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는 태양을 있게 하는 소중한 행성들 : 나를 태양에, 나를 있게 한 감사한 이들을 행성에 비유해 한 명 한 명에게 감사를 건넨다.
다섯 번째 행성. 목성.
나의 멘토에게 전하는 감사편지.
목성
빨간색과 흰색의 띠, 크림색의 백반, 그리고 목성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대적반 등
눈으로 확인 가능한 목성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사납게 요동치는 구름 낀 대기에 의한 현상이다.
목성의 구름 꼭대기에서 발생하는 오로라는
목성의 대기와 자기장이 상호작용하여 발생하며
지구의 극지방에서 발생하는 오로라보다 천 배 이상 밝다.
어릴 때부터 교회에 다녔던 저는 많은 목회자분들을 만났어요.
정체성이 형성되던 시기, 진로로 고민하던 시기, 삶의 방향을 잃고 헤매던 시기마다 이정표와 같은 멘토를 만나 조금씩 삶의 방향을 수정해 갔지요.
누군가에겐 단순히 다정한 말투 하나, 단어에 대한 정의 하나로 느껴질 수 있겠지만 삶을 통해 드러나는 찰나의 태도와 언어는 사납게 요동치는 내면을 평생 갈고닦은 훈련의 결과가 아닐까 싶어요.
어쩌면 매일 곁에서 조언을 해주던 부모님이나 친구보다 조금은 거리를 두고 바라보기 때문에 훨씬 빛나고 크게 느껴져서 멘토의 한마디가 가슴에 박혔었는지도 몰라요. 그래도 그 시기 저에겐 오로라보다 천 배 이상 밝은 빛이 되어준 귀한 인연이랍니다.
K 목사님께
목사님. 얼마 전 둘째까지 결혼시키시고 귀여운 사모님과 알콩달콩 둘 만의 시간을 보내고 계신가요? 늘 목사님 사모님과 제가 닮았다고 젊었을 때 이런 모습이었을 것 같다고 천방지축이던 저를 마냥 예뻐라 해주셨던 목사님.
대학시절 학교보다 교회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서 대학 친구들이 "예수쟁이"라고 놀렸어요. 그 주범은 바로 목사님이셨지요. 전 학과 공부보다 목사님과 함께 하는 일대일 양육 시간이 훨씬 재미있었거든요. 목사님 덕에 교회가 즐거웠고 말씀을 묵상하는 기쁨을 알게 되었어요.
목회자라고 하면 마냥 권위적이고 어려운 줄로만 알았는데 이렇게 푸근하고 친근한 목사님도 있구나를 처음 느꼈죠. 교육부 목사님인 목사님과 함께 사역하는 게 재밌어서 유치부 교사, 아동부 교사도 했었고요.
성남에서 목사님을 뵀을 때도 반갑게 맞아주셔서 정말 감사했어요. 그 당시 마음이 힘들고 삶의 방향이 흔들리던 때였는데 목사님의 환대가 저에게 큰 위로가 되었어요.
모두에게 편하고 다정하게 다가가 주시던 목사님. 저는 모두에게 그럴 수는 없겠지만 누군가에게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요. 편지를 쓰고 있으려니 목사님의 푸근하고 다정한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해요. 저의 첫 번째 멘토가 되어주신 목사님. 감사합니다.
N 목사님께
목사님. 건강히 잘 지내고 계시죠? 연락 한 번 없다가 이렇게 불쑥 멘토에 대한 감사를 적으려니 가장 먼저 목사님이 생각났어요.
느릿느릿 말씀하시며 늘 말씀에 답이 있다고 말씀과 기도로 저의 초점을 옮겨 주셨던 목사님. 예수님이 살아계셨다면 이런 모습이었을까 생각했던 적이 있었어요. 여전히 새벽 산책과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고 계신가요?
성경공부, 리더모임을 하면서 목사님 덕에 말씀이 달게 느껴지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라는 말씀의 그 진리가 말씀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기도로 새벽을 깨우고 누군가를 위해 중보 하는 일이 이렇게 값지구나를 깨달았어요. 그리고 마음에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 샘솟았죠. 목사님이 너무 존경스럽고 좋아서 군것질거리와 쪽지를 목사님 책상에 늘 남기곤 했었는데. 매번 건네던 마음이 다른 청년이 준 건 줄 아셨다는 말씀에 조금 서운하기까지 했었죠. 나중에 아시고는 "너였구나. 고맙다." 하시며 특유의 사람 좋은 너털웃음을 지으셨던 목사님.
그때는 세상 모든 것을 사랑하고 세상의 모든 것으로부터 사랑받는 존재라고 생각하며 살았었는데. 사랑에 대해 너무 교만했나 봐요. 다양한 종류의 사랑에 여러 번 실패하기 전까지 저는 제가 사랑이 많은 사람으로 타고난 줄만 알았어요. 아바와 함께 하는 시간의 훈련으로 그 사랑을 충만하게 받아서 다른 이들에게도 흘려보낼 수 있었다는 걸 알지 못했던 거죠.
요즘은 매일 큐티만 겨우 하는 정도예요. 주일에도 온라인 예배만 드리고요. 날라리 다 됐죠? 그래서인지 마음에 화가 많이 쌓이는 것 같아요. 풉. 그래도 말씀이 달게 느껴지던 그때의 감동을 잊지 못해 말씀을 만지작거리곤 해요.
다시 아바와 깊이 있고 즐겁게 동행할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 생각나시면요. 저도 늘 한결같이 건강하게 아바와 동행하는 목사님이길 기도할게요. 이 책 들고 안부를 전하러 원주로 찾아뵐게요.
KK 목사님께
목사니임. 제가 목사님을 이렇게 좋아하는 사람이 될 줄 몰랐어요. N 목사님이 청년부에서 떠나시던 날 눈이 퉁퉁 붓도록 울었던 저였는데. 저를 보며 "누가 보면 오해하겠다."라고 농담하셨던 목사님. 제가 좀 그렇잖아요. 회사 다닐 때도 저희 팀이 차장님 깜짝 생일파티를 해드렸는데 제가 감동받아서 펑펑 울었거든요. 동료가 "언니, 누가 보면 무슨 사이인 줄 알겠어 그만 울어." 했거든요. 저는 여전해요. 지금도 드라마를 보면 과몰입해서 울다 웃다. 그런데 또 일할 때는 다다다다하며 감정 섞이는 거 싫어하는 거 보면 알다가도 모르겠어요. C는 저한테 "언니 백퍼 ENTP지?" 했거든요. 성향 검사 다섯 번 했는데 할 때마다 ENFP 나왔거든요? 아무래도 MBTI 다시 해봐야 할까 봐요.
제가 만났던 목사님 중에 가장 젊으셨던 분. 친구 같은 목사님. 단순히 젊어서가 아니라 생각이 깨어있다는 게 늘 느껴졌어요. 독서를 많이 하면 목사님처럼 될 수 있을까 싶어 매주 추천 도서를 묻고 또 목사님은 추천해주시고. 목사님이 추천해주셨던 도서 중 [침묵]과 [천로역정]은 아직도 저의 BEST 3 기독서적 안에 손꼽혀요.
저랑 네 살 차이 나는 목사님은, 게다가 사모님이 저보다 어린 목사님은 처음이었어요. 그런데 저는 아직 청년부라니. 그 당시 매주 저 볼 때마다 놀리셨었죠. 지금 결혼해서 아이 낳아도 노산이야. 풉. 지금 생각하면 그때 아직 20대였는데. 저는 그 이후로도 거의 10년이나 지나서 결혼했고 정말 너무 노산이라 그런지 아직 엄마는 못 되었어요. 때 맞춰 노력도 했고 2년 가까이 시험관도 했고 할 수 있는 거 다 해봤으니 그냥 남편이랑 둘이 행복하게 살려고요. 아바와 남편과 '동행'하면서요.
동행. 저에게 삶의 지표 같은 단어예요. "동행을 뭐라고 생각하세요?" 물어본 저에게 목사님은 이렇게 대답하셨죠. "걸음이 빠른 이가 걸음이 느린 이와 발맞추어 걷는 것." 저는 목사님의 그 대답이 충격이었거든요. 하. 저 '걸음'에 얼마나 많은 의미가 담겨 있는지. 뒤늦게 그 말을 묵상할 때마다 목사님은 삶의 질곡을 다 겪은 사람 같이 느껴졌어요. 타인과의 다름을 인정하는 일. 누군가의 부족함에 '그럴 수도 있지'라고 여유롭게 웃어넘기는 일. 닦달하지 않고 끝까지 응원하며 기다리는 일. 이 모든 것이 저 동행이라는 목사님의 정의에 포함되잖아요. 그리고 아바와의 관계에서 언제나 늘 항상 걸음이 느린 이는 저이고요. 인간관계 속에서 타인이 이해되지 않을 때 - 물론 남편과의 관계를 포함해서 - 생각의 끝에는 저 동행이라는 단어가 머물러요. 아바와의 관계에서는 내가 늘 걸음이 느린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하다 보면 타인을 이해하는 마음의 여유가 조금 생겨나요. 뭐 늘 그런 건 아니지만.
목사님은 먼 타국에서 아바와 가족과 교회 식구들과 열심히 '동행'하고 계시겠죠? 목사님이 계셨던 프랑스, 그리고 지금 계신 독일. 목사님 계시는 현지에 가서 직접 인사드리고 얼굴 보고 수다 떨고 싶은데 늘 마음만 굴뚝이고 행동에 옮기지 못하네요. 훌쩍 떠날 수 있는 용기와 시간과 경제적 여유가 생길 수 있길 아바에게 졸라 볼게요.
목사님도 사모님도 그립고 보고 싶어요. 만나는 날까지 건강하게 유쾌하게 아바와 가족과 교회 식구들과 '동행'하며 잘 지내고 계세요.
H 목사님께
영화로 설교를 할 수 있다니. 영화를 좋아하던 제게 빛과 같았던 목사님. 저의 뚱딴지같은 질문에 언제나 함박웃음으로 충분히 아니 당연히 그런 질문 할 수 있지 대환영이야라는 표정으로 친절한 답변을 해주셨던 목사님. 저는 아직도 가끔씩 목사님의 설교를 들어요. 티브이에 나오셨던 유튜브도 찾아봤는걸요.
목사님 덕에 세상의 모든 문화 속에서 아바를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형식적인 예배 속에, 공간 안에 갇혀있는 분이 결코 아니구나를 눈으로 귀로 체험할 수 있었어요. 그래서 다른 지방으로 이사 갔을 때 영화를 매개로 말씀을 나누는 자리에도 설 수 있게 되었어요. 그 이후로도 저는 영화를 통해 아바를 보고 삶을 읽어내는 일을 계속해요. 지금은 게을러져서 글로는 남기지 않지만 다시 천천히 시작해볼까 해요.
애정 하는 목사님께서 애정 하는 마음으로 저에게 소개해주셨던 교회 오빠와 잘 되지 않아 죄송한 마음이 커서 목사님이 계신 교회에 차마 출석할 수가 없었죠.
나중에 저의 결혼 소식을 알리려 전화드렸을 때 목사님께서 저에게 계속 존대를 하셔서 놀랐어요. 제가 저에게 존대하는 목사님에게 당황하며 다른 사람과 착각하셨나 싶어 "목사님, 저 OO에요." 했을 때도 목사님은 "네"하셨죠. 전화받기 어려운 자리에 계신가 하고 그냥 넘어갔는데. 나중에서야 그 교회에 다녔던 친구에게 전해 들었어요. 서울에 왔다고 교회에 와서 인사만 드리고 다음 주부터 그 당시 남자 친구가 사역하는 다른 교회에 출석한다는 말에 목사님께서 서운해하셨다고. 저는 그 말을 전해 듣고 많이 놀라고 또 기뻤어요. 전 목사님을 어쩌면 고향과 같이 생각했었나 봐요. 제가 어느 교회에 다녀도 다시 연락드리면 언제나 그렇듯 목사님 교회의 교인으로 여기며 반갑게 맞이 해주실 거라는. 잠시 다른 교회에 다니지만 결국은 목사님이 계신 교회에 가게 될 거라는 그런 알 수 없는 확신 같은 거. 목사님도 서운해하시는구나에 놀랐고 그만큼 애정을 가지고 또 교회에서 함께 할 거라고 믿어주셨다는 것에 기뻤어요. 물론 아주 나중에 알게 돼서 많이 늦었었지만.
그 당시 목사님께서 서운해하셨던 걸 알았다면 저는 목사님이 계신 교회에 다녔을 거예요. 전 사실 굳이 그때 당시 남자 친구와 같은 교회에 다녀야 하나 내키지 않아 했거든요. 나중에 헤어지고 후회했죠. 목사님 계신 교회 출석할걸 하고요. 말 그대로 늦은 후회지만요.
여전히 저는 전화드렸을 때 다정하게 이름 부르며 "잘 지내지?"라고 안부를 물어주시던 목사님을 기억해요. 제주에 살게 되면서 한 번씩 목사님이 생각나요. 제주에서 제자학교 프로그램도 하시고 자주 오신다고 했던 기억이 나거든요. 직접 만나 그 당시 서로의 마음도 나누고 오해도 풀면 좋겠어요. 여전히 제 삶의 한 부분을 차지하는 멘토이자 그리운 목사님. 제주에서 한 번 꼭 봬요.
Y 목사님께
"그래 그래."
열심히 찬양하시고 설교하셔서 늘 반쯤 목이 쉬어있던 목사님께서 가장 많이 하셨던 말씀. 청년들이 "목사님, 안녕하세요." 인사드릴 때마다 얼굴 한가득 웃음을 띠고 뿌듯하고 사랑스러운 눈길로 늘 하셨던 말씀. 큰 키와 건장한 체격과 늘 웃는 얼굴. 청년들이 어떻게 하면 아바와 더 가깝게 만날 수 있을까를 치열하게 고민하셨던 목사님. 언제나 열린 마음으로 저희들의 의견을 들어주셨던 목사님. 그래서 드림팀이 제안했던 영화로 말씀 읽고 활동하는 프로젝트 프로그램도 맡겨주시고 수련회 진행도 맡겨주셨었죠. 드림팀은 아직도 그때 이야기를 해요. 프로그램에 참석했던 친구들이 좋은 영향력을 받았다고 말해줘서 큰 성취감과 뿌듯함을 느꼈어요. 드림팀에게도 몇 날 며칠 모여서 회의하고 기획하며 함께 했던 시간들이 즐겁고 소중한 경험이었고요.
그 시작은 열린 마음으로 한 사람 한 사람을 존중해주시고 온전히 믿고 맡겨주셨던 목사님 덕분이었죠. 시간이 지나 생각해보니 저라면 그럴 수 없겠더라고요. 고3에서 청년부로 넘어가는 중요한 시기의 신앙 훈련을, 청년부 수련회의 전체 프로그램을 이 아이들에게 맡긴다고? 어쩌면 목사님의 그 믿음이 제 성장의 시작이 되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요. 여전히 그때를 제 인생의 가장 행복한 시기 중에 하나로 기억하고 있어요.
그러고 보니 제가 한 친구와 교제한다는 말씀을 드렸을 때도, 지금의 남편과 결혼했다고 인사드리러 갔을 때도 목사님은 만면에 함박웃음을 지으며 "그래 그래" 하셨던 것 같아요. 판단하지 않고 그냥 있는 그대로의 저를 응원해주셨던 분. 제가 그때의 목사님 나이가 되고 보니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누군가를 믿어주는 일은 나이가 찬다고 그냥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더라고요. 그때의 저희를, 저를 믿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편견에 사로잡히고 다름을 틀림으로 판단하려 할 때마다 목사님이 보여주셨던 삶의 태도를 기억해요.
여전히 "그래 그래"하시며 또 누군가에게 여유 가득한 미소를 건네고 계실 목사님. 울산 가면 찾아뵙고 인사드릴게요.
2022년 10월 24일
함덕에 뜬 무지개. 다시는 비로 세상을 멸망시키지 않겠다는 아바의 약속이 무지개란다. 삶에서 아바를 생각나게 하는 것들. 그 훈련의 시작이 되어준 멘토들이 생각나는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