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는 태양을 있게 하는 소중한 행성들 : 나를 태양에, 나를 있게 한 감사한 이들을 행성에 비유해 한 명 한 명에게 편지를 전한다.
두 번째 행성. 나의 옛 연인 중 그 새끼 말고 그대에게.
금성
우리가 흔히 '샛별'이라고 부르는 행성으로
해뜨기 전 동쪽 하늘이나 해진 후 서쪽 하늘에서 보인다.
신화 속 금성 이야기
서양에서는 금성을 로마 신화의 비너스(Venus)라고 부르고 있다. 메소포타미아에서는 금성의 아름다움(밝기) 때문에 미의 여신 이슈타르라 불렸고, 이후 그리스에서는 아프로디테 등 세계 각국에서 금성의 이름을 아름다운 여성의 이름으로 붙인 경우가 많다. 기독교에서는 라틴어로 '빛을 가져오는 자'(루시퍼, Lucifer)라 불렀다. 모든 것을 압도하는 빛과 고고함에서 유일신으로 모시는 가장 고위의 천사(그리고 나중에 지옥으로 떨어지는 타락천사)의 이름으로 주어진 것이다. 그리고 불교에서는 석가모니가 금성이 빛나는 것을 보고 진리를 발견했다고 전해진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H에게
(플래시백)
눈 떠보니 시계는 8시 45분을 향해 가고 있다.
'설마..? 에이 7시 45분이겠지..
맙소사!'
침대에서 자석처럼 튀어올라 욕실로 향한다.
5분 만에 세안을 마치고 손에 잡히는 대로 옷을 뒤집어쓰고는 달려 나간다.
집에서 회사까지 지하철로 두정거장 거리지만 걸어서 지하철역까지 당도하는데만 5분.
생각할 겨를도 없이 택시를 잡으려 손을 뻗는다.
평소엔 그리도 많던 빨간 LED의 '빈차' 글씨 대신 오늘은 손님을 태운 택시들만 빠르게 스쳐 지나간다.
그러길 5분여. 겨우 택시를 잡아 타고 회사 상사에게 문자를 보낸다. 한숨 돌릴 겨를도 없이 선크림을 덕지덕지 바르고 최소한의 자신감을 위한 파우더를 얼굴에 토닥인다.
참.. 살다 살다 별일을 다 겪네. 피곤하긴 했지. 어제는 회식 1차 후 (지난 주말 막창과 돼지껍데기, 치맥, 순댓국, 정점을 찍은 애슐리 뷔페 등을 폭풍 흡입해 ) 온몸 구석구석 축적되어 있는 지방을 태워보겠다는 일념으로 헬스장에 달려가 한 시간 넘게 러닝머신에서 시간을 보내고 집에 와 기절하듯 잤지.
지난 한 주가 필름처럼 스쳐갔다.
내가 진저리 나게 싫어하는 일
1. 더위
: 추위도 힘들어하긴 하지만 더위만큼 진저리 나진 않아.
최소한의 옷만을 입고도 견딜 수 없는 더위는 정말 난감하다고.
그렇다고 홀딱 벗고 다닐 수는 없잖아.
풍기문란까지 될 몸매는 아니다만 지독한 안구테러일 테니.
2. 소개팅
: 처음 보는 사람과 호구조사 및 어색한 취미 묻기는 정말 딱 질색. 그래서인지 몰라도 이 나이까지 살며 소개팅 한 횟수는 다섯 손가락 안에도 꼽히질 않는다.
마음을 열어야지 했는데 너무 내숭 없이 굴었나 보다. 침 튀기며 영화 이야기만 하다 왔다.
극과 극이다. 도무지 중간이 없다. 그런데 다음엔 밥 먹잖다. '어휴 ~ 이 어색한 시간을 또 보내야 하나..?'
3. 영화 볼 기본 매너 안 돼있는 인간들 바글바글한 멀티플렉스관에서 영화보기
: 영화관서 줄기차게 팝콘 아삭거리고 먹는 인간들. 핸드폰 문자, 카톡 보내며 롱핀 쏘는 기본 안 된 인간들. 카페를 가거나 나가서 통화나 문자를 하라고. 영화관은 영화를 집중해서 보는 곳이야. 내가 사는 집 근처의 영화관은 개나 소나 영화 관람이라는 문화생활을 즐기러 오는 멀티플렉스관. 내가 좋아하는 독립영화관 주변 집 값은 억 소리 나게 비싸다는 이유로 이곳에 살고 있지.
내가 이곳으로 이사 온 이유는 딱 두 가지였어. 회사가 가깝고 집에서 5분 거리에 영화관이 있다는 거. 암튼 개념 없는 인간들은 딱 질색.
저 진저리 나게 싫어하는 일들을 정신없이 겪어냈던 지난 일주일이 0.1초 만에 뇌리를 스쳐간다.
8시간이 어떻게 지났는지 모르겠다. 이별 후 가장 견디기 힘든 일. 일상을 살아내는 일이다.
아무것도 먹기 싫고 어떤 일도 하기 싫은데, 살아야겠기에 죽지 않을 만큼 뭔가를 입으로 욱여넣고, 당장의 월세를 위해 꾸역꾸역 일어나 회사로 출근해야 하는.. 그 지독한 일상 말이다.
하루가 참 빠르다. 벌써 퇴근시간. 그렇게 시간이 또 참 빠르다. 그대와 이별한 지 벌써 8개월이 지나간다.
지옥철에 몸을 맡기곤 두 정거장을 떠밀리듯 실려와 지하철 입구 계단을 오른 뒤 온몸 구석구석의 귀소본능을 작동해 집까지 당도한다. 멘탈은 이미 안드로메다에 가 있으니.
극도의 피로가 몰려와 현관으로 몸을 던져 넣는다.
집이다. 싱크대 위의 바나나 껍질.. 뭐야? 습관처럼 화장실로 들어선다. 세면대가 막혀서 샤워기를 틀어 발을 씻으려다 생각한다. 아침에 물이 잘 안 내려갔는데.. 또 머리카락이 찼나 보다. 어우 귀찮아. 매번 그대가 뚫어줬는데.. 샤워기 물을 튼다. 보나 마나 한참 물이 가득 고여있다 천천히 빠지겠지.
웬걸.. 콸콸콸 막힘없이 내려간다.
순간 머리가 멍해진다.
그대.. 구나.
그대가 왔다 갔구나.
"카톡!"
한결같이 명랑하고 명징한 카톡 알림음.
그대다.
'책 가져갔어'
'그러고 어떻게 사냐?'
바나나는 먹고 껍질은 싱크대 위에 올려두고, 야무진 척하며 나보고 이러고 어떻게 사냐고 잔소리를 해대고 막힌 화장실은 뚫어주고 가는 그대..
그대.. 가 왔다 갔구나.
그러고 보니 책장의 책도 줄었구나.
여전히 책장에 꽂힌 책의 반 이상이 그대 책이건만, 사라진 몇 권의 책으로 내 머릿속 그대의 기억이 사라진 것만 같아 또 아프다.
그대를 마음에서 비워내는 일. 누군가가 마음에 차오르는 일.
분명 물리적인 시간이 필요할 테지.
난 그대를 온전히 내려놓았다고 생각하고 이제 새로운 누군가를 위한 시간을 보내려 하고 있다.
그대 대신 누군가를 위한 오롯이 그가 아니면 안 될 시간들을 향해 가고 있다.
그대도 부디 그러길.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겠지.
매일 함께 했던 시간들, 세상에 그대만 존재했던 시간들, 지상 최고의 로맨틱한 시인으로 살았던 시간들, 그대 하나면 충분했던 시간들, 서툴고 서운했던 마음들, 서로가 힘들었던 시간들, 마음을 정직하게 표현하지 못해 후회했던 시간들, 시작하기 전 우리가 아프게 했던 이들, 끝나고 난 뒤 돌아올 거라고 믿었던 시간들, 기다림이 사랑임을 깨달았던 시간들, 다신 돌이킬 수 없음을 알았던 순간..
모든 것이 잊혀지겠지. 언젠가는..
그럴.. 수 있을까? 그대를 잊을 수 있을까? 감기몸살로 고생하는 날, 느닷없이 비가 쏟아지는 날, 하늘이 눈부시게 파랗게 물든 날, 보고 싶었던 영화 개봉하는 날.. 난 여전히 어김없이 그대가 가장 먼저 생각이 나는데.
울컥 대는 마음을 애써 삼키고는 현관으로 나간다.
'이제 현관 비밀번호 바꿔야겠다.'
**
몇 달 전의 일기를 꺼내 읽는다.
벌써 아득하다. 그랬었지. 그랬지. 그렇지. 그렇게 잊혀지겠지. 다시 아프다.
잊을 수가 없구나. 기억은 사랑보다 나를 더 오래도록 붙잡는구나. 나를 그때 그곳으로 다시 데려가는구나. 행복해야 해.
'새 일기장을 사야지.'
오늘부터 새로운 기억을 다시 써야지.
(NOW)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 인생에서 유독 문제도 답도 알쏭달쏭하고 정의 내리기 힘든 사랑과 연애. 두 번째 사랑과 연애와 이별을 겪고 나는 훌쩍 커버렸어.
왜 헤어져야 하는지 어리둥절했던 첫 번째 사연(사랑과 연애 그리고 이별)을 겪고서는 학교 도서관에 쭈그리고 누워 눈이 팅팅 붓도록 울다가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학교 앞 노래방에 가서 ‘사랑 안 해’를 백 번 넘게 불러댔어. 친한 친구들에게 전화해서 통화하며 또 울었지. 하지만 충분히 찌질하지 못했어. 구남친 바람이 이별의 이유임을 알게 된 후 배신감에 치를 떨었음에도 부모님이 속상해하실까 밝은 척 괜찮은 척하다 천천히 시간이 흘러 자연스레 나의 사연을 누군가에게 들려줄 수 있을 만큼 상처를 잊어갔지. 나는 아주 오래도록 누군가를 지켜본 후에야 쥐꼬리만큼씩 마음을 열게 되는 철벽녀로 5년이 넘는 시간을 보냈어.
두 번째는 달랐어. 응. 바로 너와의 이별. 사랑할 때는 보이지 않더니 이별 후 주변의 연인들이 눈에 들어왔고, 세상에 사랑 노래가 이렇게 많구나를 새삼 깨달았어. 내 멋대로 였던 내가 보이기 시작했고, 나와는 달랐던 너의 사랑도 이별 후에야 깨닫기 시작했어. 나의 고집과 교만과 믿음 없음이 적나라하게 수면 위로 떠올라 건져내고 건져내도 끝도 없이 부유했었지. 하나님과 대면하며 나의 무능을, 한없이 작음을 처절하게 깨닫고 하나님과의 관계도 회복해갔어. 기억나? 그 와중에 자살소동, 무한반복 전화, 길거리에 주저앉아 울기 등 이보다 더 찌질할 수 없다의 면모도 발휘하며 인생 극강의 찌질녀가 되었었지. 그래서인지 아무런 미련을 남기지 않은 채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었어. 한 뼘까지는 아니지만 손가락 한마디 정도는 성장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어. 지금은 너의 행복을 빌어줄 수 있는 조금은 멋진 인간이 되었다고 스스로 자부해.
수많은 고슴도치들이 살아가는 세상. 사랑 때문에 보이지 않던 가시가 연애를 하면서 드러나 여기저기 찌르고 생채기를 내. 물론 그대로 두면 곪고 아프고 다시는 고슴도치의 가시에 찔리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트라우마가 되기도 하지만, 잘 치유하면 새살이 솔솔 나서 찔리는 두려움보다 약 바르고 치유하면 되니 다가가도 된다는 용기를 알려주지. 나이가 들면 회복이 더디므로 가시에 찔리지 않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방법을 배우게 되는 현명한 이별까지.
중고등학교에서 국어, 영어, 수학 대신 사랑, 연애, 이별을 가르쳐줬으면 좋겠고 대학교에는 사랑학과 연애학과 이별 학과가 생겼으면 좋겠어. 스무 살이 넘어서야(요즘은 초등학교 이전부터도 겪는다는데) 겪었던 생경하고 당황스러운 감정들에 적잖이 놀랐고 스무 살 이후에도 내 인생에 십여 년 간 혹은 몇십 년이 될 수도 있는, 인생에 영향을 끼치게 되는 일생일대의 사건이 되니까 말이야. 관계자분들은 진지하게 고민해주시길. :)
너는 내 인생 그 시절에 나의 가장 밝은 빛이었던 사람이었어.
해뜨기 전 동쪽 하늘에서 혹은 해진 후 서쪽 하늘에서 잠깐 보이는 금성. 결코 태양과 동시에 보이지 않는 반짝이는 샛별. 신화 속에서 아름다움으로 가장 많이 회자되는 행성. 그 빛나는 행성과 함께 하고 싶지만 태양과 함께일 수 없기에 결국은 스쳐갈 인연이었던 이. 나와 함께일 때는 자기로 불리다가 이별 후 나쁜 놈, 그 자식, 혹은 그대로 불리는 사람. 그래 너.
진심을 다해 감사를 전해. 가장 밝고 빛나던 그 시절의 나에게도.
사랑과 이별을 통해 더욱 나를 알아가고 조금씩 성장하고 한 걸음씩 용기 내어 걸어갔던 반짝이던 날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고 또 지금 내 곁에 소중한 이도 만날 수 있었으니까.
부디 너도 지금 곁의 그 사람과 오래도록 행복하길.
함덕바다. 잠시나마 내 인생의 휴식이 되어 주었던 이에게 감사. 사진 오른쪽 발 주인공은 지금 내 인생의 휴식처.
2020년 9월 1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