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를 만나기 100m 전,

집에 돌아가는 길이 더 이상 외롭지 않을 때까지

by 까짓것


“만약 네가 오후 4시에 온다면, 난 3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어린 왕자’에 나온 유명한 문구이자 현재의 나로서는 결코 이해하지 못할 말이다.

오늘은 친구와의 약속이 있는 날이다. 오후 4시에 만나기로 했지만, 오전 10시부터 이른 준비를 시작했다. ‘행복’해서가 아니었다. ‘긴장’해서였다. 그리고 준비를 마친 후 12시쯤에 집을 나섰고 약속 장소에는 1시 정도에 도착했다. 점심은 간단히 음료 한 잔으로 때우고 거리를 배회하며 시간을 보냈다. 서점에 들러 책을 훑어보기도 하고 옷 가게에 들어가 이 옷 저 옷을 구경하다 보니 어느덧 시간은 3시 40분. 자연스레 친구에게 연락을 취했다.


“나 방금 도착! 어디야?”


사회생활을 제외하고는 사람을 만나지 않는 게 습관이 되다 보니 어느덧 친구와의 약속은 연중행사가 되었다. 매사 혼자 하는 습관이 지속되다 보니 그것은 곧 성향이 되었고 관계는 자연스럽게 단절되기 시작했다. 냉정하게 스스로를 평가하자면 독립적인 성향이라 할 수 있겠지만 조금만 비틀어봐도 고립을 자처하는 편이었다. 이러한 성향이 몇 년간 이어진 탓에 지금 당장 연락할 수 있는 친구는 0명이 되었다. 그럼에도 고맙게도 이런 나에게 꾸준히 연락을 주는 이가 있었다. 오늘은 그 친구를 1년 만에 만나러 가는 날이다. 1년 전 친구와 헤어진 후 집에 돌아가는 길이 아주 즐거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행복한 기억 탓에 친구와의 약속을 수락하고 말았다.


사람들은 말한다. 내가 1만큼 배려해 주면, 상대방도 딱 1만큼의 배려를 해주기를 바라는 건 욕심이라고. 어느 순간 무례한 관계를 끊어 버린 채 사람을 만나지 않는 나를 보고 몇몇은 “좋은 사람 못 만나서 그래.” “마음에 맞는 친구는 어딘가에 있으니 여러 사람을 만나 보라”며 말을 보탠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혼자가 익숙해지다 보니 사람과의 약속은 부담이 되었고 그 부담은 곧 긴장으로 표출되자 몇 초간의 정적조차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사실 구차한 변명이다. 좀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타인과 나 사이 단절의 1순위는 상대의 오지랖과 무례함이었지만 2순위는 타인에게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 무리한 나 자신에게도 있었다. 그렇기에 항상 밝은 표정을 유지했었고 상대방의 심기를 건드리고 싶지 않아 과도한 반응으로 맞장구를 쳐주며 나의 의견을 피력하는 일을 자제하곤 했다. 그런 생활이 쌓이다 보니 사람을 만날 때 피곤과 긴장이 동반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클라이언트와의 미팅, PT 발표 등이 오히려 안락하고 쉬었다. 적당한 거리감이 주는 평화와 조심성이 편한 것도 있었지만 그들에겐 꼭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양심고백 해 본다.

이러나저러나 복합적인 이유로 사적인 만남을 차단한 후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나 홀로 잘 먹고 잘살 거라 호언장담하며 개인주의자로 살아왔지만, 마음속 한편에는 누군가와 연대를 하고 싶다는 강렬한 열망이 있었다. 길거리나 대중교통에서 어려운 사람을 보면 외면하기 어려웠고 기꺼이 그들에게 손을 건네는 사람들의 용기를 부러워하며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고 싶었다.


세상살이에 찌들어 아주 막 살아버릴 거라는 다짐도 잠시, 언제나 나를 행동하게 만든 건 악이 아닌 선이었으며, 그 선의 중심에는 서로서로 돕는 인류애가 자리 잡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감정들이 지속되자 닫혀 있던 마음의 벽이 점차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다시금 사람들과 함께해야 하는 시기가 바로 지금이라고 외치는 듯했다. 하지만 그 외침에는 몇 가지 조건이 붙었다.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상대방을 깎아내리지 않는 개인이어야 하며, 단합을 위해 누군가를 재물로 올려 뒷담을 유도하지 않는 집단이어야 할 것이며, 위기 상황 속에서 서로 연대하며 사랑할 수 있는 모임이 그 조건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 조건에 충족한 이들을 애타게 찾아다니고 있으며 그들 앞에서만큼은 착한 아이가 아닌 온전한 나를 보여주리라고 다짐했다. 마침내 오늘, 진정한 나로서 그 외침의 첫 발걸음을 위해 약속 장소에 와 있다.


친구를 만나기 전 100m 전

모처럼의 약속이다. 내 외침이 현실이 되길 바라며, 부디 친구와의 만남 이후 돌아가는 길이 씁쓸하지 않길 바란다. 3시 55분 친구로부터 답장이 왔다. “너 보여!” 메시지 확인 후 고개를 드니 친구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생각했다.



하…집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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