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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운 May 17. 2019

김영하의 <아이를 찾습니다>를 읽고

윤석과 미라는 주말 대형마트에서 세 살짜리 아들 성민을 잃어버린다. 실종된 아이를 찾느라 그들의 삶은 완전히 망가지고 결혼 전부터 전조가 있던 미라의 조현병 증세는 갈수록 심해진다. 세월이 흘러 11년 만에 성민을 찾았다는 연락을 경찰에게 받는다. 성민을 유괴한 여자는 그를 아들로 키우다 우울증으로 자살했고, 그 과정에서 성민이 윤석과 미라의 아들임이 밝혀진 것이다. 하지만 친부모에게 나타난 14살이 된 아이는 그들이 기억하던 아들의 모습이 아니다. 성민은 여전히 유괴범을 엄마로 생각하고 있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다. 


이야기는 삶을 지탱하는 불안에 대해 말한다. 잃어버린 성민만 찾으면 살아도 살아가는게 아니던 자신의 삶과 미라의 병이 전부 해결될 거라고 믿었지만, 그의 기대와는 달리 진짜 문제는 성민이 돌아오고 나서부터 시작된다. 윤석 앞에 나타난 성민은 생김새도, 행동도 생각했던 것과는 너무 다르고 가족에 동화되지 못한다. 11년 동안 아이를 찾는데만 온 신경을 쓰던 윤석에게 예상과 판이한 모습으로 찾아온 행복은 견디기 힘들다. 익숙한 불행과 낯선 행복 속에서 윤석은 오히려 아이를 찾아 헤매던 지난 시간보다 오히려 지금이 더 감당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삶은 한순간도 예측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하는 듯 상황은 갈수록 나빠진다. 가해자는 유괴범 한 명이지만, 그로 인해 한 가정이 송두리째 파괴된다. 성민은 벽돌로 초등학생의 머리를 강타하는 사건을 일으키고,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에 윤석이 자살을 생각하던 날 조현병 증세가 심해져 집을 뛰쳐나온 미라가 산에서 실족사를 하게 된다. 윤석은 엄마의 장례식 중에도 나타나지 않은 성민을 탓하고, 그런 성민은 자신을 잃어버린 부모를 원망한다. 너무 큰 불행은 현실을 외면하게 하고 원망할 대상을 찾게 만든다. 


윤석은 미라의 장례를 치른 후 성민을 데리고 시골 고향으로 내려가 농사를 짓는다. 거기서도 성민은 적응하지 못했는지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나서 집을 나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파탄이 나버린 윤석의 삶은 우연히 찾아온 불행이 개인의 삶을 얼마나 파괴할 수 있는지 보여주면서 가족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비극의 씨앗임과 동시에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불행의 소용돌이에 빠지는 성민이 원망스러우면서도 안쓰럽다. 자신이 유괴되었다는 사실조차 믿기 어려워하는 그에게 새로운 가족을 받아들여야 할 이유는 유전자 검사 결과지밖에는 없다. 


끝에는 성민과 함께 가출했던 보람이 윤석을 찾아오고, 그들이 낳은 아이를 놓고 떠난다. 그 아이는 새로운 희망일까, 또 다른 비극의 시작일까. 이야기의 시작에서 윤석은 정비사 출신 가수 지망생이 오디션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는 동안 손에 꼭 쥐고 있는 볼트를 보며, 저렇게 아무거나 쥘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자신 앞에 놓인 울음을 터뜨리고 있는 갓난아이의 작은 손을 살며시 쥐어본다. 그 아이의 손이 윤석에게 꼭 맞는 볼트가 되어줬으면 한다. 삶이란 때론 예상치 못한 아픔과 고통을 주지만, 그렇게까지 최악일 수만은 없다고 믿고 싶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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