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올해의 영화 베스트 10 (국내 개봉작)

by 강민영

* 이번 주 추천작은 올해 영화 베스트 10으로 대체합니다 :)


벌써 1년이 지나, 올해도 돌아온 연말 결산 시기. 작년 이맘때 즈음에는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일이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극장 개봉작을 가능한 한 많이 챙겨 보려고 노력했지만 몇몇 개의 영화들(12월에 개봉한 <아바타 3>나 윤가은 감독의 신작 <세계의 주인> 등)은 챙겨보지 못하거나 의도적으로 피한 영화들이 조금 있고, 극장에서 보기보다 OTT로 올라오면 보려고 남겨둔 작품들이 있다. 반면에 극장에서 반드시 봐야겠다 생각했던 작품들, 그중에서도 특수한 플랫폼에서 반드시 봐야겠다 생각한 작품들은 놓치지 않으려 노력했다.


이래나 저래나 작년보다 올해 극장 개봉작이 현저히 줄어든 느낌이고, 그 가운데 작년과 비슷하게 올해도 호러 영화들이 대거 개봉했다. 기대에 못 미치는 영화들이 대부분이었으나 몇 가지는 순위에 들 정도로 좋았다. 기록한 것들 위주로 최대한 되돌아보려 노력했는데, 1년 만에 톺아보는 리스트라 빠트린 게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언제나처럼, 아래 리스트의 작품들은 2025년 1월부터 2025년 12월까지의 국내 개봉작들을 대상으로 했다. 영화제에서 공개된 작품들이나 재개봉작, 특별 상영작은 제외되었다.



10. <플로우>


2024년 아카데미를 포함해 다양한 애니메이션 상을 거머쥐었던 <플로우>. 지난 칸영화제에서 크게 주목받아 그 열풍을 쭈욱 이어갔던 작품이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갑작스런 홍수가 지구를 덮은 직후, 다양한 동물들이 생존하기 위해 서로 화합하는 내용을 다룬 <플로우>는 대사 한 마디 없이 각 동물들의 고유한 개성과 습성을 묘사하며 작품의 독특한 깊이를 만들어냈다. 때문에 어느 나라의 관객이든 본능적이고 보편적으로 이해하게 만들 수 있는 힘이 있다. 동물을 의인화하지 않고, 실제 동물의 습성을 그대로 표현해낸 애니메이션으로도, 오래 기억에 남았다.




9. <어쩔수가없다>


오래 기다려온 박찬욱 감독의 신작. 박찬욱 감독의 영화 중에 가장 대중적인 영화가 아닐까 생각했던 작품이다. 전작들에 비해 여러 장면들과 서사들이 굉장히 직관적이라는 느낌을 줬던 작품인데, 블랙코미디의 요소가 다분히 깔려 있어 더욱 그러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어찌되었든 극단적으로 흘러가는 서사가 개연성을 해친다는 평가를 받긴 했으나, 원래 이야기의 사건사고들은 모두 그렇게 흘러가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고. 영화 속에서 가장 눈길이 많이 갔던 캐릭터는 이병헌이 연기한 만수가 아니라, 염혜란과 이성민 커플이었다. 올해 한국영화로는 유일하게 나의 개인적인 순위에 있던 작품.



8. <위키드: 포 굿>


<위키드> 시리즈의 두 번째이자 마지막 실사영화인 <위키드: 포 굿>. 그 사이에 오리지널 내한팀의 뮤지컬도 보고 원작소설도 조금씩 읽으며 위키드 세계관에 빠져있었는데, 그 연장선에서의 <위키드: 포 굿>은 좋은 마무리가 되었다. 원작도 인기 많은 곡들은 1편에 몰려있고, 2편의 이야기는 다분히 어두운 이야기일 수밖에 없는 요소가 있기에 영화적 재미가 얼마나 있을까를 꽤 걱정했지만, 결국 영화 <위키드> 시리즈를 이루는 건 엘파바와 글린다, 신시아 에리보와 아리아나 그란데의 그것이므로 둘의 합을 보는 것 자체가 즐거웠다. 이후에 이런 조합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깊은 우정과 연대, 교류 그 자체였던 두 배우의 케미가 오랜 시간 기억에 남을 듯한 영화. 이후에도 신시아 에리보와 아리아나 그란데가 함께 노래를 부르는 장면은 몇 번씩 꺼내본다.




7. <F1 더 무비>


조셉 코신스키의 전작들을 보면 사실 <F1 더 무비>는 재미가 없을 수 없는 조합과 서사임이 분명했고, 역시나 그의 입지를 증명했던 작품. 꽤 많은 평론가들로부터 '극장 존재의 의의를 보여주는 영화'라는 평가를 받았던 작품으로, 박진감 넘치는 역동적인 미장센들과 한스 짐머를 포함해 다양한 아티스트들이 대거 참여한 OST도 아주 즐거웠다. <F1 더 무비>는 전형적이고 정석의 서사를 끝까지 밀고 나가는 잘 만들어진 대중 상업 영화 그 자체였다.




6. <노스페라투>


무르나우와 베르너 헤어초크의 동명의 영화 <노스페라투>를 기억하는 사람들이라면, 같은 이름을 가진 영화로 이 시리즈의 후속작을 내기는 불가능에 가까울 거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로버트 에거스의

<노스페라투>는 그 불가능을 가능으로 실현해주었는데, 잘 만들어진 고딕 호러 장르 요소를 그대로 답습함은 물론이고, 원작들의 장면들과 대사에 대한 오마주를 놓치지 않았다. 기존에 로버트 에거스가 가지고 있는 장점을 극대화된 영화이기도 했으니, 앞선 거장들의 '드라큘라'의 명맥을 이을 영화로, 또한 독보적으로 잘 만든 영화로 평가받기도 충분했다.



5. <국보>


일본 영화사를 다시 쓴 영화였던 이상일 감독의 <국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먼저 공개된 이 영화가 과연 개봉할 수 있을까 노심초사했는데 세 시간이 넘는 상영 시간에도 불구하고 무사히 개봉할 수 있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새삼 해본다. 흥행을 넘어 일종의 사회현상이 된 영화이기도 한데, '가부키'라는 독특하고 폐쇄적인 문화 속에 파멸과 복기의 길을 걷는 인물들이 매력적이라 여러 가지 아이러니함을 바라보는 게 몹시 즐거웠다. 이 영화의 가장 마지막 장면이자 가장 유명한 장면이기도 한 '백로 아가씨'를 추는 장면을 큰 화면에서 바라보는 건 올해 봤던 영화들 사이에 손에 꼽을 만큼 기억에 남는 영화적 경험이었다.




4. <페라리>


올해 초에 개봉했던 마이클 만의 신작 <페라리>. '레이싱'을 주로 다룬 역동성 넘치는 영화와 <페라리>는 다른 궤도를 걷는 영화로, 흔들리는 현실 속에 레이싱의 왕좌를 아주 위태하게 지켜내려는 '엔초 페라리'의 전기 영화다. <페라리>는 엔초 페라리의 모순된 지점, 그리고 주변인으로부터 혹은 자신이 만들어놓은 상황으로부터 오는 압박감을 절묘하게 잡아내어 비튼다. 엔초 페라리를 연기한 애덤 드라이버의 연기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이 영화를 '엔초 페라리'만의 것으로 만들지 않게 배치한, 말하자면 이 영화에서 가장 빛나는 캐릭터는 역시 페넬로페 크루즈가 연기한 '라우라'였다. 여러모로 <히트>가 생각나는 지점들이 많았던, 마이클 만의 오랜만의 복귀작.



3. <브루탈리스트>


<브루탈리스트>는 근래에 찾아볼 수 없는 영화적 경험을 충족시켜주는 영화였다. 비스타비전 카메라로 찍힌 이 영화는 고전적인 서사에 고전적인 접근을 실험했고, 그 실험이 완전히 제대로 먹혀 시너지를 내는 영화였다고 생각한다. 아직도 생각나는 <브루탈리스트>의 오프닝 시퀀스는 이후 진행될 모든 서사에 대한 축약으로 존재했던 대단한 것이었고, 1막과 2막 사이에 있는 인터미션 영상조차 허투루 흘러감이 없는 완벽한 영화였다. "내 건축물은 전쟁에서도 살아남았고 침식에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됐다." <브루탈리스트>의

이 대사는 절대 예술적이거나 역사적인 어떤 사조와 이념을 대변하기 위해 뱉은 말이 아님을, 어떤 탈을 써서라도 살아남고야 마는 주인공 라즐로와 <브루탈리스트> 그 자체임을 시사한다.




2.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애정해 마지않는 폴 토머스 앤더슨(PTA)의 신작이고 무려 2,300억이 넘는 자본을 투자해 만든 영화인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사실 작년에 이 영화의 예고편이 공개되었을 때도 도대체 PTA가 무슨 영화를 만든 건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 영화는 올해 개봉 영화 중 최고의 경험을 선사했다. 그 경험이 또 아이맥스기에 완성되었다는 점은 아이러니하지만, 영화가 애초에 공개한 시놉시스의 모든 부분을 철저히 배반하는 방식으로 흘러가는 점이 아주 좋았으며 역시 PTA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기존에 PTA가 가지고 있던 고유의 작가적 문법도 유지하면서 상업영화의 면모도 아주 유려하게 뽑아냈다는 것이 이 영화의 장점인데, 숀 펜이 연기한 '스티븐 록조'는 영화사에 길이 남을 캐릭터이지 않을까 싶다.




1. <씨너스:죄인들>


올해도 1위와 2위의 고민을 많이 했기에, 사실 두 영화의 순위는 크게 상관이 없지만 순수하게 '내 취향의 재미'를 더 많이 선사하는 영화를 1위로 골랐고 그래서 올해의 1위는 <씨너스:죄인들>이다. PTA의 신작이 너무 압도적이었기에 <씨너스:죄인들> 사이에서 갈등했지만, 사실 1, 2위가 무슨 의미냐 싶고 두 영화가 모두 너무 좋았으므로 '올해'라는 타이틀을 동등하게 거머쥘 만하다. <씨너스:죄인들>의 모든 면모는 극장에서 반드시 경험해야 할 압도적인 체험이었고, 장르의 경계를 오가며 변화무쌍하게 움직이는 영화의 리듬을 즐기는 것에 아주 혼을 쏙 빼야 했던 강력한 영화다. 과거와 미래, 죽음과 삶 모든 것을 뒤흔들어 섞어버리는 '음악'에 대한 찬사를 바치는 아주 끈적하고 집요하고 아름다운 뱀파이어물.



꼽아 놓고 보니 작년과 비슷하게 올해도 상반기에 인상적인 영화들이 포진해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특히

<브루탈리스트> 같은 경우는 러닝 타임도 그렇고 국내 극장에서 좋은 시간대를 선점하지 못했지만, 여전히 잔상처럼 남아 머릿속에서 잊혀지지 않는 장면들이 존재한다. 이렇게 놓고 보니 올해는 작년에 비해 개봉영화를 그렇게 많이 본 느낌은 아닌 듯한데 내년에는 또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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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극장에서 가장 좋았던 경험은 <반지의 제왕>의 돌비시네마 재개봉을 현재 1, 2편까지 아주 오랜만에 관람한 것이다. 고전은 영원하다고 이 명불허전의 영화를 최적의 환경에서 다시 보니 피로도 싹 씻기고 얼마나 좋은지... 내년 마지막 <왕의 귀환>도 아는 맛이지만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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