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함 앞에선 모든 비밀이 사라져 버린다

순수함이란 보물

by 까짓것

《이솝우화》 “해님과 바람”에서는 ‘해님’과 ‘바람’이 지나가는 한 나그네를 두고 누가 먼저 그의 외투를 벗기는지 내기를 한다. 각자의 가치관과 장점을 바탕으로 ‘바람’은 비바람을 일으켰고 ‘해님’은 뜨거운 태양을 내리쬐는 방식을 택했다. 결과는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해님의 승리였다. 일방적인 강압보다 상호적인 부드러움이 승리한다는 교훈을 일깨워주는 이 우화 속 ‘해님’을 보고 문뜩 ‘순수’란 감정이 떠올랐다.

순수, 잡것의 섞임이 없는 것이나 사사로운 욕심이나 못된 생각이 없는 것이라고 사전은 정의하고 있다. 어리석고 어수룩한 ‘순진’과 많이 혼동되곤 하는데 순진이 ‘연약함’이라면 순수는 ‘강인함’으로 표현하고 싶다.

온아하고 얌전한 ‘해님’과 욕심이 많고 거만했던 ‘바람’, 사람들은 흔히 목소리가 크고 자기주장에 거리낌 없는 ‘바람’ 같은 사람을 두고 강한 사람이라고 평가한다. 하지만 자기의 주장은 뒤로한 채 타인의 목소리를 경청하며 양보하는 ‘해님’이야 말로 진정한 강함이 아니겠는가? 해님에겐 인내와 끈기, 포용력이 있으니 말이다.

우리는 사회생활을 하며 아주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며 헤어진다. 그리고 우리에게 사회생활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 물으면, 업무의 양과 난이도보단 함께 일하는 동료라고 답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며 나 역시 그러하다. 지난 사회생활을 돌이켜보면 사람 때문에 고생 꽤나 했지만 그럼에도 인생 살만하다고 느끼게 만들어 준 동료들이 있다. 그들의 공통점은 모두 순수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사회생활에서 흔히 일어나는 정치질과 파벌에 동참하지 않아 사내 입지가 부족했으며, 자기의 주장만 내세우지 않고 타인의 입장을 먼저 고려했기에 상사로부터 높은 점수를 받지도 못했다. 그럼에도 이들은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순수’하기를 멈추지 않았고 그렇기에 불이익을 당한 동료 편에 서는 것도 망설이지 않았다. 이들에겐 거드름이나 어떠한 척은 거리가 먼 행위였기에 직장 내 서열도 낮았다.


때로는 “바보같다.” “답답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지만, 이들은 세상 속 흔하게 찾아볼 수 없는 ‘보물’이다. 보물은 귀한 것이므로 항상 소중하게 대해야 하지 않던가? 그럼으로 우리는 순수한 이들을 소중하게 대해야 한다. 세상을 건전하게 만들고 우리를 연대하게 만드는 인류애의 힘은 바로 이들의 순수함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하기에.


몇 년 전 모 프로그램에서 일할 때였다. 총 8명의 작가가 함께 근무했었는데 이때의 우리는 높은 연차가 아니었고 정식 입봉도 하기 전이었기에 취재작가로 모두 같은 사무실에 상주하며 근무하는 입장이었다. 연차 차이는 많아 봐야 1,2년 정도였으므로 선배나 후배의 개념보다 동료의 개념이 강했다. 지금은 서로 바쁘단 핑계로 연락이 끊긴지 꽤 됐지만 아직까지도 그 8명의 작가 중 마음속으로 잘 살았으면 하는 동료가 있다.


그는 필요한 물품이나 간식이 있을 땐 항상 마지막으로 말하는 사람이었고, 어디론가 이동을 할 때면 가장 먼저 문을 잡아주는 사람이었다. 모르는 이들이 지나갈 때까지 끝까지 문을 잡아주는 문지기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으며, 다른 동료가 SOS를 치면 마다하지 않고 도와주는 이타적인 동료였다. 그렇기에 모두 그를 어려워하지 않았고 머지않아 선을 넘는 발언도 종종 발설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결코 나약한 사람은 아니었다. 한 동료가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땐 그 누구보다 용기 있게 앞장섰던 이도 그였다. 사회생활을 하며 개인적인 고민이나 비밀은 일체 언급하지 않는 편이라 스스로를 생각하지만, 그 동료와 함께 있으면 수많은 걱정과 비밀은 사라지고 만다.


내 비밀이 발설될 거란 불안함, 날 어떻게 생각할까란 의미 없는 걱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간혹 부족하거나 하찮은 나의 모습이 노출될 때도 그 동료의 태도는 변함없다. 잘나든 못나든 실수하든 성공하든 그가 사람을 바라보는 시점은 언제나 동일했고 그는 언제나 같은 자리에 있었다. 답답하다는 사람들의 무시에도 그는 결코 순수함을 잃지 않았다. 그렇기에 강했고 흔하지 않아 귀했다.


정치질과 뒷말이 난무하는 사회생활 속, 이러한 귀한 보물을 만난다면 난 주저없이 그에게 최선을 다할 것이다. 보다많은 순수함이란 보물이 많아지길 바라기 때문이며 나 역시 순수한 사람이 되길 소망하기에.

부디 그 동료가 세상살이에 상처 받아 순수함을 잃지 않았으면 한다. 누군가에게 그러한 순수는 아주 큰 용기가 된다는 걸 알아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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