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히어로, 엄마

수성

by 단비

라는 태양을 있게 하는 중한 행성들 : 나를 태양에, 나를 있게 한 고마운 이들을 행성에 비유해 한 명 한 명에게 편지를 건넨다.

첫 번째 행성. 엄마에게.






수성

태양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행성.

언제나 태양 옆에 붙어 다니기 때문에 관측하기가 쉽지 않다.








내 인생의 히어로


히어로가 대세였지. 아니 엄마에게는 아직도 대세지. 미스터트롯의 임영웅 말이야. 그간 아이돌과 힙합에 밀려 사양길로 접어드나 싶었던 트로트가 미스트롯과 보이스퀸 등의 티브이 프로그램으로 슬슬 날개를 펴더니 코로나19로 외출을 자제하고 집에 머물게 되는 집콕 문화와 만나 미스터트롯으로 정점을 찍으며 날아올랐어. 미스터트롯은 무려 35.7%의 시청률을 찍었어. 대한민국 사람 셋 중에 하나는 미스터트롯을 봤다는 이야기이지.

브래드 피트, 이휘재, 차태현, 김남길, 김혜수, 천우희, 류준열에 열광하며 청소년기부터 마흔이 넘은 지금까지 나의 최애 연예인이 바뀌는 시간 동안 엄마는 단 한 번도, 그 어떤 연예인도, 좋아하지 않았었어. 내가 티브이를 보며 좋아하고 웃고 있으면 ‘그게 재밌니?’ 하며 신기하게 보기까지 했었지.

그런데 3월의 어느 날 가족 단톡방에 엄마의 톡이 왔어. ‘미스터트롯 임영웅 진으로 투표해.’ ‘그게 뭐야? 우린 미스터트롯 안 봐요.’ 찾아보니 임영웅은 미스터트롯 최종 결승에 오른 사람 중 하나였고, 엄마는 이미 그의 팬이 되어 있었어.

미스터트롯은 실시간 국민투표로 진이 결정되는데 문자투표 폭주로 인해 우승자 발표가 연기되었어. 문자투표 집계가 바로 이루어지지 않을 정도의 문자투표라니. 실로 엄청난 인기가 아닐 수 없었지. 엄마의 바람대로 임영웅은 진이 되었고 엄마는 가족 단톡방에 평소 쓰지 않는 환희의 이모티콘을 슬며시 보냈더랬어.

부처님 오신 날, 노동절, 어린이날이 몰려있던 이번 연휴에 엄마아빠가 제주에 왔었어. 코로나19 때문에 대부분의 여행이 드라이브 쓰루로 이루어졌지만 공통된 것 하나. 차 안에서의 음악은 모두 임영웅 노래였지.

“엄마, 임영웅이 왜 좋아?”

엄마의 눈이 금세 그렁그렁해졌어. 그때까지도 장난기 어린 눈으로 “눈물 날 정도로 임영웅이가 좋아?”라고 물었어.

이내 들려오는 엄마의 대답. “엄마랑 비슷해서. 그리고 효자라서.” 아..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어.



나는 외할아버지의 얼굴을 본 적이 없어. 대학에 들어가서 사진으로 한 번 뵈었는데 참 미남이셨어. 엄마 아홉 살 때 엄마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했어. 강직하고 올곧은 경찰이셨는데 추문으로 인해 자살하셨다고.. 그 모멸감과 수치심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 결백을 증명하셨다고 했었어. 그 현장을 엄마는 외할머니와 함께 직접 보셨다고 했고. 그 때부터 엄마는 두 동생을 둔 한 집안의 장녀이자 외할머니의 남편이자 한 가정의 가장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이모와 외삼촌에게도 여러번 들어 익히 알고 있었고.


초등학교 졸업식 날 아빠와 함께하는 다른 친구들이 너무 부럽고 돌아가신 아빠가 너무나 그리워 교실 담벼락 뒤에서 서럽게 숨죽여 울었었다고. 그 모습을 본 외할머니도 마음 아파하셨다고 했어.


어느 하교 길. 집으로 향하던 도중 엄마는 외할아버지 뒷모습을 꼭 닮은 사람을 보곤 뒤따라갔다는데 분명 아빠는 이 세상에 없다는 걸 머리로는 알지만 엄마도 모르게 하염없이 따라갔다고 했어. 외할머니는 집에 올 시간이 되었는데도 오지 않는 엄마를 찾아 나섰다가 딸이 남편의 뒷모습을 닮은 한 남자를 뒤따라가는 모습을 보고는 길가에 주저앉아 우셨다고. 엄마는 낚시터에 가서 앉는 아저씨를 보고 나서야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갔고 외할머니가 울고 계신 모습을 본 후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지 다짐했다고 했어.

내가 자라며 기억하는 엄마는 단 한 번도 외할머니에게 ‘아니오.’라는 말을 한 적이 없었어. 그건 어렸을 때도 마찬가지였다고 했지. 혼자 삼 남매를 키우시는 엄마가 안됐고 미안하고 고마워서 외할머니 말씀을 거절한 적이 없다고 했어.

중학교 단체 영화 상영 날. 집에 가방을 두고 돈을 받아 단체 영화를 보러 가려했는데 가지 말라며 집에 있으라는 외할머니 말에 단 한 번의 떼씀도 없이 알았다고 말했다던 엄마. 대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친구에게 ‘혼자가. 엄마가 가지 말래.’라며 돌아서면서 너무 속이 상해 펑펑 울었다던 엄마. 그것도 외할머니가 보시면 마음 아파하실 것 같아 마당에서.

그런 엄마가 외할머니의 말을 거역한 적이 딱 한 번 있었는데 고등학교 진학하지 말라는 외할머니의 말을 거역하고 시험을 봤다고 했어. 시험에 합격한 기쁨으로 외할머니에게 달려가 ‘엄마, 나 고등학교 합격했어.’하며 안겼는데 외할머니는 깊은 한숨을 쉬시며 ‘어떡하니.’ 하셨다고. 똑똑한 딸이 고등학교 합격해 와서 대견하고 기특한데 자신도 모르게 학비 걱정에 한숨부터 나오셨던 거라며.


고등학교 졸업 전에 취업을 했다고 했어. 야무지게 잘 컸었네 우리 엄마. 기업은행에서 스카우트가 들어왔는데 그 당시 3백만 원이라는 큰돈을 내야 했어서 포기하고 또 다른 스카우트 처인 아모레에 입사했다고. 밑에 열 명의 직원을 거느린 한 지점의 최고지위까지 올랐었다던 멋진 엄마.

살면서 수없이 아빠가 그립고, 엄마가 안쓰러웠을 우리 엄마.


임영웅의 인생이 예측되었어.

임영웅이 다섯 살 때, 그러니까 그의 어머니가 서른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지. 그리고 그때부터 그의 어머니는 임영웅을 혼자 키우셨고, 공부하라는 어머니의 바람에도 그는 노래를 놓지 않고 여기까지 왔대. 엄마는 임영웅이 노래를 부를 때마다 어머니를 생각하고 늘 어머니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전하는 것이 그렇게 예뻐 보일 수가 없다고 했어. 부디 좋은 여자 만나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간절한 소원이라고 하셔서 농 반 진 반으로 엄마에게 ‘아들이네 아들이야.’ 했었던 게 기억나. 나는 마치 남동생을 하나 더 얻은 기분이었어.



내 손에 잡은 것이 많아서 손이 아픕니다. 등에 짊어진 삶의 무게가 온몸을 아프게 하고 매일 해결해야 하는 일 때문에 내 시간도 없이 살다가 평생 바쁘게 걸어왔으니 다리도 아픕니다. 내가 힘들고 외로워질 때 내 얘길 조금만 들어준다면 어느 날 갑자기 세월의 한 복판에 덩그러니 혼자 있진 않겠죠. 큰 것도 아니고 아주 작은 한마디 지친 나를 안아 주면서 사랑한다. 정말 사랑한다는 그 말해준다면 나는 사막을 걷는다 해도 꽃길이라 생각할 겁니다. 우린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겁니다. 저 높은 곳에 함께 가야 할 사람 그대뿐입니다.》


엄마가 좋아하는 노사연의 바램 가사야. 엄마가 좋아한다고 해서 가사를 찾아보다가 엄마의 인생이 투영돼서 나도 모르게 꺼이꺼이 울게 되었던 노래이기도 해. 결혼 전에 가장으로 살아왔던 엄마의 인생 말고도 결혼 후 종갓집 장손 며느리로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 시아버지를 모시며 아빠의 내조도 하고, 일도 하며 우리 남매를 남부러울 것 없이 키우시느라 애쓰셨던 딸, 며느리, 아내, 엄마의 인생까지 파란만장한 우리 영숙 씨의 삶이 파노라마처럼 그려졌어. 아빠는 3녀 1남 중 막내에 막내 고모는 아빠와 열네 살 차이가 나는 귀한 대접을 받고 자란 막둥이 아들. 엄마를 7년 동안이나 따라다녔던 아빠는 결혼 후 성실하게 직장생활을 하셨지만 집안 대소사는 모두 엄마 차지였지. 엄마는 결혼 후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를 모실 때 39kg까지 빠진 적이 있다고 했어. 치매에 걸린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다시 또 치매에 걸린 할아버지까지 돌아가셨을 때 아빠는 엄마 손을 잡고 "당신 고생 많았어. 이제 내가 당신 위해서 살게." 하셨다는데 지금도 가끔 투닥투닥하는 걸 보면 난 엄마가 많이 참고 사는구나 싶어. 또 둘이 참 다른데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맞춰가며 사는구나 싶기도 하고.

결혼 이후의 시간만 40여 년. 이 노래를 아빠가 엄마에게 불러준다면 금상첨화겠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아빠는 음치에 박치시니 엄마 사위한테 한 번 부탁해 볼까?

노사연의 바램을 부르며 엄마를 생각한다는 임영웅의 말에 엄마의 눈시울이 촉촉해졌어. 배신자를 부르며 아빠를 생각한다는 임영웅의 말에 시린 가슴을 다독이는 엄마를 보며 생각에 잠겼어.

‘참 다행이다. 늘 곁에 있어 드리지 못하는 나 대신 임영웅이 있어서, 위로가 되는 임영웅 노래가 있어서 다행이다.’

임영웅에게 슬며시 고마운 마음까지 들었어.



엄마의 인생 이야기. 어렸을 때부터 귀에 딱지가 앉게 들었다고 생각했는데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고 내가 엄마의 나이가 되고 나니 더 가슴에 박혀. 어떻게 그런 인생을 사셨을까. 어떻게 그런 시간들을 버티셨을까. 어떻게 우리 남매에게 부족함 없이 모든 사랑을 다 주셨을까. 정말이지 대단하고 존경스럽고 깊이 감사해.


엄마의 인생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울었어. 나까지 덩달아 슬펐고 우울감이 생겨서 가끔 외면하고 싶을 때도 있었어. 나는 엄마에게 어줍지 않은 충고를 했었지. 속에 담아두고 살지 말라고, 그러다가 화병 생긴다고. 그 상황이 되어보지도 못했으면서. 그 마음을 다 알지도 못하면서.

나는 다 이야기하고 산다고 그게 정신건강에 좋다고 이야기하면 엄마는 말했어. ‘그래 그렇게 해. 엄마처럼 살지 마.’ 난 또 잘난 척을 하고 이렇게 말했지. ‘난 누구처럼도 안 살아. 그냥 나답게 살 거야.’ ‘그래 그래.’


엄마. 그런데 난 엄마처럼 살 거야. 어떤 환경이나 상황에서도 지혜롭게 대처하며 모두의 마음을 살피고 가장 좋은 방향으로 결과를 이끌어가려 노력하는 엄마처럼 말이야.

부모가 될 준비를 하고 있는 지금. 난 우리 딸(아들)이 우리 엄마를 닮았으면 좋겠어. 부모 마음 헤아릴 줄 알고, 자기 일 똑 부러지게 잘하고, 어른 알고, 예의 바르고, 가족들 잘 챙기고, 하나님을 섬기고 사랑하며, 자연을 누릴 줄 아는 그런 사람. 물론 주신다면 말이야. 아니라면 엄마 사위랑 둘이 알콩달콩 그렇게 살아가려고 노력해야지.


늘 곁에 있어서 오히려 잘 보이지 않았어. 엄마는 그냥 처음부터 엄마인 줄만 알았어. 아빠 사랑 듬뿍 받고 싶었던 딸, 귀하게 대접받으며 남편 사랑 듬뿍 받고 싶었던 여자로서의 삶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었어. 가장을 대신했던 듬직한 장녀로, 빚더미인 집에 시집와 집안 야무지게 돌보며 치매에 걸린 시부모 모셨던 십여 년의 세월 동안 참 어깨가 무거웠을 것 같아. 엄마는 지금도 뚜기네랑 우리 집에 올 때마다 여행가방에 우리에게 줄 것만 한가득 담아 오지. 늘 누군가에게 베풀기만 했던 습관 때문에 우리가 사드리는 것들을 마음 편히 받지도 못하고. 엄마, 이제 충분히 받고 누려도 돼.


딸내미 얼굴 보고 싶다고 9월 달에 오신댔는데, 맛있는 거 많이 해드리고 또 사드리고, 좋은 거 많이 보여드려야지.

사랑해 엄마 아주 많이. 임영웅 단독 콘서트 하면 꼭 티켓 끊어드릴게요.


지금 엄마의 히어로는 임영웅.

내 인생의 히어로는 우리 엄마.


안돌오름에서 엄마와 함께 / 내가 찍어드린 엄마 사진


2020년 8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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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기와 같이 2022년 송도에서 열린 임영웅 콘서트 티켓을 끊어드렸는데 너무 좋았다며 다음에 또 보내달라던 엄마. 그럴께 엄마. 티케팅에 성공하면 얼마든지.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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