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예찬론자의 여름 찬양
여름이 되면 꼭 봐야 하는 드라마가 있듯이 반드시 들어야 하는 음악도 있다. 2008년에 발매한 자우림의 ‘반딧불’이란 곡이 바로 그것인데, 무더운 여름밤 매미 소리를 들으며 우거진 나무 아래를 걷는 듯한 느낌을 주는 이 곡을 듣는 것은 여름이면 수박을 먹고, 오이냉채를 들이켜듯 결코 빼 먹지 않는 여름 루틴 중 하나가 되었다.
예전엔 가장 좋아하는 계절을 고르라면 단언컨대 가을이라 답했다. 무더운 여름이 가고 가을이 주는 선선한 바람은 매혹적이었고 비교적 차분해진 분위기와 두툼해진 복장은 주위를 따뜻하게 환기해 주었기에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극심한 더위를 선사한 여름의 반사효과로 가을의 분위기는 더욱 낭만적으로 보인 것도 또 다른 이유이기도 했다.
하지만 12월 말, 한 해를 회상하며 돌이켜보는 회고를 시작하자 1년 중 가장 뜨겁고 찬란했던 순간, 가장 역동적이며 활발했던 시기, 가장 고통스럽고 괴로웠던 그때는 언제나 여름이었고 그것을 인식하는 순간, 여름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더 이상 무덥고 고통스러운 순간이 아니라 한 해 중 가장 부지런하며 열정적인 나로 살 수 있는 짧은 기간이라는 생각으로 말이다. 그러다 보니 일상 속 여름의 풍경을 소중하게 다뤄야 한다는 마음가짐이 생겼다.
이어폰을 꽂은 채 길을 걸을 때 자연스레 들려오는 매미의 울음소리, 뜨거운 태양을 피해 잠시의 그늘과 잔잔한 바람을 선사해 주는 우거진 나무에 대한 고마움, 집 앞 하천에서 물놀이를 하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약간의 욕설 ㅎ, 이가 시릴 정도로 차가운 빙수 한 그릇으로 한바탕 웃음꽃이 핀 가족들과의 대화, 매번 가는 피서지만 트렁크 가득 채운 짐꾸러미, 그런 짐꾸러미를 풀고 뜨거운 여름밤 시골에서 구워 먹는 삼겹살, 아삭한 수박 한 입 베어 물고 시청하는 공포영화, 그런 공포영화를 보고 무섭지만, 시골 밤 산책은 꼭 가야 한다며 일행을 재촉하는 모습까지 뜨거운 여름은 우리에게 고통을 주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잊지 못할 웃음과 추억을 선사한다. 그 추억이 비록 구질구질하고 습하고 짜증 날 지라도 말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역시, 에어컨이 고장 나 허벅지와 인중에 땀이 고이고 미세한 짜증이 올라온다. 하지만 이 글을 마친 후 집 앞에 있는 한 식당에서 여름 별미인 콩국수 한 그릇을 들이킬 생각을 하니 여름에만 느낄 수 있는 소소한 기쁨에 행복이 밀려온다.
여름이 주는 고통은 피할 수 없지만 여름이 주는 추억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경험, 흘러가는 이 순간을 보내고 싶지 않은 마음으로 무더운 여름, 가장 젊은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의 삶에 소소한 행복이 찾아오길 바라며 콩국수를 먹으러 달려 가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