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르나우의 <노스페라투>(1922)와 베르너 헤어초크의 <노스페라투>(1979)를 기억하는 사람들이라면, 두 영화를 뛰어넘는 그 이상의 '노스페라투'를 만들어내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특히 드라큘라 서사의 기괴함과 기이함에 정점을 찍어준 무르나우의 원작 같은 경우, 수많은 CG와 후보정으로 범접할 수 없는 공포의 태초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솔직히 로버트 에거스의 <위치>와 <라이트하우스>로 이어지는 긍정의 기류가 <노스맨>을 통해 끊겼으므로, <노스페라투>의 리메이크에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고 하는 게 정확할 것이다. 어떤 방식으로 원작을 오마주하는 동시에 드라큘라/뱀파이어 서사 특유의 아우라를 넣을 것인가. 로버트 에거스의 영화를 지켜봐온 관객들 대부분이 가지고 있을 회의와 의문을, 이 영화는 그야말로 시원하게 날려주었다.
잘 만들어진 고딕 호러 장르 요소를 그대로 답습함은 물론이고, 무르나우의 원작의 장면들과 대사에 대한 오마주를 놓치지 않음과 동시에 기존에 로버트 에거스가 가지고 있던 자신만의 장점을 극대화시켜 드러낸다. 원작의 서사인 '드라큘라'라는 크리쳐 자체에 대해서는 큰 놀라움이 엮어 들어가지 않지만, 그를 감싸는 아우라와 정확히 드라큘라를 묘사하는 실루엣, 그리고 어둠의 깊이와 감도를 다루는 방식 또한 너무나 매력적이다. 고전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이 공포극 안에 스스로 알면서도 애써 지우려 한 어떤 '정체성'이 있고, 이것이 엘렌을 통해 가감 없이 드러난다는 설정이 더없이 좋았다. 카메라 패닝을 이렇게 쓸 수 있는 감독은 아마(그리고 여전히) 정말로 몇 없을 것. 불쾌하고 축축한 동시에 매력적인 호러 장르의 영화란 바로 이런 것을 말할 테다. 원작에서 확실히 밀어붙이고 싶은 여성 캐릭터의 확장, 그리고 명확하게 짚고 넘어가는 주제 의식의 확대 등 미장센으로 나 서사적으로나 정말로 완벽한 영화가 아닐 수 없다.
* 사실 고어 장면들은 좀 더 불쾌하고 더러웠어도 좋을 것 같지만, 이 지점들의 적당한 타협을 보며(아마 대부분 이걸 타협이라 하진 않겠지만서도) 로버트 에거스가 확실히 전작들보다 대중성이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을 거란 추측을 해보게 된다. 영화를 보고 나서 참고할 만한 작품으론 역시 무르나우의 원작이 가장 좋겠지만, 가깝게는 박찬욱 감독의 <박쥐>도 꼽을 수 있겠다. 그마저도 말로는 '대중적 영화를 찍고 싶다'며 그렇지 않은 길로 뚜벅뚜벅 걷는 박찬욱의 길티 플레저와 묘하게 맞닿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