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의 여름
쨍한 햇빛에 눈을 뜨면 눈 앞에 바다가 펼쳐진다.
오늘도 하루가 시작된다.
코코넛팔아요!
낡은 스피커에서 내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트럭 위에서 먹고 자며 이 생활을 이어온 지 어느덧 2년째.
나의 집은 바로 이 트럭이다.
가끔 모텔 같은 곳에 들러 씻을 때를 빼면 모든 하루가 이 트럭위에서 흘러간다.
사실 나도 한때는 9시부터 6시까지 앉아 있던 직장인이었다.
하루종일 같은 자세로 같은 표정으로 내인생은 점점 무기력하게 말라갔다.
내일도 일 년 후도 오 년 후도 도무지 기대되지 않는 삶 속에서 나는 천천히 절여지고 있었다.
그러다 경기 침체로 정리해고 바람이 불었다.
나는 뜻밖의 백수가 되었다.
하지만 그때부터였다. 그때부터 내 진짜 인생이 시작됐다.
충동적으로 산 이 트럭이 나를 이리저리 끌고 다녔고 결국 나는 코코넛 장사를 시작했다.
가지고 있던 건 거의 다 버렸다. 이 신발들만 빼고.
나는 이 신발들을 길게 엮어 트럭에 매달아 두고 지네라고 부른다.
내 지네는 내가 지나온 시간의 발자취다.
회사에 처음 출근하던 날의 구두.
비 오는 날 헤어진 연인을 찾아가던 운동화.
그리고 지금의 코코넛 트럭을 밟고 있는 샌들까지.
하나하나 모두 사연이 담긴 신발들이다.
그 신발들이 흔들릴 때마다 나는 내가 살아 있다는 걸 느꼈다.
그날은 유난히 날씨가 우중충했다.
거센 폭풍우가 온다는 예보가 있던 날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낮잠을 자고 일어났을 때 이미 사태는 벌어지고 있었다.
바닷가 근처에 세워둔 트럭이 바람에 흔들렸고 트럭에 매달린 지네가 요란하게 휘날렸다.
나는 급히 뛰어나가 신발들을 주워담았다.
지네는 내 역사였다.
첫 해변 장사 때 신었던 샌들.
비 오는 날 길 위에서 미끄러졌던 낡은 운동화.
도시를 떠날 때 마지막으로 신고 나온 가죽 부츠.
그 신발들엔 내가 지나온 길, 잃어버린 사람, 버리지 못한 감정이 엉켜 있었다.
그때 큰 파도가 트럭을 삼켰다.
유리창을 때릴 때마다 신발들이 툭툭 떨어져 나갔다.
손을 뻗었지만 바람과 물결은 내 손보다 빨랐다.
결국 엮여있던 마지막 한 켤레까지 바다 속으로 사라졌다.
지금까지의 내 역사들이 전부 사라졌다. 허망했다.
비바람 치는 파도 속으로 나는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발바닥이 차가운 모래를 밟았다.
나는 지네를 잃은 일이 나를 무너뜨릴 줄 알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마음 한켠이 너무 가벼웠다.
신발이 없으니 세상이 이렇게나 부드러웠다.
발가락 사이로 흩어지는 모래알이 마치 새로운 길을 열어주는 듯했다.
드디어 마음속에 남아 있던 마지막 한 조각까지 자유로워진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