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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일 감독의 신작 <국보> 단상

by 강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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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본 지 꽤 되었지만 뭐라도 남겨둬야 할 것 같아(트위터에 단상으로 남긴 게 꽤 알티를 타서 여기저기 공유되는 마당에) 블로그에도 쓴다. 이 글을 쓰는 지금 <국보>는 일본에서 1230만이 넘었다. 일본의 역대 영화 흥행 순위를 뛰어넘으면서 블록버스터 저리 가라 할 정도의 흥행을 보여주고 있다. 국내에서는 약 6만 명 정도가 관람했는데 3시간에 달하는 러닝타임을 생각하면 가벼운 수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실 <국보>는 2024년 12월 도쿄에 갔을 때부터 프로모션이 진행 중이었기 때문에 그때부터 매우 보고 싶었던 영화다. 이 영화가 이상일 감독의 영화라는 사실은 한국에 와서 알았는데, 때문에 극장 개봉에 대한 희망을 품고 있었다. 이상일 감독의 영화는 국내에선 어떤 방식으로든 개봉할 것이므로. 그런데 이렇게까지 흥행하게 될 줄은 몰랐다. 일본인들에게 가부키 문화란 과연 어떤 것인가.


<국보>가 일종의 사회적 현상이 된 가운데 이 영화의 본체인 가부키 명문들이 <국보>를 N차 관람하고 호평을 남겼다는 일화를 보고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아주 폐쇄적인 방식으로 이어져 온 가부키 명문가가 주목하는 영화가 가부키의 폐쇄성을 어느 정도 비판하고 여러 사람이 가부키 하나에 온몸을 바쳐 파멸과 복기의 길을 걷는 영화 <국보>가 되었다. 가부키 씬에서 팔은 안으로 굽으니 그럴 수 있고, 또 가부키 영화 자체가 희귀한 편인데 이를 정통으로 담아내려 하니 그럴 수밖에 없다고 하지만, 그 아이러니함이 꽤 즐거웠다. '가부키가 대체 뭐길래 사람들이 이 지경까지 되는가'를 말하면서도, 너무나 아름다워 아, 그럴 수 있지 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국보> 내의 가부키 장면들을 보면서 느끼는 아이러니. 완벽하게 폐쇄적인 세습 구조로 돌아가는 가부키 자체와, 그런 가부키를 보며 열광하는 사람들의 부조리함이 영화에 녹아 있어 여러 모로 즐거웠다. 주요 역할 중 하나인 슌스케의 어머니 역에 가부키 가문의 당사자인 테라지마 시노부가 출연했는데 그녀는 이 영화를 찍으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세 시간이나 되는 러닝타임이 조금 부담스럽지만, 막상 영화를 볼 때는 지루하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원래 감정 과잉이 여기저기 묻어나는 이상일 감독의 영화 스타일을 좋아하기도 하고, 키쿠오의 아역인 쿠로카와 소야, 키쿠오 역의 요시자와 료와 슌스케 역의 요코하마 류세이 모두를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번 영화에는 소피안 엘 파니라는 해외 감독과 함께 촬영했다고 해서 어떤 촬영이 나올지 기대가 많았는데, 가부키 씬 장면들에서 모두 진가를 발휘하는 것 같아 눈이 즐거웠다. 특히나 영화의 마지막, '백로 아가씨'를 추는 장면에서 압도되어 그 장면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올해 봤던 영화들 사이에서, 가히 손에 꼽을 만한 영화적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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