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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비 Sep 20. 2020

랜선 제주 가을여행

어쩌다, 코로나

 코로나19로 인해 명절에 고향에 내려가는 걸 자제하라는 정부의 권유가 있었다. 자발적으로 가족들의 안위를 위해 가족들과 만나는 걸 뒤로 미루기로 한 사람들 또한 대다수다. 하지만 가족들과 만나는 대신 제주로의 여행을 택한 이들이 어마무시하다. 추석 때 제주 여행객이 20만명에 육박할 것이라는 기사를 보자마자 코로나19 확산의 방지를 위해 했던 정부의 권유와 가족들의 안위를 위한 부모님의 배려 대신 자제력을 잃은 인간의 이기심이라는 단어가 내 머리 속을 스쳤다. 

 안타깝다. 제주도민들도 누군가의 가족의 일원이고, 제주 또한 누군가의 삶의 터전이다. 제발 좀 지금 같은 시기에 여행은 자제해주었으면 좋겠다. 어쩔 수 없다면 마스크 끼고 방역 수칙이라도 잘 지켜주길. 

 

 이번 추석 때 육지에 올라가지 않기로 결정했다. 감사하게도 우리의 결정에 앞서 추석 때 올라오지 말라는 양가 부모님의 전화가 있었다. 우리 둘이 동네 마실이나 다니자라고 생각했는데 엄청난 관광객 때문에 정작 제주도민인 우리가 더 조심하며 집콕해야하는 처지가 되었다. 


 지난 몇 년 동안의 제주 가을 사진을 보며 마음을 달래야겠다. 


(모든 사진은 다 Photo by 단비. 무단도용하지 말아주세요. 캡처나 저장하실 경우 꼭 댓글 남겨주세요.) 



순서는 제주 동쪽부터 왼쪽 방향으로 해안을 타고 거슬러 오른다. 다 제주의 가을에 담은 사진이다. 

사진 아래에 각 사진의 설명을 담았다. 



# 종달 


제주 동쪽 작은 마을 종달리.  가을에 종달리를 걷다보면 억새와 꽃들이 예쁘게 만발한 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소심한 책방, 소품샵 등 자잘한 볼거리가 많은 곳. 



# 세화


세화해변. 맑은 날이면 하늘과 바다의 경계를 구분짓지 못할만큼 서로가 푸르다. 모래 바닥 때문에 옅은 에멜랄드빛 바다색을 볼 수 있다. 오일장과 겹치는 날이면 눈과 입이 즐겁다. 
동절기를 제외하고 겪주에 한 번 토요일마다 2시간씩 벨롱장이 선다. 제주스러운 소품들과 먹거리들이 가득하다. 코로나때문에 지금은 중단된 상태. '벨롱'은 잠깐 이라는 뜻의 제주어.
제주 4면의 바다를 다 보았는데 나에겐 제주 동쪽의 바다가 가장 아름답게 느껴진다.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는다. 매일 봐도 날씨에 따라 깊이에 따라 매일 달라지는 신비한 바다.
노을과 구름이 만들어내는 하늘의 작품. 매일 저녁마다 하늘은 도화지가 되고 해와 구름은 붓질을 한다. 시시각각 아름다운 작품을 보여주는 어느 저녁의 세화해변 그리고 하늘. 
5일과 10일마다 세화민속오일장이 열린다. 작지만 먹거리며 입을거리, 모종 등 생활에 필요한 물건들이 한가득이어서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세화민속오일장 주변의 주민들이 세화오일장 폐지에 관한 진정서를 제출했다고 한다. 세화민속오일장이 열리는 날마다 주차며, 쓰레기 때문에 생활에 불편을 겪기 때문이다. 정작 주차를 아무곳에나 하고 쓰레기를 여기저기 생각없이 버리는 사람들은 지역주민이 아니다. 보통은 'ㅎ'자를 달고 오는 렌트카, 그리고 그 렌트카를 타고 오는 이들이다. 제발, 모든 관광지를 자기집처럼 생각하고 이용해주었으면 한다. 자신의 이기심이, 혹은 생각없이 하는 나쁜 습관이, 누군가의 일자리를 잃게하고 삶을 위협하는 결과를 초래해서는 안되는 것 아닌가. 


세화민속오일장 안에 녹차호떡 파는 곳이 있다. 지금은 여러곳 생겼지만 몇 년 전 까지만 해도 딱 한 곳 뿐이었다. 세화오일장에 가면 잊지 않고 사먹는 녹차호떡. 사진보니 군침돈다.

 

 


# 한동 


지금 집으로 이사오기 전에 2년 간 머물렀던 한동. 제주 전통집에는 안거리 밖거리라는 것이 있다. 안채와 별채 같은 느낌이다. 

 제주로 이사오기 전 한 달 동안 발품 팔아 얻은 돌담집. 안거리 밖거리, 마당, 텃밭, 돌담이 있는 집을 얻고자 했었는데 나의 바람에 딱 맞는 제주 전통집을 얻었다. 아, 물론 내부는 리모델링 한 집이었다. 

 그 집에서 어마무시한 손님맞이로 힘들기도 했지만 둘이 알콩달콩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그리운 지인들이 놀러와 함께하며 참 많은 추억을 쌓았다. 한번씩 사진을 들춰보며 추억하는 한동집. 그 한동에서의 풍광들. 


주말 아침 텃밭의 잡초를 뽑은 뒤 허리를 펴고 하늘을 올려다본다. 가을하늘은 높고 푸르다. 그리고 말 대신 내가 살찐다. 
우리집 그리고 동네 동네 돌담을 휘감고 자라는 담쟁이덩굴. 멋스럽다. 동네의 인테리어를 책임지는 녀석이다.  
점점이 박혀있는 양털구름과 옆집 옥상에 걸린 빨래들이 너울너울 춤을 춘다. 구름은 흘러가고 빨래의 습기는 올라가고. 습한 제주의 해풍 대신 건조한 가을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한동집 마당에서 본 노을. 평상에 앉아 넋을 잃고 보았던 어느 가을날의 저녁 하늘.  



# 행원 


한동에서 월정 쪽으로 난 작은 샛길을 따라 달리다보면 낮은 언덕에 정자가 하나 놓여있다. 사실 제주는 곳곳에 정자가 있다. 누구나, 언제나 이용 가능한 마을 공동의 지붕 달린 평상. 제주에 이사와서 그게 가장 신기했고 또 좋았다. 


정자에 올라서서 본 행원마을. 한 폭의 그림이다.  저 멀리 바다도 보이고 풍차도 줄지어 서있다. 알록달록 지붕도 하늘과 어울린다. 시야를 가리지 않는  낮은 집들이 참 좋다. 
정자에 올라서서 본 행원바다.  하염없이 마을과 바다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어느덧 해가 취침을 준비한다. 



# 코난비치 


 제주 현지인들만 아는 장소. 행원에서 월정으로 올라오다보면 오른편에 위치한 자그마한 해변. 나름 주차장도 넓고 아이들이 놀기에도 바다의 깊이와 너비가 적당하며, 결정적으로 노을 맛집이다. 해지는 저녁에 풍차를 배경으로 셔터를 누르기만 하면 인생사진을 건질 수 있는 곳. 


멍 때리며 지는 해를 보게 되는 장소. 인간이 빚어낼 수 없는 황홀한 풍경 앞에서 겸손해지게 되는 시간. 
코난비치 일몰 장면. 잠시 감상하고 가실께요 ~ 




# 월정


 월정해변은 아름답다. 조화라곤 1도 없이 무작위로 들어선 빽빽한 건물들과, 몇 발자국 안 가서 부딪히는 사람들도 어쩌지 못하는 월정 바다만의 빛깔이 있다.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월정 바다만의 빛깔을 넋놓고 쳐다보는 관광객들이 즐비하다. 그냥 쳐다만 보다 갔으면 좋겠는데 요즘은 그곳에서 놀다가 그냥 두고 가는 쓰레기 때문에 골치라고 한다. 

 월정해변의 낮도 아름답지만, 월정해변을 조금 지나 돌아가면 있는 방파제에서 본 월정해변의 밤도 아름답다. 


북적이고 복닥이던 낮은 밝고 활기차지만, 한 풀 꺽인 빛과 고요함 그 회색 빛의 밤은 차분하다. 월정도 쉬고 싶지 않을까. 어쩌면 저 회색 빛의 월정이 진짜 모습이 아닐까. 




# 김녕 


 내가 가진 사진 중 가장 안나온 김녕사진들. 찾아보니 김녕의 사진은 다 눈이 부시도록 쨍한 봄과 여름 사진 뿐이었다. 꼭 인물이 같이 찍혀있거나. 

 김녕은 드라이브 하다 잠시 쉬어 가기 참 좋은 나의 최애 멍스팟이다. 아직은 북적이지 않는 곳이라 좋았는데 올여름 코로나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많았다. 또 지금까지 무료이던 김녕 캠핑장에서 돈을 받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살짝 실망하긴 했다. 

 그래도 여전히 바다 빛깔은 명불허전. 많은 이들이 웨딩사진을 찍고 인생샷을 남기기 위해 꼭 들르는 장소이기도 하다.  


어제의 김녕 사진. 물이 드러난 빌레 위에서 지난 여름 미처 바다를 누리지 못한 많은 이들이 바다를 즐기고 있다. 걷기 딱 좋은 날씨였던 어제의 제주. 
약간은 쓸쓸해보이는 김녕의 가을 바다. 가는 모래와 검은바위, 에메랄드빛 바다와 경계를 알 수 없는 파아란 하늘 그리고 풍차가 어우러진 멍스팟. 




# 조천 


 김녕에서 함덕을 지나(함덕은 떠도는 여름 바다 사진이 워낙 많으니 패쓰) 해안도로를 따라 올라오면 보이는 조천수산 앞 바다. 회 맛집, 석양 맛집. 관광객들이 빠져나간 가을에는 해질녁 이 곳에 앉아 낚시하는 주민들이 곳곳에 눈에 띈다.  


신랑이랑 드라이브 나갔다가 한참을 기웃거렸던 곳. 낚시 할 줄 모르는 나인데 한번쯤은 이 곳에서 저렇게 앉아 세월을 낚고 싶다. 
지는 해를 등지고 들어오는 배 한 척. 아마도 갈치 철이었을텐데 무슨 고기를 잡느냐보다 그냥 일몰과 배가 어우러지는 풍경을 제때 잡을 수 있을까가 더 궁금해 셔터를 눌렀던 순간. 
제주에 사는 건 축복이다. 이렇게 매일 멋진 일몰을 바라보며 산책할 수 있다니. 




# 한담해안도로 


제주 북쪽을 살짝 건너 뛰어 북서쪽 한담해안도로. 

도민들의 산책코스로도 그만이고 효리네 민박에 나와서 관광객들에게도 많이 알려진 곳. 바람이 선선하게 부는 가을 어느 날. 빼어난 절경을 바라보며 산책하기 좋은 곳. 

 바다빛깔과 물놀이는 동쪽을 따라올 수 없지만 해안산책로는 한담이 최고인 듯 싶다.  



산책로에 부딪히는 파도. 해안산책로가 참 잘 되어 있는 곳. 한담해안산책로. 
다들 예쁘게 차려입고 나온 관광객이었는데 우리는 노메이크업에 썬글라스, 야상에 슬리퍼.  누가 봐도 동네주민.  햇살과 바다, 억새와 바람. 가을산책 최고의 조합.



# 산굼부리 


  중산간 쪽으로 다시 들어가 봅니다. 가을이면 억새 천지인 제주에서 돈내고 보는 억새 관광지. 

 우리는 딱 한 번 가보고 지금껏 안갔지만, 육지에서 놀러오는 친구 중에는 제주에 올 때마다 들른다는 친구가 있을 정도로 좋아하는 사람은 정말 좋아하는 억새 명소. 

 사실 굳이 돈내고 보지 않아도 억새 천지인 제주의 가을. 그래도 억새가 한창일 때의 산굼부리는 멋있다.  


높고 파아란 하늘과 대비되는 억새. 
가을과 억새. 산굼부리에 올라가면 주변의 오름들이 다 내려다보인다. 
억새길. 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배경으로 인생샷을 찍는다. 



# 조천 제주소주


가을 하면 떠오르는 코스모스 명소. 조천에 위치한 제주소주이다. 


넓은 들에 코스모스가 만개해 있다. 이 곳 역시 웨딩사진도 찍으러 오는 명소. 



# 절물자연휴양림


 얼마전 제주도민 모두 입장료 무료인 곳으로 바뀌었다. 신랑이 너무 좋아하는 곳. 

삼나무 숲길도 예쁘고, 산책하다가 중간에 있는 작은 절과 연못고 예쁜 곳. 해가 쨍 한 날,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모두 걷기 딱 좋은 장소. 비자림길이 너무 짧아 아쉬운 이들이라면 한 번 가만한 장소. 여러번 가도 질리지 않는 곳. 





# 아끈 다랑쉬 


 '작은' 이라는 뜻의 '아끈'. 다랑쉬 오름 옆에 위치한 더 작은 오름. 이 곳은 억새의 명소. 산굼부리가 걷기 너무 힘든 어르신이나, 돈 내고 억새를 보고 싶지 않은 사람들, 간단한 산책을 위한 마실에 풍경도 놓치고 싶지 않은 이들이라면 강추. 


억새가 한가득인 아끈 다랑쉬오름. 5분만 오르면 이 멋진 절경을 감상할 수 있다. 





# 추자도 


 제작년 가을 업무 차 갔었던 추자도. 상추자, 하추자가 있는데 우리는 체육관에서만 행사를 하곤 한시간 자유시간을 가지고는 바로 복귀. 그 짧은 한시간 동안 산책하며 돌아본 추자는 평화로웠고, 그 날의 날씨는 한마디로 "걷기 딱 좋은 날씨 ~" 였다. 


체육관 뒷편 산책로를 걷다가 만난 작은 암자?의 문으로 본 추자 초등학교. 한 폭의 그림 같다. 자연이 주는 선물. 
걷다가 작은 절을 만났다. 하늘과 구름과 저 작은 절과 나무들이 너무 잘 어우러져 나도 모르게 사진을 찍게 되었던 곳. 절은 왜 다 공기좋은 곳에 위치해 있는걸까. 




# 약천사 


약천사는 제주 이주 전 나 홀로 여행길에 들렀던 곳이다. 낙엽도 좋고 산새 소리도 좋고 산책길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좋았던 건 산책길 사이사이에 써있던 글귀들이었다. 깊은 묵상을 끌어내는 글귀들. 


하루하루 충실하게 나를 채워가는 일. 생각해보면 나의 인생을 위해 오롯이 할 수 있는 일은 그것 뿐인 것 같다. 





 코로나19로 인해 '마음껏' 할 수 있는 일이 줄었다. 일상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끼며 살아가게 된다. 

 그리고 '배려'란 무엇인지, '함께' 살아가는 것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도 하게 된다. 


 나와 타인을 위한 배려로 추석 귀향길을 포기한 많은 이들, 타지로의 여행 대신 집콕과 동네 마실을 선택한 많은 이들을 응원한다. 그 많은 이들을 위해 랜선 제주가을여행을 준비해 보았다. 기회가 된다면 계절별 제주의 모습을 다 담아봐야겠다. 



 그리고 이번 추석연휴 때 제주로 여행오시는 많은 분들. 어차피 선택한 여행길이라면 제발 방역수칙 잘 지켜주시길. 마스크 꼭 착용해주시고, 시시때때로 손세정 해주시고, 쓰레기는 가져다가 제 자리에 버려주시길. 인간의 작은 이기심으로 지구가 병 들지 않길. 병든 지구가 다시 우리를 역습하지 않길. 간절히 부탁드리고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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