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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탈리스트>(2025)

by 강민영

*영화의 서사와 구조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짧지만 이 영화에 대해 몇 마디를 반드시 하고 넘어가야겠다. <브루탈리스트>는 근래에 찾아볼 수 없는 영화적 경험을 충족시켜주는 영화였기 때문이다. 이 영화가 비스타비전 카메라로 찍혔다는 사실 만으로 그 이유를 증명하기에 합당하다. 고전적인 서사에 고전적인 접근을 실험했고, 그 실험이 제대로 먹히는 위대한 경험은 흔치 않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그야말로 경험인 셈이다. '영화를 본다'는 것에 대한 경험.


<브루탈리스트>의 오프닝 시퀀스. 이 오프닝 시퀀스에 완전히 압도되어 그 이후로 인터미션 직전의 1막이 끝날 때까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주연인 라즐리 토스(애드리언 브로디)가 품고 있는 모든 것을 담고 있는 엄청난 오프닝 씬. 그때부터 시작해 15분 남짓한 인터미션 직전까지의 서사는 그야말로 폭풍과 같았다. 체제를 피해 망명했지만 건축과 예술로의 이념과 신념은 확고하게 지키려 노력하는 <브루탈리스트>의 라즐로의 운명이 거대한 장기판 내에서 마치 실험과 도박을 하듯 왔다 갔다 하는 장면들의 연속이 있었고, 그 사이에서 아주 작은 디테일을 주어 라즐로의 미학, 궁극적으로 그가 추구하고자 하는 미학에 대해 언급한 지점이 흥미로웠다. 하지만 거기서 더 나아가지 않는다는 점도 역시 흥미로웠다. 건축 사조를 품은 제목을 대문에 걸고(브루탈리즘) 절대 '건축' 자체에 대해서는 깊게 짚고 넘어가지 않으려는 묘한 태도가 재밌었다.


그리고 2막부터는, 분위기가 완전히 바뀐다. 당연하다. 1막의 흐름으로 2막까지 끌고 갔다면 <브루탈리스트>는 '아메리칸 드림'의 성공에 관한 이상한 이야기가 되었을 것이다. 감미로운 음악이 15분 동안 흐르는 인터미션은 2막을 앞두고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건가? 하며 바라봤는데 사실 절반은 맞다. 1막이 파멸과 구원이 반복되었다면, 2막은 그 둘 중 좌절의 길에 더 치우져있다.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마스터피스를 완성한다는 사실 자체는 2막에선 더더욱 중요해지지 않는다. 전형적인 전기물로 시작하나 싶었더니 그것들을 모두 치우고 스릴러 문법의 영화를 돌연 떡하니 가져다 놓고 눈이 번쩍 뜨일 사건들을 여러 개 포진해둔다.


그것들이 모두 몰아치고 난 후 대망의 에필로그. 또 한 번 완전히 바뀐 <브루탈리스트>의 마지막은 페이크 다큐멘터리로 장식된다. 라즐로 토스의 건축물을 기념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 앞에서, 이제는 정말로 '태연해진' 조카가 라즐로의 생과 건축물에 대해 열변한다. 이 열변에 정말로 감동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지난 1-2막에(너무나 당연히도) 이 말들을 모두 다 "개소리"이며 어떤 추악한 일들이 있었는지 모른 체 감동하는 사람들을 광역으로 조롱하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에필로그가 너무도 친절하게 읊조리며 설명해 주는 이 장면 이후, 정신 쏙 나갈 것 같은 엔딩롤이 시작되는데 몇 분간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이렇게 작위적인 영화가 이렇게나 아름다울 수 있다니.


<브루탈리스트>를 관통하는 단 하나의 대사가 있다면 바로 이것일 테다. "내 건축물은 전쟁에서도 살아남았고 침식에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됐다." 그런데 이것은 절대 예술적이거나 역사적인 어떤 사조와 이념을 대변하기 위해 뱉은 말이 아님을, 어떤 탈을 써서라도 살아남는 것은 결국 주인공 라즐로 그 자신임을 묘하게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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