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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민영 Nov 16. 2018

공항 안의 인도, 공항 밖의 인도

"인도는 공항에서도 커리(카레)냄새가 난다면서?"


처음 인도 땅을 밟기 며칠 전, 친구가 나에게 저렇게 말했다. 그도 인도를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사람이었으니 으레 인도는 커리의 나라이며 도시 곳곳에 커리 냄새가 잔뜩 풍기는, 그런 류의 판타지로 인도를 상상하고 있었던 것 같다. '야, 그렇게 따지면 태국공항에서는 똠얌꿍 냄새나고 한국공항에서는 마늘이랑 김치 냄새라도 나게?'라고 되받아치고 웃으며 넘어갔지만, 나도 내심 인도의 하늘은 대기 중에 노란 향신료가 콕콕 박혀있지 않을까 슬며시 상상해보곤 했다. 


공항에 내리자마자 한 번도 맡아본 적 없는 이국의 냄새가 훅 하고 코를 뚫고 들어왔다. 정확히 '커리'라고 하기는 뭐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신기한 냄새였다. 하지만 그 냄새보다 더 나의 신경을 거슬리게 한 것은 공항 안의 모습이었다. 인디라 간디 국제공항은 10년 전 막대한 비용을 들여 공사를 거듭한 끝에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하지만 그 이전에는 시골의 한 터미널과 다름없었다. 이 곳에서 출국과 입국 심사가 이루어진다고 상상하기도 머쓱한 그런 모습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의 인도 공항이란, 정말 말 그대로 '인도의 민낯'을 단면으로 보여주는 수준의 것이었다. 길바닥에 사람들이 널브러져 자고 있음은 물론이거니와, 쓰레기가 한쪽에 쌓여있어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직원들, 떠돌이 개와 염소, 소들이 한 곳에 얽혀 곤히 잠을 자고 있는 풍경도 쉽게 볼 수 있었다. 면세점 같은 것이나 편의 시설이 있을 리는 만무했다. 


시대가 바뀌고 이용객이 폭발적으로 늘어감에 따라, 인도는 인디라 간디 국제공항, 뭄바이 차트라파티 시바지 공항 등 인도의 얼굴 역할을 하는 주요 공항들을 막대한 비용을 들여 리모델링 하기 시작했다. 지방 주요 도시들에 있던 공항들은 이 시기를 거쳐 국내가 아닌 국제공항으로 승격되었다. 염소, 소, 개, 고양이 등 공항을 점거하다시피 했던 동물들은 부랑자들과 함께 쫓겨났고, 정부는 공항의 관리 직원을 대거 채용했다. 그 결과 2008년 이후의 공항들은 악명 높았던 이전의 후줄근한 모습들을 차츰 지워갈 수 있었다. 


공항의 외향은 천차만별로 바뀌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공항 안쪽은 바깥에서 벌어지는 온갖 권모술수들로부터 완전히 자유롭다는 것이다. 물론 어느 나라나 공항을 극도로 안전하게 관리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인도의 공항은 조금 특별하다. 인도는 공항을 벗어나자마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전혀 예상할 수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많이 줄었지만 프리페이드 택시(목적지까지 이미 결정된 금액을 창구에서 지불한 후에 영수증을 받고, 목적지에 도착해서 그 영수증을 기사에게 주는 방식)를 가장한 사설택시들의 사기, 공항 바로 옆에 있는 공항철도를 전혀 다른 곳으로 설명해 여행자들을 혼란에 빠지게 하는 사람들과 공항철도가 끊긴 시기에 안전하게 목적지로 데려다주겠다며 수상한 사설 여행사로 향하는 상인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마음만 먹으면 쉽게 그들의 술수에 넘어가지 않고 지나칠 수 있지만 초짜 인도 여행객에겐 쉽지 않은 일이다. 이런 위험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이 공항의 안쪽이다. 이곳은 출국을 준비하거나 막 입국심사를 마친 사람들만 머물 수 있고 그 외의 사람들에게는 철저히 통제되기 때문이다. 너무도 당연하지만 호객 행위를 하는 상인도 없고 택시를 타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따라다니는 택시기사들도 없다. 


때문에 본격적인 인도 여행에 앞서 인도에 도착했다면 서둘러 공항 문을 박차고 나가지 말고, 잠시 숨을 크게 고르고 다시 한번 채비를 꾸리는 것이 좋다. 인도의 공권력이 '공식적으로' 당신을 보호해줄 의무를 가지는 곳도 공항 안과 밖의 경계선, 딱 그 선까지만이기 때문이다. 


인도에 처음이었던 친구를 배웅해주던 날, 입구부터 철저하게 관리되는 공항의 모습.


아직 숙소를 잡지 못했다거나 행선지에 대한 고민이 든다면 적어도 최초의 이동까지는 반드시 공항 안에서 해결하도록 하자. 인도의 공항 안과 공항 밖은 똑같은 습도와 이국적 내음을 안고 있으나 커다란 유리문을 사이에 두고 전혀 다른 법이 적용되는 전혀 다른 국가다. 처음 인도 땅을 밟는다면 이 문을 활짝 열고 호기롭게 바깥세상으로 뛰어드는 대신, 인도에 첫 발을 디딘 느낌이나 앞으로의 여정들을 다시 한번 곱씹으며 그 문 밖의 세상을 잠시만 가만히 들여다보도록 하자. 앞으로의 여행을 위해 배낭끈을 조율할 시간이 이번 한 번 밖에 없을지도 모른다는 마음으로, 숨을 크게 쉬는 시간을 가지도록 하자.


인디라간디 국제공항의 전경. 북인도를 여행한다면 반드시 거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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