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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만의 신작, <페라리>

by 강민영

마이클 만의 작품들은 대체로 발붙여 살고 있는 현실과 더 높은 곳을 바라보는 이상의 괴리를 다룬다. 그 괴리가 폭발하는 지점이 감정적이지 않고 아주 냉철하게 진행된다는 점은 마이클 만 감독 만의 장점이자, 현존하는 감독들 중 그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독보적인 스타일이다. 마이클 만의 신작인 엔초 페라리의 전기 영화 <페라리>도 마찬가지다. <페라리>의 개봉에 앞서 곧바로 마이클 만이 제작에도 참여한 제임스 맨골드의 <포드 V 페라리>가 떠오르긴 하지만 <페라리>는 이 영화와 동시대를 그리지도 않으며, '레이싱 자동차' 하나만을 바라보고 다양한 사람들이 전문적으로 협업하여 뿜어내는 희열과 광활한 에너지를 표출하지도 않는다. 그저 묵묵히 흔들리는 현실 속에 레이싱의 왕좌를 위태하게 지키려는 '엔초 페라리'만을 그릴 뿐이다. 그러기 위해서 선택한 것이 엔초 페라리의 생애에 있어 가장 중요한 순간이었을 1957년이었을 테고, 마이클 만은 이 아이러니한 시기를 아주 건조하게 담아냈다.


한 인물이 주가 되어 발화되는 여타의 다른 영화들이 '고독'을 짚어내는 것과 마찬가지로, <페라리> 또한 엔초 페라리의 모순된 지점, 그리고 주변인으로부터 혹은 자신이 만들어놓은 상황으로부터 오는 압박감을 절묘하게 잡아낸다. 냉철하게 일하는 모습이 있을 뿐 엔초의 영웅적인 면모는 애초에 없다.


레이싱 영화가 아닌 탓에, <포드 V 페라리>와 같이 그야말로 박진감 넘치는 긴장의 연속을 주는 레이싱 장면은 존재하지는 않는다. 엄밀히 말하자면 이 서사 내에서 레이싱 자체를 아예 배제할 수 없으므로, 아주 큰 경기가 하나 등장하는데(동시에 실제로 끔찍한 사상사고를 내기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레이싱을 묘사한 지점이 기존의 마이클 만 감독의 결과 가장 동떨어진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레이싱 중에 펼쳐지는 압도적인 풍광, 경주가 진행되는 동안 어느 정도 예측되는 미래에 대한 불안을 안고 이를 지켜보게 하는 쾌감이 상대적으로 너무 높아 당황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레이싱은 잠시뿐이고, 그 레이싱의 전후에 배치되어 있는 인물들이 드러나는 순간부터 극의 등장인물들은 다시 고립된다. 이 서사의 진행 자체가 괴리감 없이 가능한가 싶지만, (역시나)너무도 유려하게 흘러가기에 또다시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페라리>를 '엔초 페라리'만의 것으로 만들지 않게 배치하는, 말하자면 이 영화에서 가장 빛나는 캐릭터는 역시 페넬로페 크루즈가 연기한 '라우라'다. <페라리>가 레이서 혹은 자동차 회사 사장의 영화가 아닌 '고독'과 이를 둘러싼 가족극임을 분명케 만드는 요소가 바로 라우라기 때문이다. 아담 드라이버가 연기한 '엔초 페라리'와 '라우라'의 거리감이 상당해서, 둘 모두를 하나의 샷에 담아내는 컷이 거의 없다. '페라리'가 가족 사업이고 불륜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라우라 페라리가 사망할 때까지 파트너 관계가 지속되었음을 생각하면, 라우라는 엔초에 대항하는 거의 유일한 인물이자 엔초의 모든 것을 이해하는 적(혹은 친구)로 설정되어 있다. 이 관계가 합해지고 완전히 틀어지는 지점을 담아내는 몇 장면들은 정말 놀랍다.


여러모로 <히트>가 생각나는 지점들이 분명했던 <페라리>는 오랜만의 복귀작으로 손색이 없었다. 이 영화를 보고 난 직후,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페라리>가 너무도 저평가되었다는 생각이 바로 들었다. 이보다 차갑고 건조하며 복잡한 전기 영화가 또 있을까. 꽤 많은 지점에서 (긍정적으로)리들리 스콧의 <하우스 오브 구찌>와 비교하고 싶은 영화였다. 마이클 만, 너무도 건재하고 여전한 그 이름이 영원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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