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한 거리감이 주는 배려
“그래서 오늘은 뭐 먹지?”
퇴근을 30분쯤 앞두고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자칭 미니멀리스트를 표방하기에 자취를 시작한 이후 짐이 늘어난다는 사소한 이유로 집에서 끼니를 만들어 본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끼니에 대한 남다른 철학이 있었으니 한 끼를 먹더라도 제대로 먹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남달랐던 끼니에 대한 집착은 퇴근 30분 전, “그래서 오늘은 뭘 먹어야 제대로 먹었다는 소문이 날까”라는 심각한 고민을 하게 만들었다. 퇴근 후 먹는 저녁만큼은 오늘 하루 고생한 스스로에게 주는 선물이자 위로를 찾는 여정이었기에 즐겁게 음미할 수 있는 음식이어야 한다는 보상 심리가 작동된 고민이었다.
“그래서 오늘 뭐 먹냐고?”
질문에 대한 답변이 나오지 않자, 스스로에게 또다시 물었다. 올해로 자취 9년 차, 9년이란 세월 동안 오직 만족스러운 저녁 식사를 위해 퇴근 후, 마치 고독한 미식가가 된 것처럼 이 동네 저 동네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던 세월 덕분에 나름대로 단골집을 찾는 기준이 생겼다. 그 기준은 다름 아닌 ‘손님과의 거리감을 유지하는 식당’이라는 것! 그리고 이러한 식당들엔 몇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외관은 투박하나 2팀 정도의 손님이 언제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곳, 평균 데시벨을 웃도는 손님들의 목소리 덕분에 나 하나쯤의 존재감은 자연스레 희미해지는 곳, 특별하지 않은 테이블과 의자, 한국식 형광등과 TV 소음이 뒤섞여 있는 곳, 친절하지도 불친절하지도 않은 기본에만 충실한 사장님의 서비스 철학이 있는 곳이 혼밥을 하기에는 최적의 장소였다. 서비스보단 음식에 집중하기에 집밥처럼 든든했고 푸짐하여 단골이 되는 일은 자연스러웠다.
그러나 아주 사소한 실수(?)로 단골집은 더 이상 단골집으로 남을 수 없게 되기도 한다. 모든 식당이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몇몇 곳은 자주 가면 자주 갈수록 관계가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선의에서 비롯된 손님의 친절을 마치 이용이라도 하듯 무심함으로 되갚아 주기도 한다. 단골손님의 테이블만 세팅이 다르다던가 다른 손님에 비해 음식의 양이 적다던가 등이 대표적인 무심함의 표현이다. 그리고 이러한 무심함의 피해자는 상대방에 대한 배려심을 가진 이들이 대다수일 것이다.
지금은 폐업했지만, 종종 가던 한 백반집이 있었다. 집밥이 그리웠던 탓에 퇴근 후 주 3회 이상은 방문했을 정도로 단골인 집이었다. 하지만 자주 가면 자주 갈수록 친절하면 친절할수록 밥의 양은 점차 줄어들었고 찬들도 옆 테이블과 비교하면 부실한 것이 더욱 도드라졌었다. 같은 메뉴를 주문했음에도 옆 남성의 테이블과 비교 해 내 테이블이 초라해 보였을 때 깨달았다. 더 이상 이곳에서 저녁을 먹지 않기로 말이다. 단골이라는 이유로 기본에서 배제된 순간, 여자라고 적게 먹을 것이라는 선입견이 잠식하는 순간, 고작 저녁 한 끼에 인류애가 짓밟혀 버린 그 순간엔 서러움과 허무함이 밀려오고 만다. 예로부터 먹는 것 가지고 사람 차별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던가?
2025년을 맞이하고 어느덧 봄이 찾아왔다. 그리고 이젠 자취 신입이라고 볼 수 없는 자취 고인물이 되었다. 퇴근 후 3년째 단골인 한 국밥집에 들어섰다. 마치 낯선 이를 바라보는 눈빛으로 단골이지만 초면처럼 대해 주는 사장님의 덤덤함에 정감이 간다. 3년 동안 변하지 않는 기본적인 배려를 의식하며 숟가락을 든다. 거리감이 주는 친절함에 감사함을 느끼며 외친다. 바로 이 맛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