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는 태양을 있게 하는 소중한 행성들 : 나를 태양에, 나를 있게 한 감사한 이(것)들을 행성에 비유해 한 명 한 명에게 감사를 건넨다.
여섯 번째 행성. 토성.
내 인생의 시련들에게 전하는 감사편지.
토성의 위성
엔셀라두스 : 토성의 얼음위성. 따뜻한 남극지역도 영하 84도일 정도로 매우 춥다.
타이탄 : 타이탄의 경우 산소마스크와 따뜻한 옷 그리고 지구의 16일에 해당하는 타이탄의 하루를 견딜 수 있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첫 번째 시련에게
내가 기억하는 첫 번째 시련은 처음 사귀었던 남자 친구와의 이유 모를 이별이었어. 생일 선물로 구두를 받고 헤어졌으니 5월이었는데 내가 기억한 그때는 너무 추웠어. 내 방에서 늘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었었지. 이유 모를 이별이어서 너무 힘들었어. 사귀면 결혼까지 해야 하는 줄로 철석같이 믿고 있던 순진 하디 순진한 20대 초반의 왕순진녀가 첫 남자와 헤어졌으니 제정신이 아니었어.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는데 무너지지는 않더라고. 나중에서야 바람을 피웠다는 걸 알게 됐고 배신감에 치를 떨었지만 이미 그 자식은 눈앞에서 사라진 뒤였지. 시간이 약이라는 게 그냥 있는 말이 아니더라고. 한참 뒤에는 장거리 연애 중 그 친구가 바람피우게 된 마음까지도 이해하게 되었어. 성인군자 나셨다 참내
그때의 상처가 아물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그 실연 덕분에 남자 보는 눈은 조금 생겼어. 얼굴이 아니라 나와 대화가 잘 통하는지 인생의 가치관은 뭔지를 먼저 보게 되더라고. 근데 친구가 이런 말은 해줬던 기억이 나. 잘생긴 남자는 얼굴값하고 못생긴 남자는 꼴값한다나. 그 농담 덕에 웃었던 기억이 나네.
두 번째 시련에게
남자 친구와의 이별 이후 잘 다니던 회사도 그만두고 서른이 다 된 나이에 공부하겠다고 가출했던 나. 왜 가출이었냐고? 연구사 공부하겠다고 했더니 "회사 잘 다니다가 얌전히 시집이나 가라."는 아빠의 말에 화가 나서 홧김에 집을 나간 거였으니까. 어느 공휴일 엄마 아빠가 나들이 가셨을 때 캐리어 하나 달랑 챙겨 기차 타고 노량진 고시원으로 갔지. 지금 생각해보면 오기고 도피였는데. 그 당시 나는 잘하는 거 하나 없었으면서 왜 회사 다니다가 얌전히 시집가서 사는 평범한 삶이 죽기보다 싫었는지. 그 평범하게 사는 삶이라는 게 가장 어려운 건지도 모르고 말이야.
노량진에서의 수험생 생활이 시작되었어. 주말 아르바이트로 고시원 월세와 생활비를 벌고 평일에는 스터디를 하며 공부했어. 사실 몇 달만에 난 알았어. 공부는 내 길이 아니구나를. 일주일에 한 번 하는 스터디 모임보다 한 정거장 거리에 있는 용산 CGV에 더 자주 갔었거든. 그 당시 개봉했던 영화 GV는 다 봤을걸. 심지어 나 그 기간에 영화제 관객 심사단 1차 합격까지 했었어. 면접 보러 오라는 연락에 덜컥 겁이나 제가 수험생이라 이러면 안 될 것 같다고 포기했지. 안되긴 뭐가 안돼. 어휴 그때 진로를 바꿨어야 했는데. 결국 난 연구사 시험도 떨어지고 영화평론가도 되지 못했어.
1년 만에 춘천 본가로 들어갔어. 연구사 시험은 안 되겠다 싶어 취업을 위한 인적성과 영어 공부를 시작했는데 준비했던 곳에서 공고가 났어. 그때만 해도 나이 제한이 있었거든.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했던 공부였는데 나이 제한에 걸려서 지원도 못해보고 끝이 났어.
누군가의 결혼 소식, 취업 소식, 공무원 시험 합격 소식이 들려왔어. 스물아홉. 참 찬란한 나이인데 우리나라는 유독 나이에 대해 규정짓고 이르네 빠르네 하는 경우가 많잖아. 딱 그때가 남과 나를 비교하며 주눅 들었던 때였어. 난 남자 친구와도 헤어지고 백조라는 사실에 아무도 만나고 싶어 하지 않았어. 열심히 기도했지. 내일 아침 눈뜨지 않게 해 주세요. 아무런 희망도 기대도 보이지 않았어. 기억나. 그 당시 안재환과 최진실의 자살 사건이 있었고 나는 내 손으로는 못 하니 아바가 나 좀 데려가세요라고 매일 들숨과 날숨에 기도했었어.
마음이 바닥을 치려고 하는데 전에 다녔던 회사의 울산지역 공고가 났어. 나는 지원을 했고 전화가 왔지. 오늘까지 접수 마감이었는데 총무과에서 늦게 넘어왔다, 서류 제출 기한이 넘어서 접수가 되지 않았다고. 하. 이렇게 온 우주가 나를 외면하는구나.
마음이 바닥을 뚫고 지하를 향해 돌진해가려는 찰나 다시 전화가 왔어. 총무과의 실수이니 면접 볼 기회는 주겠다 내일 면접 보러 올 수 있냐라고. 그때 난 울산이라는 지역이 있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어. 부산 옆이 울산이라는 지리적 정보도 지식도 없던 때였는데 한달음에 달려가 면접을 봤어. 춘천에서 네 시간 반이나 걸리더라. 금요일 날 면접을 보고 바로 합격 통지를 받았어. 그 길로 바로 춘천에 가서 짐을 싸들고 울산으로 내려와 원룸을 구하고 월요일 날 바로 출근했어.
맞아. 그곳에서 난 지금까지 함께하는 드림팀, 사랑스러운 양수 언니, 여전히 애틋한 기도 3팀, 즐겁고 신났던 팝콘팀, 나를 믿고 응원해주셨던 양 목사님, 큰 도전을 줬던 남자 친구도 만났어. 내 인생의 끝이라고 생각했던 그 시기에 셀 수 없이 귀한 인연들과의 만남이 시작됐어.
처음에는 아무런 연고도 없는 그 땅에서 긴 시간 외로웠지. 가뜩이나 외로운데 11월이라 춥기까지. 청승맞게 출근길에는 낙엽이 한가득이었어. 출퇴근 길 혼자 차 안에서 아바와 만났던 시간들이 벅차고 감사했지만 외로움에 악다구니를 쓰며 울기도 했었어. 나 외로우니까 좋은 사람들 만나게 해 주세요 하고. 오롯이 아바와 단 둘만의 시간을 보내게 하시고 그 시간을 감사함으로 누릴 무렵 귀한 인연들을 만나게 하셨던 거지.
터널 안 좌절과 어둠의 시간 동안 내가 나를 포기했다면 결코 만날 수 없었던 인연들.
그거 알아? 터널은 목적지로 이끌어 주는 가장 빠른 지름길인 거.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깊고 어두운 시간을 견디고 나면 환한 빛이 가득한 끝없는 길이 나 있다는 걸.
세 번째 시련에게
두 번째 실연. 어? 세 번째 시련이라면서? 다시 잘 읽어봐 시련 아니고 실연. 두 번째 사랑이었는데 마치 첫사랑 같았던. 이전에 누구를 사랑한 적 없던 것처럼 다시 새로운 만남이 시작되었고 또 끝이 났어. 그 끝의 타격은 컸어. 기도하고 시작했던 만남이고 아바가 보장해주시는구나 생각했거든. 많은 이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내 남은 인생을 다 걸고 시작한 만남이었거든. 회복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어. 단지 실연이 문제가 아니라 아바에 대한 믿음의 문제였지. 저 기도하고 시작했는데요. 믿음이 뿌리 째 흔들리고 아바와의 관계도 위태해졌지.
두 번째로 기도했어. 저 내일 안.. 아니 못 일어나게 해 주시면 안 되나요 이번에는 정말. 그런데도 매일 어찌나 재깍재깍 눈이 떠지던지.
계절이 바뀔 만큼 여러 날 동안 생각하고 화내고 물었어. 그러다 어느 순간 깨달아졌어. 내가 신이 되었었구나. 이 사람이 맞나요에서 결혼에 초점이 맞춰지고 그다음에는 아바도 상대방도 아닌 나만 남았던 시간들. 반대하는 사람들에게도 난 "진정한 사랑을 해본 적이 있느냐?" "이 말씀의 의미가 뭔 줄 아느냐." 설교를 해대며 아주 시건방을 떨었었거든. 부끄럽지만 그때의 나는 내 멋대로 생각하고 판단해버리며 바벨탑을 기어오르기 시작하는 무지, 끝이 다른 사이비와 같은 말씀 해석, 사랑에 대한 오만의 결정체였지.
만랩 찍고 에픽 풀착장 했던(한 때 WOW를 열심히 했어) 나의 교만이 캐릭터 삭제되기까지 순식간이었어. 한방에 무너졌지. 온몸에 힘을 빼고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어. 너 덕에 겸손을 배웠어. 난 사랑이 많은 사람으로 타고난 줄 알았는데. 타고나는 건, 당연한 건 세상에 아무것도 없더라. 태생 지랄 맞은 내가 매일 말씀을 먹으며 겸손을 훈련해야 딱 하루치의 사랑과 은혜가 쌓인다는 걸 그때 처음 깨달았어.
세상이 끝날 줄 알았는데 아주 잘만 돌아가더라. 두 번 다시 나에게 사랑은 없겠구나 생각한 그때 또 다른 인연을 만났지.
네 번째 시련에게
일과 사랑. 이 두 가지 말고는 노력해서 안 되는 게 없다고 생각했던 나였는데. 네 번째 시련을 통해 세상에는 노력만으로 되지 않는 것이 많구나, 내가 가진 한계가 참으로 많구나를 깨닫게 되었어.
늦은 나이에 결혼했지만 내가 난임일 거라고 생각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거든. 지금 생각하면 우스운 결심이었지만 여보야랑 나는 결혼 후 1년은 아이를 가지지 말고 둘만의 시간을 보내자고 약속했지. 몇 년 뒤 네가 찾아올 줄은 꿈에도 모르고 말이야. 결혼 후 3년이 지나 찾아갔던 병원에서 둘 다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말을 듣고는 또 1년을 더 별생각 없이 지냈었지. 그러다가 시험관이라는 걸 시작하게 됐어. 내가 내 배에 주사를 찔러 넣기를 여러 날, 손가락으로 질 안에 질정을 넣기를 여러 날, 배에 힘을 조금이라도 써야 하는 운동은 전혀 하지 않아서 아이를 갖기도 전에 몸상태가 엉망이 되었던 시간들. 날을 잡아 질에 관을 넣고 난자를 채취하고 또 정자를 채취해 체외수정을 하고 며칠 후 질을 통해 자궁 안에 배아를 이식하는 과정. 엄청난 피를 쏟고 피검사까지 또 10일을 기다려야 하는 과정.
세 번이나 그 과정을 거치고 피검사 후 "수치가 0이라 비임신입니다."라는 말을 들어야 했어.
네 번째 시도. 육지에 올라가 춘천 집에 머물며 평촌 마리아까지 다녔지. 엄마의 삼시 세 끼, 아빠의 운전.. 지극정성이신 부모님의 보살핌으로 네 번째 시도만에 "축하합니다. 임신입니다."라는 소리를 듣게 되었어. 엄마랑 손을 잡고 어찌나 울었는지. 그 기쁨도 잠시 매일 하혈을 하며 불안함에 며칠을 보내다 입원까지 했는데 결국 자궁외 임신이라는 소식을 접하고 왼쪽 나팔관을 절제하는 복강경 수술을 해야 했어. 왼쪽 나팔관이 없어지고 몸이 아픈 것보다 초음파를 통해 만났던 동그랗고 예쁘던 녀석을 마음껏 기뻐하고 반겨주지 못했다는 미안함이 더 컸어. 혹여 무리할까 싶어 조심조심, 안정기가 될 때까지 안심할 수 없다는 마음에 살금살금. 마냥 기뻐하지 못했지. 마음껏 기뻐라도 해줄걸 격하게 환영해줄걸 많이 후회했어.
네 번째 시련. 너를 겪고는 사람들이 걸러지더라. 인생의 큰 어려움을 겪으면 사람들이 한 차례 걸러진다고 하지. 위로나 슬픔을 나누는 일에는 서툴다고 하며 연락이 끊어진 이들도 있었고 위해주는 척하며 교묘하게 상처를 줬던 사람들도 있었어. 반면 그 기간 동안 나와 연락을 주고받으며 진심으로 기도해줬던 많은 이들도 있었지. 그렇게 좋은 사람들이 남게 된 건 내 인생의 가장 큰 수확이었어. 이들에게 느끼는 감사는 정말 오래도록 간직해야지 다짐했어.
너 덕에 욥기를 묵상했지. 재산도 가족도 건강도 잃게 하신 아바를 끝까지 원망하지 않았던 욥. 원망하지는 않았지만 자신에게 왜 이런 시련을 주시는지 궁금해했던 욥에게 아바는 뚱딴지 같은 말씀을 하셨어. 하늘의 새와 들에 핀 꽃들과 아바가 만드신 자연을 이야기하며 네가 이런 모든 세상의 이치를 이해할 수 있겠냐고. 끝까지 아바를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아바를 저주하지 않고 신뢰했던 욥에게 더 큰 축복을 주셨지. 난 나예요. 난 더 큰 축복 따위 원하지도 않고 더군다나 나는 욥이 아니라고,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생기느냐고 아바를 원망했고 투덜대며 소리도 질렀어.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이유를 알 수 없고 이해도 안 되지만 끝까지 나를 신뢰하라는 아바의 메시지만은 남아 있어.
또 다른 수확은 기록을 하기 시작했다는 거야. 물론 아직 브런치 [난임부부의 마음 나누기]에 다 옮기지는 못했지만 블로그에는 매일매일 기록을 해놨잖아. 브런치에는 이식 이후의 기록을 옮길 용기가 아직 없더라고. 어제만 해도 오해하지 말라며 아이가 없어서 그렇다는 누군가의 말에 상처를 받고 밤새 울었었는걸. 그때의 마음을 마주하려면 아직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
난 지금까지도 시련을 넘어서는 법을 알지 못해. 단지 견딜 뿐. 여전히 작은 말들에 상처받고 아파하지만 그래도 견뎌. 사실 그것 말고는 방법이 없거든. 두 번째 세 번째 시련 때 나를 데려가 달라고 했던 기도들을 너를 겪으면서는 하지 않았어.
넘어질 때마다 아프지만 그래도 털어내고 조금 쉬었다가 다시 한걸음을 내딛을 수 있는 용기 딱 그 정도는 배운 것 같아. 세상에 얼마나 많은 난임 부부들이 있는지, 그들의 마음이 얼마나 무너져 있는지도 알게 되었어. 대부분의 동그라미 가정을 제외한 별 모양, 네모 모양 가정의 다양한 아픔도 이해하려 노력하게 되었어. 시련은 나를 넓고 깊게 만들기도 하는구나 생각했고.
살면서 다섯 번째 여섯 번째의 너도 만나게 되겠지. 물론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더 크지만 이제는 시련의 비바람을 함께 맞아줄 우산 같은 사람이 함께 있어서 조금은 든든해. 비가 내려도 비를 막아줄 우산 같은 사람이 있으니까. 설사 세찬 바람에 휘청거리며 우산이 날아가더라도 서로 잡아주며 한 걸음씩 내디뎌갈 사람이 있으니까. 네 번째 너를 겪으며 우리가 조금은 더 단단한 부부가 된 것도 감사한 일이야. 이 삼겹줄이 더 든든해지라고 너를 만나게 하신 건가 싶기도 한데 앞으로는 정중하게 거절하려고. 내가 갈등을 아주 잘 해결하는 사람은 아니더라고. 극강의 노력과 최선을 다해 아바라는 줄을 놓지 않아야 겨우 버티는 사람이더라고.
그러니 우리 앞으로 되도록이면 만나지 말자. 감사하지만 여기서 작별을 고하고 싶네 안녕.
2022년 10월 3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