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는 태양을 있게 하는 소중한 행성들 : 나를 태양에, 나를 있게 한 감사한 이들을 행성에 비유해 한 명 한 명에게 편지를 건넨다.
세 번째 행성. 지구. 내가 숨 쉬는 공간.
남편에게 전하는 러브레터.
지구
인류가 살아가는 천체
여보야에게
“그 열여덟 새끼 죽빵을 날리고 회사 나와버려요!”
직장 상사가 자꾸 내 공은 가로채고 과오는 내가 한 듯 뒤집어씌운다고 푸념 섞인 이야기를 하자 남자 친구가 던진 한마디. ‘어쩌면 저 사람과 한평생을 함께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한 결정적 한마디였죠.
누군가에게는 불평과 불만으로 들릴 수 있는 몇 마디에 전적으로 내 편이 되어주며 건네는 그 말 한마디가 난 너무 고마웠고, 아이러니하게도 회사를 계속 다닐 힘을 얻었어요.
그 남자 친구는 나의 남편이 되었고요. 응 바로 여보야.
자타공인 또라이인 여보야랑 나. 저 ‘또라이’라는 게 원칙과 상식에 어긋난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냥 ‘패러다임 안에 있지 않은, 남들과 조금 다른’이라는 의미일 거예요. 아마도. 그렇겠죠?
오래전부터 모든 생활에 FM인 부모님은 나에게 왜 남들과 비슷한 길을 가지 않느냐는 질문을 많이 던지셨어요. 난 그냥 나의 시간표대로 나의 기준대로 주체적인 나의 삶을 살아갈 뿐이라고 대답하며 수 십 차례 부모님과 논쟁을 했더랬죠. 부모님은 그 오랜 시간 동안 아셨을 테죠. 딸의 범상치 않음을.
기억나죠? 나와 여보야를 소개해준 C는 둘이 사귄다고 하자 축하에 앞서(축하 대신이던가.. 이제 보니 축하받은 기억이.. ;;) “J씨가 언니 또라이인거 알아?”라고 물었다는 거. (C로 말할 것 같으면 둘이 결혼한다는 소식을 전했을 때 “그러라고 소개해 준 거 아닌데.”라는 한마디로 축하를 갈음했던 녀석.) C의 말을 전하자 여보야가 말했어요. “괜찮아요. 나는 상또라이니까.” 얼마나 든든하던지. 게다가 유머감각까지 겸비했다고 생각했었는데. (유머인 줄 알았는데 살다 보니 진짜 상또라이가 맞... )
참 신기해요. 자유로운 영혼 둘이 만나다니.
여보야는 원래부터 집에서 터치하지 않으셨다며. 어머니께서 사주를 보러 가셨는데 막내아들은 그냥 두면 알아서 잘 살 거라고. 이리저리 가두고 옭아매면 더 뛰쳐나가는 타입 이라며.
나는 어렸을 때부터 아주 모범생이었고 부모님 속을 한 번도 썩이지 않는 착한 딸이었어요. 그런데 대학원 졸업 후 잘 다니던 회사 때려치우고 스물여덟에 공부하겠다고 노량진으로 가출 한 번, 서른셋에 여덟 살 어린 대학생과 결혼하겠다고 선전포고(그 여덟 살 어린 대학생은 나 때문에 잘 다니던 대학 자퇴 후 신학대생으로 편입했다) 한 번 정도 했어요.
딸내미 스물일곱에 결혼시키겠다는 부모님의 야무진 꿈 대신 그 딸내미는 그 해 퇴사와 공부를 선택했고. 5년이 지나 한 목사님이 소개해주신 신앙 좋고 잘 나가는 대기업 팀장인 바른생활 청년과의 결혼 대신 마음이 이끄는 대로 한참 연하와의 새로운 만남을 선택했지요. 물론 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며 매 순간 내 인생 전부를 건 선택을 한 것이었지만.
그럼 여보야가 여덟 살 연하? 미안 여보야.
여보야랑 나는 첫 번째 연락 이후 두 달이 지나서야 대면했죠. 기억도 가물가물한 첫 번째 연락은 쌍방 간 성의 없는 문자 한 통. 때는 바야흐로 ‘이제 다시 사랑 안 해’를 마음 밑바닥부터 켜켜이 다짐하고 또 다짐하던 시기. 맞아요. 집안을 뒤집어 놓고 몇 년간 매 번 명절을 갑분싸로 만들며 꿋꿋하게 나의 소신을 주장하며 만났던 여덟 살 연하 친구와 헤어지고(부모님의 반대가 아닌 둘의 문제로) 6개월이 지난 시기.
[J 형이 소개해줘서 연락드려요. 블라블라 블라 ~] 문자를 읽은 기억은 나. 그리고 그때 나의 패턴도 기억이 나요. 회사를 간다. 일을 한다. 살기 위해 점심을 먹는다. 일이 많았으면 싶다. 일이 많으면 살기 위해 저녁을 먹고 다시 야근을 한다. 야근할 일이 없으면 집에 온다. 집에 들어서는 골목부터 처 울기 시작한다. 집에 들어와서 씻고(내 피부는 소중하니까) 불을 끈다. 혼자 밥이라는 걸 먹으면 체할 것 같다. 체하면 손 따줄 사람도 없는데 배 아프고 속 아프다 혼자 죽을 것 같다. 밥 따위는 패스하고 침대에 누워 처 울다 잠이 든다. 다음 날 아침이 되었고 문자가 와있었죠. 문자를 힐끗 보고는 소개해 준 J오빠 얼굴 봐서 답문을 남겼죠. [어제너무늦게문자를봐서답을못했어요. 블라블라 블라 ~] 난 그 당시 문자나 카톡을 보낼 때 띄어쓰기를 하지 않았어요. '요즘같이 바쁜 시대에 공문도 아니고 편지도 아니고 핸드폰 문자에 무슨 띄어쓰기야.'
여보야는 기자와 정치기획 등의 일을 했던 사람이었고 텍스트 오타쿠였다고 했죠. 그 당시 띄어쓰기 따위는 시간낭비라고 생각했던 나의 문자를 보며 마음속으로 ‘이 여자 패스!’를 외쳤다고.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나 여보야와 J와의 만남. “너 단비 씨랑 연락하냐?” “누구? 아~ 아니. 형 이 문자를 봐. 띄어쓰기도 안 하는 여자랑 무슨..” “어? 얘가 그럴 리가 없는데. 파워 블로거야. 다시 연락해봐” (난 파워블로거도 아니었고, 사실 J 오빠는 나를 전혀 몰랐어요. 여보야의 여자 만나는 조건 중 하나가 예수쟁이만 아니면 된다였는데 난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교회를 다닌 예수장이였거든요.)
나를 잘 몰랐던 J 오빠의 말 때문에 이 사단이.. 아니 덕분에, 여기까지 오게 되었던 거죠.
J 오빠의 말 한마디에 마음을 연 여보야가 문자를 보냈어요. “자요?” “아니요” 우리는 얼굴도 보기 전에 장장 4시간 반의 통화를 했죠.
여보야 목소리가 참 좋았어요. 재밌기도 했고. 말을 참 맛있게 잘한다고 생각했죠. 살면서 노래방 동호회가 있다는 이야기도 처음 들었고. 졸린데 재밌어서 전화를 끊을 수가 없었어요. 눈에 실핏줄이 터져가며 통화를 한 그날 이후 한 달 동안 문자와 통화만 했죠. 서로가 서로에게 장단을 맞춰가며 문자를 주고받았죠. 센스 터지는 문자와 좋은 목소리 덕에 그 한 달 동안 난 이 사람이 아주 뚱뚱해도 못생겨도 괜찮다는 마음이 슬며시 들었어요. 그러다가 '아주 뚱뚱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같이 다니기 창피할 정도만 아니었으면 좋겠다'라는 마음이 조금씩 올라올 즈음 첫 만남을 하게 되었죠.
그 당시 C와 J오빠와 자주 갔던 다양성 영화 상영회가 있었는데 그곳에서 만나기로 했죠. 서로의 얼굴을 모르니 인상착의로 서로에게 문자를 보내 맞추는 쪽이 소원을 하나 말하기로 했어요. “버건디색 가죽재킷에 긴 머리. 빙고” 이런 식으로. 꼭 빙고를 붙여야 했어요. 여보야에게 먼저 문자가 왔는데 빙고가 빠져서 내가 먼저 선수를 쳤었죠. 그러고 보니 나 그때 소원 말 안 한 것 같은데. 이제라도 들어줘요.
첫날이라 어색할까 봐 운정이는 넷이 같이 놀자고 했는데, 여보야는 대번에 둘이 간다고 인사하고 나왔어요. 내가 어지간히 맘에 들었나 보다 생각했죠. 우훗.
C는 속으로 “어라, 저것들 봐라~” 했고.
10시가 넘어 고기를 먹으러 갔어요. 그 첫날부터 지금까지 쭈~욱 여보야는 내 다이어트에 도움이 전~혀 안 되고 있네요. 무조건 먹으라고 하고, 살이 쪄도 예쁘다고 하고, 그러다 가끔 솔직한 엄마를 만나면 현실 직시를 하게 되죠. 난 정말 예쁜 줄 알았는데, 건조기를 잘못 돌려 옷이 줄어든 건 줄만 알았는데. 아니었어.
첫날부터 차마 집에까지 들어오지는 못하던 여보야가 손금을 봐준다는 핑계로 차 안에서 내 손을 만지작거리더니 대뜸 사귀자고 했어요. 그냥 그 상황이 재밌긴 했는데, 다시 누군가를 만나고 알아가고 사랑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다음번에 답을 주겠다고 했어요.
그 길로 집에 들어와 7장의 편지를 썼죠. 작정하고 그 긴 편지를 쓰려던 건 아니었고 쓰다 보니 그렇게 길어졌어요. 요는 나는 술, 담배가 싫다. 기호이긴 하나 나는 담배 피우는 남자랑은 못 산다. (지금 생각해보니 결혼까지 할 거 아니면 시작도 말자였네. 누가 살고 싶댔나, 사귀쟀지.) 난 사랑을 하고 이별을 해봐서 다시는 내 곁에 소중한 사람 놓치지 말자는 노력을 하는 사람이 좋다. 난 크리스천이다. 뭐 바른생활 청년까지는 아니어도 중요한 순간 하나님을 중심으로 나의 가치관과 인생이 결정될 것이다. 이런 나를 감당할 자신이 있으면 시작하고 아니면 말자.라는 내용이었죠. 생각해보니 결혼하고도 가끔씩 나한테 담배 피우던 거 걸려서 대판 싸운 적 있죠? 그거 명백한 사기결혼이에요 여보야.
이틀 뒤 카페에서 만나 편지를 전했어요. 그런데 편지를 받지도 않고 여보야가 대뜸 이렇게 말했어요. “인생을 살면서 때로는 일방통행이 필요할 때가 있다고 생각해요.” 내가 건네는 것이 거절의 편지라고 생각했던 거였어요. 사실 그때 심쿵했어요. ‘어머, 이 남자 박력 보소.’ 실실 새어 나오는 미소를 숨긴 채 말했죠. “일단 천천히 읽어보고 감당할 자신 있으면 그때 다시 말해요.” 그 자리에서 여보야는 7장의 편지를 천천히 읽고 다시 대시했어요. 내 대답은? 물론 Yes. 그때 여보야는 처음 생각했다고 했어요. 이 여자 범상치는 않구나.
그게 시작이었어요. ‘이제 다시 사랑 안 해’를 외치고 다녔던 내가 누가 보기에도 토 나올 만큼 알콩달콩 연애를 시작했죠. 사실 그때는 잘 몰랐어요. 일주일에 일곱 번 만나고, 나에게 '아가'라고 부르던 여보야와의 통화를 들은 직장동료가 여보야에게 '아가 아빠'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던 일들이 이제 와 돌이켜보니 알콩 달콩이 었더라고요. 그때는 마냥 신기하고 고마웠는데. 이렇게 쉽게, 이렇게 빨리(누군가에게 6개월은 빠르지도 않은 시기지만 그 당시 난 이별 후 2년 정도는 혼자여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다시 설레어도 되나 스스로의 가증스러움에 놀랄 때였으니까. 그것도 잠시 나는 매일이 재밌고 여보야와의 만남이 윤활유가 되어 회사에서 일하는 것조차 즐거웠었어요.
결혼 생각은 없었어요. 그냥 하루하루 평안하고 즐겁게 사는 게 좋았었지. 그런데 어느 순간 정말 거짓말처럼 식장에 서 있더라고요. 직장 동료들이 "너 진짜 결혼하는 거 맞냐? 결혼할 수 있겠냐?" 물을 정도로 열심히 일했었죠. 결혼식 전전날까지 회사에서 주관하는 행사를 치르느라 계속 야근했으니까. 지금도 결혼에 관해 지인들이 물으면 나는 "내 결혼은 남편이랑 우리 엄마가 다 준비해서 나는 아무것도 몰라."라고 대답해요.
결혼은 인륜지대사이며 천생연분이라고 하는데 맞는 말인 것 같아요. 한 사람의 인생이 오롯이 나에게 온다는 말. 내가 아무리 애쓰고 노력해도 안되던 일들이 정말이지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 진행이 되었어요.
하늘이 맺어 준 인연. 나를 가장 잘 아시는 분이 나에게 주신 내 인생 최고의 선물. 지금의 여보야.
여보야는 그 처음 모습 그대로 늘 나의 편이 되어주고 있어요. 나는 만삭에 가까운 남편의 배를 보며 온갖 잔소리를 해대지만(건강이 염려되서예요 여보야) 여보야는 내가 뭘 먹든 뭘 입든 심지어 며칠씩 안 씻어도 예쁘다고 괜찮다고 말해줘서 좋아요. 티브이 보며 따라 하는 어설픈 개그에 귀엽다며 웃어주는 것도 좋아요. 내가 누난데. 늘 첫째였고 어느 공동체에서나 선배였던 나는 여보야의 귀엽다는 말이 좋아요. 여보야 앞에서는 긴장을 풀고 아무렇게나 늘어져 있어도 창피하지 않아요.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는 여보야의 말에 오히려 스스로를 돌아보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를 고민하며 글을 쓰게 돼요. FM인 부모님과 잘 보이고만 싶었던 지난 연인들과 긴장되는 사회생활 속에서 내가 유일하게 편하고 따뜻하게 숨 쉴 수 있었던 공간을 만들어준 사람. 있는 그대로의 나를 온전히 받아주고 사랑해주는 단 하나뿐인 내 남자. 우리 알콩달콩 투닥투닥 복닥복닥 그렇게 오래오래 같이 늙어가요.
고맙고 사랑해요. 아주 많이요.
해지던 어느 날 함덕바다에서 우리
2020년 9월 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