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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민영 Oct 07. 2018

[시작하며] 인도에는 왜 가요?

인도가 '정말로' 궁금한 사람들, 여성들을 위해

몇 년 전의 주한 인도 대사관에서 1년짜리 관광비자를 받을 때의 일이다.


인도여행은 보통 3개월짜리 단수나 6개월짜리 비자를 많이 신청한다. 6개월 이상 인도에 머무는 건 흔히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처음 비자를 신청하러 대사관 문을 열었을 때, 비자를 접수하고 난 후 바로 인터뷰가 시작되었고 10분 정도면 끝날 거라 생각했던 인터뷰는 약 30분 정도가 걸렸다. 인도 비자는 두세 번 받아보았지만 인터뷰를 보는 경우는 처음이라 많이 긴장되었다. 거절될 확률도 무시하지 못하기에 서류 준비도 사흘 동안 열심히 준비했고, 토씨 하나 책잡히지 않으려고 영문서류의 문법, 스펠링 체크도 수 번을 했다. 손안에 묵직하게 잡힐 정도의 두꺼운 서류를 내밀자, 그걸 받아 든 영사가 대뜸 이렇게 묻는다.


'인도에는 왜 가요?'


이윽고 영사는 '왜 이렇게 긴 비자가 필요한지', '가서 무엇을 할 것인지'를 구두로 물으며 나의 여행 일정표를 꼼꼼히 체크하기 시작했다. 직업이 뭐냐고 묻는데 별생각 없이 'Journalist(기자)'라고 답했더니 그때부터 영사의 속사포 같은 질문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나의 여행 일정표 속에서 'Film Festival(영화제)'이라는 단어를 찾아낸 영사는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외국인에게 인도 내에서 어떤 영화 촬영이나 다큐멘터리도 현재는 불허되어있고, 이를 어길 시에는 강제 출국당해야 한다는 것을 인지시킨다. 그는 나를 노려보다가 말없이 일정표를 곰곰이 바라보더니 철창 같은 것을 열며 서류더미를 꺼내 한참을 바라본다. 슬슬 나의 등줄기에 식은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이대로 비자가 나오지 않으면 난 출국도 못 하는데, 내 비행기표들은 다 저가항공이라 환불하기 쉽지 않을 텐데 난 어떻게 하나. 머리를 계속 굴리고 있을 무렵 영사가 다시 묻는다. "그래서 6개월로 줄까, 1년으로 줄까?"

 'What?' 방금까지만 해도 날 잡아먹을 듯 노려보던 그가 이런 말을 하니 어안이 벙벙하다. 당연히 1년. 그는 내 대답을 듣더니 퉁명스레 서류에 사인을 하고 끝났으니 가보라고 한다. 개미만한 목소리로 'Thank you.'라고 말하고 황급히 대사관을 빠져나왔다. 갑자기 극심한 피로가 몰려왔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반나절을 잠만 잤다.


그런데 영사가 나에게 처음 건넨 말, '인도에는 왜 가요?'는 대사관을 나온 이후 내내 나의 발목을 잡았다. 인도를 향한 갈망은 도대체 왜 생긴 걸까? 왜 그 많은 사람들이 인도에 가려고 하는 것일까? 나도 처음에는 인도에 대해 정말 많은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특정 작가의 글을 몇 번 보고, 인도를 여행했던 아티스트들을 흠모하며 그곳에 가면 무언가 자기 성찰과 관련된 진리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바라나시, 갠지스, 힌두교, 성지, 유적지, 타지마할... 그 많은 것들을 보고 돌아오면 무언가 달라져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인도에 가서 자기 성찰을 실현하고 돌아오는 사람은 별로 없다. 애초에 자기 성찰과 내면의 정화 뭐 그런 허세 비슷한 것에 홀려 인도를 방문했다고 해도, 그 부푼 꿈은 인도의 국제공항에서 나오자마자 만난 풍경으로 인해 소리소문 없이 줄행랑치기 일쑤다. 처음 인도에 발을 디뎠던 당시, 나는 몇 년 동안 쌓였던 고민들을 한 아름 안고 가서 모두 갠지스강에 버려놓고 올 거라는 기대를 하고 있었다. 물론 당연히 실행되지 못했다. 가볍고 쉽게 꿈꿀 수 있는 백일몽의 판타지. 갠지스 강에서 버터플라이, 타지마할에서의 일출과 일몰, 산소 부족을 끌어안고 오르는 안나푸르나 트레킹의 계단들을 거쳐간다고 해도 '나'라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복잡하고 오묘한 문제들에 단번에 해답을 내놓을 수 있는 나라는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인도도 마찬가지다. 아니, 오히려 인도는 삶의 애환은 고사하고 삶의 우환만 얹고 올지도 모른다. '인도에 한 번도 가지 않은 사람은 있어도, 인도에 한 번만 간 사람은 없다'는 말은 사실 믿을 것이 못 된다. 인도 델리에 도착하자마자 온갖 사기를 당하고 바로 귀국 날짜를 조정해야 했던 사람,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배탈이 나서 일정 내내 변기통과 씨름해야 했던 사람, 끊임없이 달라붙는 호객행위자들에게 질려서 다시는 인도를 쳐다보고 싶지도 않는다는 사람 등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사연으로 인도라면 진저리를 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불편과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인도'는 확실히 매력이 넘치는 나라다. 수많은 언어들과 종족들로 이루어진 나라, 영하 20도와 영상 50도를 오가는 환경을 보유한 나라. 여행자들의 모험심을 자극하기에 이만한 나라가 또 있을까 싶다. 저 유명한 타지마할을 보려면 참을 인자를 여러 번 마음에 새겨야 하지만, 막상 그 실체를 마주하면 그간의 고통은 눈 녹듯 사라져 버리는, 그런 매력이 있는 나라가 바로 인도다.


인도여행을 가야겠다고 마음먹은 그 시점부터 아마 당신은 지인들에게 귀가 따갑도록 '인도는 위험하지 않느니?'라는 말을 듣게 될 것이다. 당신이 만약 여자라면, 여기에 이 문구가 추가된다. '인도는 [여자들에게는] 위험하지 않니?' 인도는 정말 여자들에게만 위험한 걸까? 사실 인도가 아니더라도 전 세계 각처에 여성들을 타깃으로 하는 위험은 얼마든지 도사리고 있다. 다만 인도는 우리에게 익숙한 문화권이 아니고 사회적 관습이 아주 다르기 때문에 그로부터 생기는 사건사고들의 양상이 너무도 많을 뿐이다. 이런 이야기들을 「여자들이 걷는 인도」를 통해 다뤄보려 한다.


「여자들이 걷는 인도」는 인도를 여행하고자 하는 여성들을 위한 칼럼(에세이) 형 가이드북이다. 인도를 여러 번 여행한 여행자 그리고 앞으로도 죽을 때까지 인도를 십 수 번은 더 드나들 예정인 '여성'으로서, 인도가 궁금하지만 쉽게 인도행을 결정하기 힘든 분들과 '명상' '평화' 등의 단어 뒤에 숨겨진 인도이야기가 궁금하신 분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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