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코로나
코로나19로 인해 명절에 고향에 내려가는 걸 자제하라는 정부의 권유가 있었다. 자발적으로 가족들의 안위를 위해 가족들과 만나는 걸 뒤로 미루기로 한 사람들 또한 대다수다. 하지만 가족들과 만나는 대신 제주로의 여행을 택한 이들이 어마무시하다. 추석 때 제주 여행객이 20만명에 육박할 것이라는 기사를 보자마자 코로나19 확산의 방지를 위해 했던 정부의 권유와 가족들의 안위를 위한 부모님의 배려 대신 자제력을 잃은 인간의 이기심이라는 단어가 내 머리 속을 스쳤다.
안타깝다. 제주도민들도 누군가의 가족의 일원이고, 제주 또한 누군가의 삶의 터전이다. 제발 좀 지금 같은 시기에 여행은 자제해주었으면 좋겠다. 어쩔 수 없다면 마스크 끼고 방역 수칙이라도 잘 지켜주길.
이번 추석 때 육지에 올라가지 않기로 결정했다. 감사하게도 우리의 결정에 앞서 추석 때 올라오지 말라는 양가 부모님의 전화가 있었다. 우리 둘이 동네 마실이나 다니자라고 생각했는데 엄청난 관광객 때문에 정작 제주도민인 우리가 더 조심하며 집콕해야하는 처지가 되었다.
지난 몇 년 동안의 제주 가을 사진을 보며 마음을 달래야겠다.
(모든 사진은 다 Photo by 단비. 무단도용하지 말아주세요. 캡처나 저장하실 경우 꼭 댓글 남겨주세요.)
순서는 제주 동쪽부터 왼쪽 방향으로 해안을 타고 거슬러 오른다. 다 제주의 가을에 담은 사진이다.
사진 아래에 각 사진의 설명을 담았다.
# 종달
# 세화
세화민속오일장 주변의 주민들이 세화오일장 폐지에 관한 진정서를 제출했다고 한다. 세화민속오일장이 열리는 날마다 주차며, 쓰레기 때문에 생활에 불편을 겪기 때문이다. 정작 주차를 아무곳에나 하고 쓰레기를 여기저기 생각없이 버리는 사람들은 지역주민이 아니다. 보통은 'ㅎ'자를 달고 오는 렌트카, 그리고 그 렌트카를 타고 오는 이들이다. 제발, 모든 관광지를 자기집처럼 생각하고 이용해주었으면 한다. 자신의 이기심이, 혹은 생각없이 하는 나쁜 습관이, 누군가의 일자리를 잃게하고 삶을 위협하는 결과를 초래해서는 안되는 것 아닌가.
# 한동
지금 집으로 이사오기 전에 2년 간 머물렀던 한동. 제주 전통집에는 안거리 밖거리라는 것이 있다. 안채와 별채 같은 느낌이다.
제주로 이사오기 전 한 달 동안 발품 팔아 얻은 돌담집. 안거리 밖거리, 마당, 텃밭, 돌담이 있는 집을 얻고자 했었는데 나의 바람에 딱 맞는 제주 전통집을 얻었다. 아, 물론 내부는 리모델링 한 집이었다.
그 집에서 어마무시한 손님맞이로 힘들기도 했지만 둘이 알콩달콩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그리운 지인들이 놀러와 함께하며 참 많은 추억을 쌓았다. 한번씩 사진을 들춰보며 추억하는 한동집. 그 한동에서의 풍광들.
# 행원
한동에서 월정 쪽으로 난 작은 샛길을 따라 달리다보면 낮은 언덕에 정자가 하나 놓여있다. 사실 제주는 곳곳에 정자가 있다. 누구나, 언제나 이용 가능한 마을 공동의 지붕 달린 평상. 제주에 이사와서 그게 가장 신기했고 또 좋았다.
# 코난비치
제주 현지인들만 아는 장소. 행원에서 월정으로 올라오다보면 오른편에 위치한 자그마한 해변. 나름 주차장도 넓고 아이들이 놀기에도 바다의 깊이와 너비가 적당하며, 결정적으로 노을 맛집이다. 해지는 저녁에 풍차를 배경으로 셔터를 누르기만 하면 인생사진을 건질 수 있는 곳.
# 월정
월정해변은 아름답다. 조화라곤 1도 없이 무작위로 들어선 빽빽한 건물들과, 몇 발자국 안 가서 부딪히는 사람들도 어쩌지 못하는 월정 바다만의 빛깔이 있다.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월정 바다만의 빛깔을 넋놓고 쳐다보는 관광객들이 즐비하다. 그냥 쳐다만 보다 갔으면 좋겠는데 요즘은 그곳에서 놀다가 그냥 두고 가는 쓰레기 때문에 골치라고 한다.
월정해변의 낮도 아름답지만, 월정해변을 조금 지나 돌아가면 있는 방파제에서 본 월정해변의 밤도 아름답다.
# 김녕
내가 가진 사진 중 가장 안나온 김녕사진들. 찾아보니 김녕의 사진은 다 눈이 부시도록 쨍한 봄과 여름 사진 뿐이었다. 꼭 인물이 같이 찍혀있거나.
김녕은 드라이브 하다 잠시 쉬어 가기 참 좋은 나의 최애 멍스팟이다. 아직은 북적이지 않는 곳이라 좋았는데 올여름 코로나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많았다. 또 지금까지 무료이던 김녕 캠핑장에서 돈을 받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살짝 실망하긴 했다.
그래도 여전히 바다 빛깔은 명불허전. 많은 이들이 웨딩사진을 찍고 인생샷을 남기기 위해 꼭 들르는 장소이기도 하다.
# 조천
김녕에서 함덕을 지나(함덕은 떠도는 여름 바다 사진이 워낙 많으니 패쓰) 해안도로를 따라 올라오면 보이는 조천수산 앞 바다. 회 맛집, 석양 맛집. 관광객들이 빠져나간 가을에는 해질녁 이 곳에 앉아 낚시하는 주민들이 곳곳에 눈에 띈다.
# 한담해안도로
제주 북쪽을 살짝 건너 뛰어 북서쪽 한담해안도로.
도민들의 산책코스로도 그만이고 효리네 민박에 나와서 관광객들에게도 많이 알려진 곳. 바람이 선선하게 부는 가을 어느 날. 빼어난 절경을 바라보며 산책하기 좋은 곳.
바다빛깔과 물놀이는 동쪽을 따라올 수 없지만 해안산책로는 한담이 최고인 듯 싶다.
# 산굼부리
중산간 쪽으로 다시 들어가 봅니다. 가을이면 억새 천지인 제주에서 돈내고 보는 억새 관광지.
우리는 딱 한 번 가보고 지금껏 안갔지만, 육지에서 놀러오는 친구 중에는 제주에 올 때마다 들른다는 친구가 있을 정도로 좋아하는 사람은 정말 좋아하는 억새 명소.
사실 굳이 돈내고 보지 않아도 억새 천지인 제주의 가을. 그래도 억새가 한창일 때의 산굼부리는 멋있다.
# 조천 제주소주
가을 하면 떠오르는 코스모스 명소. 조천에 위치한 제주소주이다.
# 절물자연휴양림
얼마전 제주도민 모두 입장료 무료인 곳으로 바뀌었다. 신랑이 너무 좋아하는 곳.
삼나무 숲길도 예쁘고, 산책하다가 중간에 있는 작은 절과 연못고 예쁜 곳. 해가 쨍 한 날,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모두 걷기 딱 좋은 장소. 비자림길이 너무 짧아 아쉬운 이들이라면 한 번 가만한 장소. 여러번 가도 질리지 않는 곳.
# 아끈 다랑쉬
'작은' 이라는 뜻의 '아끈'. 다랑쉬 오름 옆에 위치한 더 작은 오름. 이 곳은 억새의 명소. 산굼부리가 걷기 너무 힘든 어르신이나, 돈 내고 억새를 보고 싶지 않은 사람들, 간단한 산책을 위한 마실에 풍경도 놓치고 싶지 않은 이들이라면 강추.
# 추자도
제작년 가을 업무 차 갔었던 추자도. 상추자, 하추자가 있는데 우리는 체육관에서만 행사를 하곤 한시간 자유시간을 가지고는 바로 복귀. 그 짧은 한시간 동안 산책하며 돌아본 추자는 평화로웠고, 그 날의 날씨는 한마디로 "걷기 딱 좋은 날씨 ~" 였다.
# 약천사
약천사는 제주 이주 전 나 홀로 여행길에 들렀던 곳이다. 낙엽도 좋고 산새 소리도 좋고 산책길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좋았던 건 산책길 사이사이에 써있던 글귀들이었다. 깊은 묵상을 끌어내는 글귀들.
코로나19로 인해 '마음껏' 할 수 있는 일이 줄었다. 일상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끼며 살아가게 된다.
그리고 '배려'란 무엇인지, '함께' 살아가는 것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도 하게 된다.
나와 타인을 위한 배려로 추석 귀향길을 포기한 많은 이들, 타지로의 여행 대신 집콕과 동네 마실을 선택한 많은 이들을 응원한다. 그 많은 이들을 위해 랜선 제주가을여행을 준비해 보았다. 기회가 된다면 계절별 제주의 모습을 다 담아봐야겠다.
그리고 이번 추석연휴 때 제주로 여행오시는 많은 분들. 어차피 선택한 여행길이라면 제발 방역수칙 잘 지켜주시길. 마스크 꼭 착용해주시고, 시시때때로 손세정 해주시고, 쓰레기는 가져다가 제 자리에 버려주시길. 인간의 작은 이기심으로 지구가 병 들지 않길. 병든 지구가 다시 우리를 역습하지 않길. 간절히 부탁드리고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