염없이 위로 아래로 향하고 싶은 꿈, 야생동물보호구역에 들어가 물소처럼 유영하고 싶은 꿈이 왜 없었겠는가. 하지만 안전하게 돌아와 다음 여행을 다시 떠날 수 있는 동력을 얻는 것이 나에겐 최우선으로 중요한 일이었기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복불복의 확률에 나의 운명을 맡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도를 그냥 아무 정보도 없이 배낭만 달랑 들고 여행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누군가의 여행기를 보고 정보를 얻든, 혹은 서점에 가서 가이드북을 사든 반드시 한 번쯤은 인도의 지도를 들여다보게 되고, 인도에 관한 책을 찾아보게 될 것이다. 어떤 방식이 되었든지 간에 본인이 선택한 책, 가이드, 정보 등이 자신의 방패라고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그 가이드의 선택에 앞서 명확한 기준을 세워야 한다. 누가 봐도 명백한 허구의 이야기인지 터무니 없는 무용담만 늘어놓은 이야기인지 판단해야만 한다. 주의나 조언을 주는 것이 아닌 사적인 이야기가 다수 섞여 있는 책을 가이드로 신봉하지는 말도록 하자. 재미로 보는 것은 상관없지만 그 이야기들을 맹신하지는 말자. 인도에 대한 무용담이 장황하게 펼쳐져 있는 책들이나 '인도는 길거리에서도 시인들을 만난다'는 문장이 깔려 있는 책들은 피하자. 이를테면 10여년 전에 유행했던 베스트셀러 여행책들- 국경 밀입국을 서슴없이 하며, 아프가니스탄이나 중국 등의 접전이 심한 금지된 구역의 촬영을 감행한다거나, 여행지역마다 현지인과의 로맨스가 생긴다는 허구의 이야기들, 현지의 환각성 식물이나 마약제 등을 투여한 경험을 자랑거리처럼 늘어놓는 책이 그렇다. 이런 판타지에서나 가능할 법 한 이야기들에 홀리는 사람들이 누가 있을까 싶지만 의외로 이것들에서 여행의 정보를 얻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 가장 멀리 해야 할 것은 '가이드북을 던져버리고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라'는 조언을 하는 책이다.


명심하자. 지도 밖으로 행군하면, 죽는다는 것을. 여행은 도박이 아니며 안전하게 돌아오는 것이 최우선이다. 두 번 세 번 연속해서 강조해도 모자라지 않는 이야기다.

뿌두체리 바닷가 리조트 쪽에 붙어있던 경고판. 실제로 이걸 무시하고 수영하다가 봉변을 당한 여행객이 제법 많았다.

아래는 인도 내에서 추가로 더 조심해야 할 장소들 몇 곳을 붙인다. 여행자들의 발길이 자주 닿지는 않는 곳이지만 알아두면 나쁠 것 없는 정보가 될 것이다. 이 지역들에 대한 여행 계획을 잡고 있거나 혹은 이 지역들을 지나치게 된다면 각별히 안전에 신경쓰도록 하자.



1. 인도 북부의 국경선 부근


 인도는 왼쪽으로 파키스탄, 북쪽으로 네팔과 중국, 동쪽으로 방글라데시와 미얀마(버마) 등의 국경을 맞대고 있다. 이들 국경은 유럽처럼 자유롭게 오갈 수 없으며 비자가 반드시 필요하다. 특히 인도 최북단의 잠무&카쉬미르 주에서 여행자들이 많이 찾는 곳인 스리나가르와 인도-파키스탄 국경이 있는 아타리(인도령)-라호르(파키스탄령)주는 무슬림과 힌두의 충돌이 잦은 곳으로 이 곳을 여행할 때는 사전 정보를 숙지하고, 이동 전에 해당 지역에 큰 사건은 없었는지 뉴스를 충분히 찾아보는 것이 좋다. 인도를 벗어난 파키스탄보다, 오히려 인도 내의 스리나가르의 정세가 불안정할 때가 많다.

 인도에서 네팔로 이동할 때는 인도 동부 바라나시에서 고락푸르, 고락푸르에서 소나울리 국경을 넘어가야 한다. 인도인들과 네팔인이 이용하는 네팔 국경은 고락푸르-소나울리 말고 세 군데가 더 있지만, 이곳은 외국인이 이용할 수 없다. 자칫 잘못하다간 추방될 수 있으니 정해진 길로만 가도록 하자.

 마을의 집단 이기주의 때문에 사건 사고가 잦은 곳은 비하르주 북부다. 네팔과 맞닿아 있는 곳은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으므로 피하는 것이 좋다. 인도 내에서도 퍼밋이 필요한 곳이 제법 많은데, 그 중 한 곳이 마니푸르 근방의 주들. 외국인의 출입을 불허하는 마을도 있기 때문이 이곳을 여행할 때는 신경을 써야 하며, 미얀마와 인접한 국경을 두고 있는 주들도 역시 국경지대이기 때문에 여러 사고에 휘말릴 수 있다. 인도 북동부 주들은 상황이 유연하게 바뀌니 델리나 첸나이 등 대도시에 머물 때 충분히 정보를 알아 가는 것이 좋다.


어느 지역이든 국경지대는 조심해야 한다. 특별히 파키스탄과 맞닿아 있는 곳은, 더욱 주의가 필요하다.

2. 안다만 섬


 안다만 섬은 위험지역이라기보다 주의해야 할 것들이 좀 많은 곳이다. 인도 동부에 위치한 안다만 제도의 섬들은 같은 인도지만 특별한 퍼밋이 필요한 곳이다. 델리, 첸나이, 콜카타에서 미리 부여받은 서류를 가지고 여권사본들과 함께 동봉해야만 들어갈 수 있다. 부두나 공항에서 입국심사 비슷한 절차를 마치면 그 날짜로부터 최대 28일 동안만 머물 수 있다. 허가증은 재발급되지 않으니 절대로 잃어버리면 안 된다.

 최근에 이곳에서 일어나는 여행자들의 이슈는 해파리로 인한 사고가 가장 많다. 안다만은 인도 내륙보다 질병 등의 대응에 취약하기 때문에 병원이 있다고 해도 무용지물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이에 참고하여 미리 약품 등을 챙겨가면 좋다.

 추가로 안다만 제도에 위치한 노스 센티널 섬에는, 아프리카에서 이주한 원주민들이 살고 있으며 이들로 인해 2006년에 인도인 어부 피살, 2018년 원주민들과 접촉을 시도한 미국인 피살, 그 밖에 알려지지 않은 많은 인도인들이 이곳에 접근하려다가 목숨을 잃었다. 이들은 원주민의 공격 때문에 시신조차 인도하지 못한 상태. 이 노스 센티널은 인도 정부조차 손을 쓰지 못하는 곳으로, 원주민들의 보호 뿐만 아니라 섬에 호기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원천봉쇄하기 위해 정부는 섬에서 반경 5km 이내의 출입을 금지시킨 상태다.  


안다만 섬의 위치

3.  델리


 인도 내에서 가장 많은 범죄가 일어나는 곳이 델리는 아니지만, 여행자들이 대부분 거쳐가는 곳이기 때문에 여행자들에 대한 범죄가 다른 지역보다 일어날 확률이 상대적으로 높다. 미세먼지, 인신매매, 성범죄, 살인 등 다양한 형태의 복합적으로 일어나는 곳이 델리다. 델리도 지역마다 천차만별이긴 하지만, 한국에서도 많이 알려진 버스 집단 성폭행 사건 또한 델리에서 일어난 사건임을 참고하자.






매거진의 이전글 죽기 전에, 타지마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