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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민영 Dec 31. 2018

제3의 성, '히즈라'

수천 년 전부터 인도에 존재했던 제3의 성, 히즈라에 대하여

'히즈라'는 수천 년 전부터 존재했던 집단이다. 생리적으로 '남성'으로 태어난 사람이 '여성'의 성 정체성을 가지고 지내는 사람을 뜻한다. 표면적으로 남성이지만 내면은 남성과 여성의 경계가 모호한 사람들이며, 이들은 주로 단체생활을 하며 특정 구역을 벗어나지 않는다. 노래나 춤 등에 출중한 사람이 많지만 대체로 최하층 계급민이 많은 탓에 지금까지의 사회적인 위치는 거의 제로에 가까운 집단이었다.   


사진출처: Tarique Anwar


콜카타에서 첸나이로 향하는 장거리 기차에서 나는 처음으로 '히즈라'를 만났다. 인도에서는 여장남자들이 돌아다니며 구걸을 일삼는다는 이야기를 듣기만 했을 뿐 좀처럼 만날 기회는 없었는데, 막상 히즈라를 마주하니 무성한 소문들과는 조금 다른 이미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도 내에서 사회적 지위가 거의 없는 수준이라는 이야기만을 듣고 그들이 음지에서만 돌아다니거나 혹은 아주 내향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편견이었다. 3A클래스 기차에서 나와 SL클래스(3A보다 한 단계 아래)에서만 판매하는 튀김 콩을 사러 잠시 칸을 이동했던 나는 이름 모를 히즈라 두 명에게 잡혀 삐질삐질 땀을 흘려야 했다. 그들은 나의 생각과는 전혀 다르게 괄괄한 목소리로 기차에 앉은 모든 사람들을 깨우기 시작했고, 당당한 풍채와 말투로 태연하고 자연스럽게 푼돈을 갈취하기 시작했다.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힌디어가 아닌 다른 지방의 어떤 언어로 속사포처럼 꾸짖듯 이야기를 건네는 바람에, 나는 혼이 쏙 빠져 과자를 살 돈 10루피를 그들의 손에 얹어주고 말았다.


"마담, 땡큐, 땡큐 소 머치."


돈을 받고서야 유창하게 영어를 쓰며 나에게 너덜너덜한 작은 꽃 하나를 건네주던 히즈라 무리 중 한 명을 보고 어안이 벙벙해 있던 순간, 그녀(혹은 그)들이 노래를 시작했다. SL클래스 기차가 떠나가도록 음정과 박자가 맞지 않는 듯한 노래를 부르며 시종일관 발찌와 팔찌를 찰랑이는 그들은 노래를 부르는 중간중간 기차의 인도인들에게 돈을 요구했고, 반은 나와 같이 10루피 정도를 건네주었지만 나머지 반은 그들의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히즈라 두 사람은 돈을 주지 않는 사람들을 차갑고 경멸하는 얼굴로 바라보며 알 수 없는 욕설을 퍼부었고 그들은 노래를 몇 분 간 지속한 후 그다음 역에서 내렸다. 여전히 황당한 얼굴을 하고 있던 나는 내가 먹고 싶었던 튀김 콩 과자 대신 형체가 불분명한 '히즈라의 축복'을 받고 자리로 돌아왔다. 이미 24시간을 함께 보내 제법 친해진 아래칸 현지인이 내 이야기를 듣더니 "그건 좋은 일이네요. 히즈라는 신의 부산물이기도 하니까요."라고 말했다.


인도의 히즈라. 사진출처: 로이터 Reuters


원래 인도에서 히즈라는 양성성을 필두로 하여 힌두 신화의 화신 중 하나로 대우받는 존재였다고 한다. 히즈라가 인도에 가장 많이 분포되어 있는 것은 이 신화 때문이며, 그 신의 이름을 빌어 생활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가 인도, 인도 대륙이었다. 인도의 대서사시 '라마야나'에도 등장하며 가정의 안녕과 평화를 빌어주는 역할을 담당했으며, 특히 출산을 앞둔 날이면 일부러 히즈라를 초대하여 아이의 축볼을 빌어달라고 요청하는 관습이 있었으나 이는 영국의 식민 지배가 시작함과 동시에 다수 사라졌다고 한다. 서구의 잣대로 인해 인도 내의 동성애가 금기시되고 음지화 되어가는 과정에서, 히즈라도 자연스럽게 사회에서 도태되었다. 떠밀리듯 자리를 잃은 히즈라는 구걸과 매춘 등으로 생계를 이어가며 현대화된 인도인들과 크고 작은 마찰을 빚기 시작했다. 성소수자들을 배척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제대로 된 생활과 규칙이 이어질 리 없었으며, 이로 인해 성병, 에이즈 등의 문제가 지속되기도 했다. 과거에는 신으로 추앙받던 집단이 식민지 시절을 거치며 한 순간에 몰락해버린 셈이다.


인도 여행을 하다가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는 히즈라들은, 고대부터 내려져 왔던 히즈라 집단의 후손이거나 혹은 자의적으로 '히즈라'가 되기로 마음먹은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히즈라는 스스로 여성으로 생각하여 여장을 하고 다니지만 많은 사람들이 히즈라를 남성도 여성도 아닌 다른 성으로 인식하고 있다. 인도에서의 '히즈라'에는 트랜스젠더나 여장남자 등 태어난 성 아닌 다른 성을 스스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전부가 포함되어 있으므로, 현대의 히즈라는 다양한 모습으로 각지에 분포되어 있다. 힌두 신화에서 파생되었다는 기원이 있기 때문에 인도인들 대부분은 히즈라에게 저주받는 것을 두려워하는 편이지만, 히즈라는 의료보험이나 의무교육 등을 제대로 받을 수 없는 환경에서 살아오고 있기 때문에 이들을 이용한 일방적인 폭행이나 매매춘, 인신매매 등이 부지기수로 일어나는 아이러니한 경우도 많다. 히즈라를 스스로 선택하여 거세 수술을 받다가 제대로 된 조치를 취하지 못해 사망에 이른 사람들도 부지기수다.


지난 2014년 인도 정부는 오랜 시간 동안 히즈라 집단과 인도의 몇 인권 단체들에서 요구해왔던 '인도인으로 살 수 있는 권리'를 받아들여 히즈라를 '제3의 성'으로 인정했다. 인도 최고법원은 당시 판결에서 "모든 인류는 자신의 성별을 선택할 권리가 있으며, 이렇게 선택된 권리 또한 마땅히 인정받아야 한다."며 히즈라에게 투표권을 포함한 인도 내의 기본적인 권리를 법적으로 부여함을 알렸다. 이와 더불어, 2018년에 인도에서 '동성애 금지법'이 150년 만에 폐기됨으로 인해, 스스로 성별을 선택한 사람들과 성 정체성을 뒤늦게 찾은 모든 성소수자들이 '인권'이라는 단어에 한 발 앞서 다가가게 되었고 히즈라 또한 이 판결로 인해 많은 것이 바뀌게 되었다. 일례로 2014년 이후 인도 총선의 투표용지의 성별 표기에는, '남성'과 '여성' 그리고 '그 외의'를 뜻하는 'Others'가 등장하기도 했다.


인권을 위해 싸우는 히즈라들과 활동가들, 출처: BCCL/REPRESENTATIONAL IMAGE


기차에서 처음 만나 반강제로 10루피를 건네주었던 히즈라 이후에도, 나는 대 여섯 명의 히즈라를 만나곤 했다. 한창 인도의 신화에 관심을 가질 때는, 히즈라들이 신에게 속하기 위해 반드시 한다는 '거세 의식'과 히즈라 집단 내부에서 일어나는 역사나 관습의 전파들이 궁금해서 그들을 만나면 종종 말을 걸어보긴 했으나 그들은 나에게 웃음으로만 일관할 뿐, 별다른 말을 건네지 않고 돈만을 요구했다. 히즈라가 대체로 스스로를 여성이라 인지하기 때문에 나는 흥미권 밖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들은 교육, 때때로 문명과 동 떨어진 삶을 살고 있기에 영어를 전혀 하지 못했기에 기본적인 소통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도 든다.


인도뿐만 아니라 파키스탄이나 방글라데시, 네팔에서도 쉽게 볼 수 있었던 제3의 성 히즈라. 최근에는 고대 크리슈나의 규율을 답습하는 히즈라는 거의 없고, 착취의 대상이 되거나 무분별한 성매매를 거리낌 없이 하는 등 종교나 신화와는 거리가 멀어진 히즈라. 아직 그들을 중심으로 퍼져있는 인도의 사회적 문제를 말끔하게 해결할 수는 없겠으나 분명한 건 히즈라들은 스스로 선택한 성별과 얼굴을 드러내고 살아가는 것에 거리낌이 별로 없다는 사실이었고,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가 뿌리 깊게 녹아있는 국가의 국민으로선 무척 부러웠던 것이 사실이다.


'Take me as i am', 인도의 성소수자들이 혐오 세력과 맞설 때마다 놓지 않는 문구다. 수백 년의 박해를 딛고, 2018년에야 비로소 정식으로 지위를 인정받은 인도 내의 히즈라들의 삶에 어떤 변화가 생길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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