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 & 송

9와 숫자들 '삼청동에서' 초단편 노래 소설

by 강민영

‘연’에게 굳이 삼청동에서 만나자고 이야기했던 이유는, 연과 만나야 하는 그 날이 씨네코드 선재의 폐관일 이었기 때문이었다. 오랜만에 한국 땅을 밟는 연은 나에게, 몇 년 사이에 서울에 대한 감각을 잃었을까 봐 자기를 관광객 취급하는 거냐고 툴툴거렸지만 어쨌거나 연은 11월 30일밖에 시간이 되지 않았고 나는 그날 씨네코드 선재에 있어야만 했다. 물론 연에게 이런 구구절절한 사연을 설명하지는 않았다. 나는 연과의 약속이 있든 없든 어차피 그 극장에 혼자 갈 생각이었으니까.


씨네코드 선재의 폐관 날짜가 정해졌을 때부터 그곳을 좋아하던 많은 사람들로부터 안타까운 성토가 이어졌고 나도 그들 중 하나였다. 가장 좋아했던 극장이 돌연 사라지게 되었다는 소식을 담담하게 받아들일 사람은 당연히 없을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폐관 기사를 접하자마자 극장으로 달려가 정말 극장이 없어지냐고 폐관하는 거냐고, 기사가 맞냐며 극장에서 일하는 매니저를 불러 세워 따지듯 이야기했던 날은 두고두고 후회로 남을 것이다. 그 극장에서 나보다 더 오랜 시간과 추억을 쌓았던 사람들이 많을 텐데, 그리고 극장의 직원들도 좋아서 그런 결정을 내린 것이 아니었을 텐데, 누구보다도 그걸 잘 알면서도 그날은 그냥 원인 모를 부아가 치밀었다. 한 달 뒤면 ‘씨네코드 선재’라는 여섯 글자가 서울에서 영영 사라져 버린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 한 구석 어딘가가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답답했기 때문이었다.


삼성이나 현대 등 대기업이 발 벗고 나서지 않는 이상 씨네코드 선재의 폐관을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나는 놀랍도록 담담해졌다. 폐관 소식을 듣고 일주일 동안 관객들이 푼돈을 모아 극장을 살리면 되지 않을까, 시위라도 해볼까 벼래 별 생각을 다 했으나 그런 차원으로는 해결되지 않을 문제라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던 것이다. 하지만 머리는 차가웠어졌어도 마음은 안정되지 못했다. 지난 몇 년 동안 씨네코드 선재에서 보았던 영화들의 제목이 머릿속에서 별똥별처럼 스쳐 지나갔고 그 찬란하게 빛나는 영화들 사이에서 대부분의 순간을 함께 했던 ‘송’과의 추억이 불쑥 떠올랐기 때문이다.


연이 한국으로 돌아오기 며칠 전, 그러니까 11월 30일을 얼마 남기지 않은 시점에서 나는 송도 이 사실을 알고 있을까 무척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핸드폰에는 아직 송의 연락처가 남아 있을 테니 송에게 극장이 없어진다는 이야기를 해 주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송도 이미 알고 있으려나. 어쩌면 나보다 송이 먼저 극장의 폐관 소식을 들었을지도 모른다. 씨네코드 선재의 폐관 기사를 보고 송도 나에게 이렇게 소식을 전해보려 핸드폰을 들었다 놓았다 했던 것은 아닐까.


씨네코드 선재에서는 폐관 직전의 한 주 동안 허우 샤오시엔 감독의 영화들을 상영했고, ‘극장의 마지막’에 ‘허우 샤오시엔’의 영화라면 반드시 송이 올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그를 만날 수 없었다. 마지막 회차의 상영이 끝나고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고 나서도 나는 빨간 극장 의자에 들러붙어 앉아 일어날 수 없었다. 극장의 직원이 내 곁으로 다가와 이제 문을 닫을 시간이라고 이야기하며 내 어깨를 다독이던 순간에 나는 돌연 눈물을 쏟았는데, 그 이유가 극장의 폐관 때문이었는지 송을 이곳에서 영영 다시 만나지 못하리라는 생각 때문이었는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그날 나는 도망치듯 극장을 빠져나왔다.


인천공항에 도착해서 삼청동으로 이동 중이라는 연의 전화를 받았을 때 나는 이미 안국역에서 빠져나와 극장에 도착해있었다. 소격동에 있다가 삼청동으로 올라갈 거니 천천히 오라는 말을 연에게 보냈다. ‘시네코드 선재’라는 글자는 아직 남아있었지만 극장의 유리문은 굳게 잠겨 있었고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뿌옇게 서리가 끼어있는 문을 장갑 낀 손바닥으로 쓱 닦아 안을 들여다보았지만 역시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손바닥으로 유리를 계속 닦아가며 극장 안쪽을 들여다보았다. 익숙한 회색빛의 벽 사이로 송과 내가 영화 상영 중간중간 목을 축이며 배를 채우던 작은 구석의 의자, 그 옆에 놓인 정수기, 상영관 안으로 들어가는 또 다른 문, 영사실로 향하는 작은 계단을 순서대로 바라보았다. 누군가 등 뒤에서 영화 보러 오셨냐며 말을 건넬 것 같았다. 아니, 그래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3년 전 겨울, 이곳에서 허우 샤오시엔의 영화를 처음 보러 왔을 때 나에게 건넸던 송의 첫마디처럼. 그 순간처럼.


‘진 & 송’. 금세 서리가 올라붙어 뿌옇게 변한 극장의 외문에 이번에는 장갑을 벗고 맨손으로 글자를 적는다. 극장 직원들과 극장에서 알게 된 사람들이 우리에게 붙여준 애칭이었다. 바깥의 한기로 진과 송, 두 글자는 빠른 속도로 지워지고 있었고, 나는 그 글자들 사이로 비치는 극장의 내부를 들여다보며 작은 현기증을 느꼈다. 연과의 약속에는 조금 늦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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