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여행을 갈 때는 무엇이 좋을까?
인도여행을 갈 때 가장 적합한 가방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참 많이 받는다. 인도를 여행할 때 언제나 커다란 배낭을 짊어지고 가곤 했으니 항상 "당연히 배낭이지"라고 대답해오곤 했다. 그러다 언젠가 같은 질문에 같은 답을 하며 '왜 캐리어는 안 되는 걸까'라고 되묻던 순간이 있었다. 인도에 캐리어를 가져간다고 말하면 백이면 백 휘둥그레 한 눈을 뜨며 "도대체 왜?"를 연발한다. 하지만 인도에 제법 자주 다닌 나조차도 이에 대한 명쾌한 답을 듣거나 해본 적이 없다. 정말 인도여행은 다른 여행지처럼 캐리어를 들고 떠나면 안 되는 걸까?
물론 당장 '인도'와 '캐리어'를 함께 떠올리면 몇 가지 곤란한 풍경들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일단 흙바닥과 비포장 도로에 이리저리 끌려 다니는 캐리어의 바퀴는 어지간히 튼튼한 것이 아니고서야 무사하기 힘들 것이다. 시내 중심가를 조금만 벗어나면 자연스럽게 캐리어 바퀴에 얹어져서 마치 원래 거기 있었다는 듯 떨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 소똥, 염소똥, 개똥 등 각종 똥들의 향연도 어렵지 않게 생각해낼 수 있다.
인도에서 캐리어를 사용하기 힘든 이유는 아무래도 캐리어의 안위 때문이 아닐까. 좋은 캐리어를 가져간다면 고장 확률이야 낮겠지만 만에 하나 손잡이나 바퀴가 이런저런 다양한 이유로 고장 나기라도 한다면 정식으로 수리를 받을 수 있는 확률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그렇다고 몇만 원짜리 싸구려 캐리어를 가져간다면 공항에 내려서부터 그 캐리어를 버리고 싶은 충동이 강하게 들 지도 모른다. 고장 난 캐리어를 앞에 두고 앞으로의 일정을 고민하는 일은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겪기 싫은 일 여덟 번째 정도 순위에 꼽히지 않을까. 아무리 무겁더라도 네모반듯하고 깨끗한 캐리어가 눈 앞에 놓여있다면 호시탐탐 훔칠 기회를 엿보는 사람들이 제법 많을 테고-그리고 그들은 잠금장치 따위는 관심이 없다-생필품이 잔뜩 들어있는 가방을 잃어버린다면 예상치 못한 지출과 짜증이 동반될 수 있다.
물론 마음만 먹으면 캐리어로 여행을 하지 못할 것도 없다. 실제로 인도여행객들 중 꽤 많은 사람들이 캐리어로 호기롭게 여행을 다니기도 하고, 그 빈도수도 과거에 비해서 많이 늘었다. 인도의 길거리를 달그락 소리를 내는 캐리어와 함께 유유히 걸어가는 광경을 본 적도 제법 있었다. 상상하기는 힘들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캐리어는 바퀴에 의존해야 하기에 갈 수 있는 곳이 한정되어 있다. 델리를 예로 들면, 델리공항에 내려서 지하철로만 이루어져 있는 지역을 오간다면 문제가 될 것이 전혀 없다. 혹은 인도 전체 일정을 몇 걸음 걷지 않고 택시나 오토릭샤 등을 이용한다면 고려해볼 법도 하다. 그러나 중간에 길을 잃거나 다음 숙소로 이동하기까지의 차편이 여의치 않아 직접 확인해보아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면, 그때부터 재앙이 시작될 것이다. 내 두 다리 외에 네 개의 바퀴에 의존해야 하는 또 다른 무언가를 데리고 이동하는 일은 생각보다 무척 힘들다.
캐리어의 가장 큰 문제점은 위험에 대한 즉각적인 반응이 불가하다는 것이다. 배낭은 그저 메고 있기만 하면 되는 것이기에 특수한 상황이나 위험에 노출된다면 그저 그 상태 그대로 도망치기만 하면 된다. 양 손 또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기에 위기상황에 대처하기 편하다. 필요한 물건을 넣었다가 바로바로 꺼내 쓸 수 있는 주머니 등이 여기저기 있다는 장점도 덤으로 작용한다.
도시에서 도시로 이동할 때마다 커다란 캐리어에 몽땅 짐을 넣어두고 홀가분히 숙소를 나설 수 있다면 참 좋겠지만, 인도에서 캐리어를 사용한다면 딱 그 정도의 편의 외에 많은 걸 버려야만 한다. 앞서 이야기했듯 대도시의 중심가만이 여행의 타깃이라면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겠지만 '인도'라는 특수성을 즐기기 위해 인도를 여행하기로 마음먹었다면 불편하더라도 조금 다른 시각으로 여행을 대해야만 한다.
'배낭여행'은 배낭 하나로 언제든 홀가분하게 떠날 수 있음을 의미하는 동시에, 그 배낭 하나에 나의 모든 습관과 일상을 축약해 넣어야 한다는 뜻도 된다. 비단 인도만은 아니겠지만, 인도를 여러 번 여행하는 동안 나에게 배낭은 정말 많은 의지가 되어주었다. 두 개의 배낭끈을 양쪽 팔에 끼면 등에 착 붙어져 떨어지지 않는 배낭의 구조 덕에 그 무게가 가볍든 무겁든 상관없이 내 발걸음대로 움직이는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으며, 때때로 정말 좋은 등받이가 돼주었다. 세상 어디에도 다시는 없을 친구처럼 끌어안거나 머리에 베고 인도 남부의 한 시골마을 낯선 터미널에서 밤을 지새운 적도 있었고, 아주 가끔은 비나 눈을 임시로 피할 수 있는 간이 우산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 몇 년을 메고 다녀서 배낭끈이 끊어지기 직전 현지에서 다른 제품으로 교체해야 했던 적도 있었고 짐이 너무 많이 늘어나는 바람에 배낭을 통으로 한국에 부쳐버리고 싶던 기억 등 귀찮은 일도 제법 있었지만, 여전히 나에게 '배낭'이 없는 인도는 상상하기 힘들다. 여행자와 언제나 직접적인 체온을 나눠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네 바퀴 달린 캐리어는 절대 채워줄 수 없는 그 무언가의 연대가, '배낭'에는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