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에 스며든 노란 빛
요즘 나의 삶은 참 평탄하다.
직장도 평탄하고 하루하루의 일상도 잔잔하다.
걱정 없는 일상을 보내고 있는데도 이상하게 마음 한편이 계속 허전하다.
연애를 쉬어온 시간이 길어져서 그런 걸까.
혼자 사는 게 편하면서도 어딘가 내 자리가 비어 있는 것 같은 이질감이 채워지지 않고 머물러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요즘 진짜 아무 걱정 없이 잘 살고 있는데.. 이상하게 허해. 뭔가 채워지지 않는 기분이야."
종교를 가진 친구는 조심스레 말했다.
"종교를 가져보는 건 어때? 마음이 좀 단단해지는 게 느껴질지도 몰라."
"나는 신이 없다고 믿어. 그렇게 쉽게 생기는 게 아니야."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은 무엇에도 기대고 싶지 않다는 완고한 내 마음이 더 큰 문제라는 걸 알고 있었다.
다른 친구는 말했다.
"강아지나 고양이를 키워보면 어때? 생명과 함께 있으면 마음이 따뜻해져."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내 외로움 때문에 한 생명을 데려오는 건 너무 이기적인 일 같아. 직장 때문에 집에 오래 있지도 못하는데 그 아이는 또 얼마나 외롭겠어."
어떤 방법도 찾지 못한 채 그냥 그런 마음으로 살아가야 하나 생각했던 즈음이었다.
그날 선물처럼 내려온 작고 따뜻한 기적이 있었다.
비가 조용히 내리던 저녁 퇴근길에 작은 울음소리를 들었다.
가로등 불빛 아래 노란색 털을 잔뜩 웅크린 아기 고양이가 젖은 몸으로 떨고 있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서성이다가 결국 우산을 접고 조심스레 그 아이를 안아 들었다.
차갑고 젖어 있었지만 작은 심장 소리가 손끝을 타고 전해져 왔다.
집에 오래 머물지 못하는 사람인 내가 이 아이를 데려가도 되는걸까 망설이면서도 이미 발걸음은 집을 향해 있었다.
그날 밤 나는 아기 고양이를 거실 한복판에 내려놓고 따뜻한 수건으로 몸을 닦아주었다.
"치즈.. 따끈하고 작은 노란색인 너는 치즈라는 이름이 딱이겠다."
그렇게 조심스레 이름을 붙여주었다. 이름을 부르는 순간 마치 아주 가는 실 한가닥이 내마음에서 그 아이에게로 이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치즈를 집에 데려온 첫날 밤 나는 거의 잠을 이루지 못했다.
아기가 혹시 울지는 않는지 춥지는 않을지 작은 숨소리가 사라지지는 않을지 몇번이나 불을 켜서 확인했다.
평소 같았으면 나부터 챙기기도 버거웠을 텐데 이상하게도 치즈에게만큼은 익숙하지 않은 다정함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아침이 되자 치즈는 내 발목에 얼굴을 비비며 꼬리를 세웠다. 그 작은 몸에서 전해지는 따뜻함이 자꾸만 마음을 누그러뜨렸다. 출근 준비를 하면서도 치즈가 나를 따라다니는 걸 보느라 괜히 미소가 지어졌다. 이전엔 늘 무표정으로 지나가던 아침이었는데 그날은 마치 방 안에 햇빛이 하나 더 켜진 것 같았다.
회사에서도 치즈 생각만 났다. 그 작은 생명이 집에서 혼자 날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니 퇴근하고 싶은 마음이 오랜만에 간절해졌다. 집에 돌아오자 치즈는 작은 발로 후다닥 뛰어와 내 발등을 밟고 안겼다. 그 순간 하루의 피로가 한꺼번에 내려앉는 느낌이 들었다.
며칠이 지나자 내 일상은 조금씩 치즈의 리듬에 맞춰 바뀌었다. 평소엔 귀찮아서 넘겼던 빨래를 챙겨하고 정리하던 습관이 없던 방도 치즈가 다치지 않게 하려고 조금씩 치우기 시작했다. 아침에 늦잠을 자던 나도 치즈 밥 챙기려고 자연스레 일찍 일어났다.
특히 마음의 변화가 더 컸다. 예전에 집에 들어오면 깜깜한 방에 불을 켜는 게 너무 싫었다. 그 순간 내가 혼자라는 사실이 더 크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치즈가 오고 난 뒤로 현관문을 열면 나를 향해 달려오는 작은 발소리가 선물 같았다.
어느날밤 치즈가 내 무릎 위에서 잠들어 있었는데 그 조그만 몸이 따뜻한 물주머니처럼 포근하다 못해 가슴속 깊은 데까지 온기가 스며들었다. 내 삶은 여전히 평탄했다. 하지만 더 이상 조용하지 않았다. 작은 숨결이 작은 발소리가 작은 온기가 매일을 조금씩 흔들고 부드럽게 데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