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_엄마의 김치

아주 오래도록 김치를 배우지 말아야지

by 단비
엄마의 칠순을 맞아 부모님 리마인드웨딩 사진 (기획, 촬영 : 단비) :)



지지난주 주말 엄마의 칠순 날이 마침 사촌동생의 결혼식이었다. 두 가지 큰 가족행사가 겹쳐 육지에 갔다가 엄마의 칠순을 기념으로 2박 3일 동생네 가족과 함께 삼척과 속초로 가족 여행을 다녀왔다.

다녀와서 남편은 그 며칠의 육지행을 "둥이들 때문에 다녀온 여행"이라고 기억할 만큼 사실 엄마의 칠순을 축하한다기보다 막 뛰어다니기 시작한 둥이 조카들 둘을 어른 여섯이 돌아가며 돌보는 일에 에너지를 쏟고 돌아온 여행이었다.

행복했지만 피곤했던, 피곤했지만 행복했던 여행이었다.


여행 중간 둥이 조카 중 한 명이 계단에서 굴러 머리를 부딪혔다. 좀처럼 울지 않는 녀석이 대성통곡을 하며 울어대고 다른 부위도 아니고 머리인지라 병원으로 달려가 CT까지 찍었다. 다행히 아무 이상 없었고 녀석은 잘 먹고 잘 놀다 집으로 돌아갔다. 엄마는 이 사건을 겪으며 얼굴이 초주검이 되셨다. 괜히 칠순 가족여행을 와서 다친 건 아닐까 자책하시며 노심초사하며 병원을 따라가셨고 결국 괜찮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난 후 긴장이 풀리며 체하기까지 하셨다.


그때 엄마 얼굴은 외할머니를 닮아 있었다. 나의 시험관 시술과 자궁외 임신으로 인한 수술, 둥이 조카의 작은 사고를 겪으며 엄마는 많이 늙으셨다. 문득 우리 엄마 늙었구나를 깨닫는데 마음이 울컥거리고 속이 상했다. 전혀 엄마 잘못이 아닌데도 왜 모든 일에 자책부터 하시는지.


엄마한테 더 잘해야지 다짐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여전히 긴 통화는 귀찮아하고 매일 전화도 못 드리긴 하지만.







올해는 갑자기 더워진 날씨 때문에 배추농사가 잘 되지 않았다고 한다. 배추가 금방 물러버려서 당장(10월 말) 김장을 해야 한다고 했다.

엄마는 그 피곤한 여행 뒤 바로 다음 날 김장을 하셨다. 몇십 포기나 되는 김장을 하시고는 바로 제주도 우리 집으로 보내주셨다. 배추김치, 총각김치, 깍두기. 김치 3종 세트를 무려 가장 큰 우체국 박스 2개에 넣어.


여행 다녀오신 뒤라 힘드신데 뭐 바로 김장을 했냐고 타박했는데 돌아온 답변은 단 하나였다.

"너네 줄려고."


우리 엄마의 김치는 맛있다.


맛있다는 말 밖에는 표현할 길이 없이 맛있다. 너무 짜지도 달지도 맵지도 않게 시간이 지날수록 시원한 맛이 가득 우러나오고 오래도록 아삭하다. 살면서 엄마 김치보다 맛있는 김치를 먹어본 기억이 거의 없다.

남편은 결혼 초 우리 엄마 김치가 맛있다며 시어머니에게 김치 보내지 말라고 말씀드렸다가 시어머니의 서운함을 산 적이 있을 정도다. 물론 시어머니는 쿨하고 인정이 빠른 편이셔서 "그래? 알았어." 하시며 그 후로는 김치 이외에 다른 밑반찬만 보내주신다.



해마다 엄마가 김장 김치를 보내주실 때마다 "엄마 김치 배워야지." 다짐하다가 올해는 그 다짐이 바뀌었다.


강세형 작가의 「희한한 위로」중 엄마와 관련된 에피소드를 읽으면서다. 매번 음식을 싸주시는 엄마를 향해 다 먹지 못한다며 싸주지 말라고 결국 못된 말을 내뱉었다던 작가의 에피소드였는데 그 못된 말에 꽂혀서 꺼이꺼이 울어버렸다.


"나중에 돈 주고 김치 사 먹게 되면, 내가 얼마나 슬프겠어!"

- 희한한 위로 중 -


상상도 못 할 만큼 슬프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난 엄마가 없었던 적이 없는데.

거울을 보며 짙어진 다크서클과 빠진 볼 살을 감추려 애써 웃어 보이는 나를 생각하면 내가 살아온 세월만큼이나 늙어가는 엄마가 익숙해질 법도 한데 나는 아직도 엄마의 주름이 낯설다.

시아버님도 돌아가셨고 또래들 중에 부모님을 먼저 보낸 친구들이 적지 않은데도 나는 여전히 부모님의 부재는, 특히 엄마의 부재는 상상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엄마한테 김치를 배우지 않겠다고 선언하려 한다.

대신 오래도록 건강하게 살면서 매년 딸내미 김장 김치 해달라고 말씀드릴 예정이다.

오래도록 맛있는 엄마 김치가 먹고 싶다고.


나는 왜 이 글을 쓰는데 또 폭풍 눈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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