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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민영 Jul 01. 2024

이번 주 티빙 추천작 - <졸업>

드라마 <졸업>이 끝났다. 종방하자마자 바로 이번 주의 추천작으로 소개하고 싶은 이유는, 이 드라마가 주는 힘과 여운이 길기 때문이다. 온갖 회귀물이 판을 치고 말도 안 되는 재벌가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 와중에, 그러니까 말하자면 <눈물의 여왕>과 같은 부류의 드라마들로 승부수를 띄우는 와중에 반짝이는 <졸업>은 그야말로 값지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16부작의 마무리로 TVN 본방을 떠나 티빙에서 계속 스트리밍될 예정이다.


사교육의 메카인 강남 대치동이 배경으로 등장하고, 대치동의 잘나가는 국어 강사 서혜진(정려원)이 주인공이다. 아이들의 등급을 올리기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서혜진 앞에, 갑자기 14년 전 가르쳤던 제자 준호(위하준)가 나타난다. 꼴찌를 전전하는 준호는 서혜진이 다니는 학원 '대치 체이스'의 자랑으로, 대기업에 입사한 그를 서혜진도 자랑으로 여기고 있다. 준호는 돌연 잘 다니던 대기업을 떠나 사교육 시장에 뛰어들고, 이런 준호의 결정이 마뜩잖은 서혜진과 결국 같은 학원에서 사제지간의 동료 교사로, 그리고 연인 관계로 발전하게 된다.


<졸업>은 <하얀거탑>과 <밀회>를 거쳐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봄밤>까지 이어지는 드라마로 계속 호평을 받고 있는 안판석 감독의 연출작이자 박경화 작가의 데뷔작이다. 이 드라마에 단 몇 회차 만에 단번에 빠진 이유는 무엇보다 로맨스라는 가면으로 위장한 일종의 정치 드라마이기 때문이었다.  일상의 허를 찌른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안판석의 작품들을 워낙 좋아하며, 마치 극에서 '모두의 로맨스'로 위장해 보여지는 장면장면들의 유려한 연결들을 좋아해왔다. 허나 <졸업>은 지금까지 보여준 그러한 '안판석 월드'를 훨씬 뛰어넘는 치열함과 후련함이 있다. 첫사랑이었던 선생과 그를 좋은 대학에 보냈다는 이유만으로 계속 학원가에 눌러 앉게 된 선생이 벌이는 로맨스는 분명 달달하다. 이는 정려원과 위하준이라는 두 배우가 연기한 캐릭터 혜진과 준호의 케미가 아주 잘 맞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졸업>은 두 사람이 꿈꾸는 로맨스, 혹은 극 바깥에서 극 안을 바라보는 시청자들이 바라는 어떤 로맨스의 종착과 연장에서 멀리 떨어져 나와 두 사람이 속한 사회, 말하자면 '혈투가 난무하는' 대치동 학원가의 단면을 차분히 담아낸다.


상위층을 향한 욕망으로 똘똘 뭉쳐진 이곳 대치동의 사교육 시장 내에서, 자신의 신념과 사랑을 지키고 자신의 삶을 다독이며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꿈꾼다는 이야기는 어떤 면에서 다른 그 어느 막장드라마보다 판타지적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일상의 판타지를 믿기에, 결국에 우리가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 그런 일상의 연속적인 판타지기에 이 드라마가 무척 특별하면서도 몹시 낯익게 느껴진다. "그래서 언제 줄 건데요, 빛나는 졸업장?" 어떤 상황에서 아직 졸업하지 못한 사람들. 그리고 그 졸업장은 결국 누군가가 수여해 주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자기 자신에게 수여해야 한다는 깨달음을 주는 드라마였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관통하는 하나의 장치 '문학'. 그러니까 <졸업>은 그 '문학'이 빛나는 드라마다. 국어 점수를 올리기 위해서, 등급을 더 잘 받기 위해 존재하는 문학 작품들에 대한 분석을 도구로의 문학, 수단으로의 문학이 아닌 그 자체로의 문학, 삶의 기능과 삶의 고민으로의 문학으로 빗대어 평가하는 드라마를 만난 적이 있었나. 때문에 중간중간 강의 내용으로 빛나는 박경리의 소설이, 김애란의 소설이 빛난다. 말하자면 지문 밖의 세상이 더 넓고 광활함을 캐치해 내는데 성공한 것이다.


그 어떤 드라마보다 각본의 힘이 느껴지는 건, 안판석 감독 혼자만이 끌고 갈 수 없음을 스스로 인지했으며 그에 대한 결정과 레벨업의 과정을 박경화 작가에게 맡겼기 때문일 것이다(안판석/박경화의 인터뷰 발췌 내용). '자고로 이야기란 새롭게 생기는 문제와 갈등으로 세계가 계속 흔들릴 수밖에 없다'라는 말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드라마와 착 달라붙는 'The Restless Age'의 곡 'Don't Forget About Me' 또한 오래도록 귓가에 맴돌 것 같다.


https://www.youtube.com/watch?v=YwihhXoX9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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