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한 지 2주밖에 되지 않아 집안일을 전혀 못하겠다 싶어 부모님께 도움을 청했었다. 나와 함께 제주에 내려오신 부모님은 경악을 금치 못하셨다.
내려오신 다음 날부터 아빠는 아침마다 모기에 몇십 방 씩 물리시며 정글 같은 마당과 텃밭을 정리하셨고, 엄마는 아침부터 주무시기 전까지 집안일을 하셨다.
마당의 이끼 가득한 바닥석을 닦고 모든 식기를 설거지하고 청소기를 돌리고 바닥을 닦고 허리를 구부려 화장실 청소를 서너 번씩 하고 테라스의 지저분한 물건 치우고 정리를 하고..
욕실 슬리퍼, 외출용 슬리퍼를 락스와 베이킹소다에 섞어 닦고 선풍기를 뜯어내 씻고..
며칠만 조금 일하다 그래도 제주까지 가니 관광지도 돌아봐야지 하셨던 부모님의 계획은 전면 수정되었다. 몇 주 동안 일만 하셔도 일이 끊이지 않았다. 계속 일만 하시는 부모님을 보니 마음이 너무너무 안 좋았다.
남편은 윗배부터 배가 볼록하게 나온 전형적인 내장지방형 몸매의 소유자다. 아무리 잔소리를 해도 귀엽지 않냐며 자존감이 하늘을 찌르는 남자다. 좋게 말하면 자존감이 높은 건데 나쁘게 말하면 남 말 잘 안 듣는 똥고집 쟁이이다. 밤늦게 먹고 매 끼니 탄수화물 과다 섭취에 늦게 일어나 겨우 출근하고 운동은 전혀 안 하는 남편.
청결문제도 기가 막힌데 생활습관까지 엉망이었던 남편을 보고 엄마는 특별관리에 들어가셨다.
결혼 후 6년 동안 우리 사위를 입에 달고 사셨던 엄마였는데 이번에는 달랐다. 잔소리와 함께 군기반장을 맡으셨다.
아침 6시 반 기상, 30분 동안 운동삼아 마당일, 아침식사 후 출근, 저녁은 밥양 반으로 줄여 탄수화물 섭취 줄이기, 8시 이후 먹지 않기, 10시부터 잠자리에 들기.
처음에는 본인 잘되라고 하시는 의도를 알기에 잘 따랐던 남편도 엄마의 잔소리가 심해지니 얼굴색이 달라졌다. 본인도 회사 다니며 늦게까지 일하고 최선을 다하고 있고 회사에서 계단으로 오르내리고 운동도 하려고 나름 노력했다고 이야기했다.
엄마는 사위가 나만큼 노력했냐고 우리 딸 수술받고 입원해 있을 때 간호하는 내가 아프면 안 되니 병원 계단을 수십 번 오르내리며 눈물 뿌리며 기도하고 운동했다고 하셨다. 시험관 하고 수술까지 하면서 왜 내 딸만 고생해야 하냐고 둘이 같이 노력해서 자연임신 시도하고 성공하라고 생활습관 바로 잡으라는 게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냐고 말씀하셨다.
나는 그간의 시간들이 떠올라 엄마가 말씀하시는 내내 꺼이꺼이 울기만 했고 남편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사실 시험관을 하고 자궁외 임신으로 수술하고 입원, 퇴원을 하고 나서 한의원에 갔었다. 맥을 짚었는데 나는 건강한 편이라며 자연임신은 남녀 반반 원인이라 부부가 같이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남편이 지켜야 할 사항들이 적힌 종이를 보니 하나부터 열까지 다 그동안 지키지 않고 있던 내용이었다.
누군가의 탓을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간의 과정을 다 이야기하고 노력하자고 함께 다짐했는데도 자신의 피곤함만을 이야기하는 남편을 보고 있자니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부모님이 제주까지 오셔서 몇 주 동안 관광도 못하고 일만 하시는 게 누구 때문인데. 두 달 동안 매일 30분씩만 집 청소 좀 했으면 이렇게까지 안됐을 텐데라는 원망과 부모님에 대한 말할 수 없는 죄송함이 밀려왔다.
매일 밤 잠자리에 남편과 함께 눕는 것조차 싫었다. 아니 나를 생각하는 사람이 집을 이 꼴로 만들어 놓고 우리 부모님이 오셔서 몇 주를 일하게 만들고는 할 말이 있어?
내가 결혼을 잘못한 건가? 후회가 파도처럼 훅 밀려왔다.
처음엔 후회는 아니었던 것 같다.
전에 나 좋다는 대기업 팀장 교회 오빠는 술, 담배를 안 했었지. 그때 운전 못하는 거에 꽂혀 남자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둥 내 복을 차 버리지만 않았어도 지금쯤 난임이란 단어도 모른 채 아이 둘셋 쯤 낳아서 편하게 살고 있겠지 라는 결코 돌아갈 수 없는 '만약'이라는 상상이 시작이었다.
생각은 또 거슬러 올라갔다.
고3 때 대학교 과를 정하던 시기에 생각 없이 전망 있다며 환경공학과를 선택하는 게 아니었어. 한예종 극작과를 갔었어야 했어. 그것도 아니었다면 대학교 1학년 때 연극부 오디션을 보고 연극부에 들어가서 연기를 시작했어야 했어. 졸업하고서라도 워킹홀리데이로 외국을 나가 영어도 배우고 견문도 넓혀서 들어왔어야 했어.
그러다 또 세월을 건너뛰어 처음 사귀었던 남자 친구에게 머물렀다. 바람피우고 나한테 거짓말하며 헤어졌던 그 자식. 백번 생각해도 잘 헤어졌는데 그때 물을 한 컵 끼얹고 죽방을 날렸어야 했어. 나쁜 새끼.
고시원에서 환경연구원 공부하던 시절. 공부는 안하고 옆 동네 용산에 가서 매일 영화보고 GV 보던 시절. 일반 영화평론 예선에 합격했을 때 연구원 공부 때려치우고 면접을 보러 가서 영화평론가의 길을 걸었어야 했어.
그때 그 나쁜 새끼랑 헤어지고 고시원 들어가서 공부하던 시절 춘천교회 후배가 소개해줬던 사람이 있었는데. 만나자마자 각자 소개도 안 한 채 영화 이야기만 30분을 나눴던 사람. 내가 너무 좋다고 강풀의 '바보' 만화책도 선물로 주고 할머니와 어머니가 나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고 자기는 결혼 빨리 하고 싶다고 했던 사람. 그때 그냥 결혼했으면 믿는 집안에서 무난하고 평안하게 살고 있지 않았을까.
대체 이 '만약'의 상상은 시간의 흐름과 상관없이 머릿속을 핑퐁 거리며 떠다녔다.
아 나 정말 이 결혼을 후회하고 있는 건가. 너무 더럽다고? 자기 관리 안 한다고? 근데 더럽고 게으른 거 알고 결혼한 거잖아. 그 단점을 커버할만한 장점들을 더 크게 평가했던 거였잖아.
내 인생의 후회들을 곰곰이 곱씹어 보니 다 '일과 사랑'에 대한 내용이었다. 일은 결국 내가 하고 싶은 것에 대한 아쉬움이었지만 사랑은 세상이 만들어놓은 기준에 상위 레벨인 정형화된 가정을 바라는 타인의 기준이 우선된 후회였다.
그러다 깨달았다.
저 후회의 순간들마다 하나님이 없었구나.
고3이었음에도 사순절 새벽기도를 빼놓지 않고 올 출석하던 나였지만 정작 내 진로를 놓고 무슨 과를 가는 게 좋겠냐는 단 한 번의 질문도 없었다. 대학시절 제자훈련이다 일대일 양육이다 하며 학교보다 교회를 더 열심히 다녔던 나였지만 정작 남자에게 고백을 받았을 때는 내 안의 좋은 감정이 우선이어서 '오늘부터 1일'을 외쳤다. 목사님이 소개해주신 대기업 팀장 교회 오빠를 만날 때는 나 그냥 이렇게 지루하게 결혼하는 건가 싶어 기도보다 내 자유로운 영혼이 이끄는 선택을 우선했다. 대학원까지 나와 뭘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그냥 내 일이 없는 평범한 가정주부가 되는 것은 싫다며 무작정 집을 나서 고시원에서 공부를 시작했고 영화평론과 환경연구사를 놓고 진로에 대한 기도도 하지 않았다.
진로와 일과 관련된 선택의 순간마다 혼자 버둥거렸다.
사랑과 관련된 선택의 순간마다 감정도 하나님이 주신 사인이라고 기도와 기다림보다 나의 감정을 우선했다.
나 정말 허울만 멀쩡한 신앙인이었구나. 신앙 좋은 척하는 사람이었구나.
내 인생의 중요한 순간들마다 묻지 않았구나. 나 혼자 결정하고 합리화시키며 살았었구나.
잠시 멈춰서 제대로 된 방향이 어딘지 점검한 뒤에 그 길로 곧장 가면 빠른 걸 여기저기 바등거리며 빨리 움직이기는 했지만 제대로 된 방향을 찾지 못해 결국 제자리를 맴도는 어리석은 사람이었구나.
왜 몇 날 며칠 내 인생의 후회들을 생각나게 하셨는지 이제야 깨달았다.
잠시 멈추라 하시는구나.
그리고는 슬며시 말씀하신다.
그거 아니? 지금 네 남편이 네가 기도해서 응답받은 유일한 남자라는 거.
아!!
그랬다. 남편은 내 몇 번의 연애 끝에 더 이상 사람에 대한 기대가 남아 있지 않을 때 결혼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때 만난 사람이었다. 이미 그전에 내가 어떻게 하든 결혼까지 가는 사람은 하나님이 맺어주셔야 되는구나를 절감했던지라 결혼하게 될 거라는 생각 없이 편하게 만났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집착도 싸움도 없었다. 연애 기간이 1년이 넘어가는 줄도 모를 정도로 재미도 있었다. 연애 당시 남편은 술, 담배를 다 하는 사람이었고, 신앙도 없었다. 연애 기간이 길어지면서 하나님한테 물었다. 이 사람이 제 남편이 될 사람인가요? 아니면 지금이라도 놓게 해 주시고 맞다면 모든 일이 순적하게 진행되게 해 주세요.
하나님의 답은 동문서답 같지만 확실했다. 내가 그 사람을 많이 사랑한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모든 일이 순적하게 진행됐고 정신을 차려보니 난 식장에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