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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비 Oct 12. 2020

'나의 비거니즘 만화'를 읽고

어쩌다, 폴로 선언

        

‘폴로’를 선언했다. 

나는 닭고기와 유제품을 포기하지 못해서

'폴로'('붉은 살코기'를 먹지 않는 단계)로 비거니즘 실천의 첫 걸음을 떼기로 했다.

   




동물 착취로 얻은 가죽이나 화장품 등도 소비하지 않는 사람은 비건, 

채식을 하나 달걀을 제외한 유제품까지는 허용하는 사람은 락토, 

채식을 하나 달걀과 유제품까지는 허용하는 사람은 락토 오보, 

채식을 하나 생선, 달걀, 유제품까지는 허용하는 사람은 페스코, 

붉은 살코기를 먹지 않는 사람은 폴로, 

채식을 지향하나 때에 따라 육류와 생선을 먹는 사람은 플렉시테리언, 

식물의 생존을 방해하지 않는 열매, 잎, 곡식 등만 먹는 사람을 프루테리언이라 한다.  




비거니즘은 모든 동물의 삶을 존중하고, 모든 동물의 착취에 반대하는 삶의 방식이자 철학을 말하는데 

사실 난 오랜 기간 동안 마음 한 구석에서 조금씩 비거니즘을 지향했었다.     


서울환경영화제에서 관람한 영화를 통해 인간이 고기를 얻기 위해 동물을 가학적으로 대하는 장면, 쓰레기로 인해 고통 받는 해양생물의 아픔 등을 처음 접했다. 영화를 보면서 안타까워하고 슬퍼했지만 삶의 방식을 어떻게 바꾸어야 하는지 그 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영화 옥자를 보며 동물권에 대한 생각을 했지만 단순히 고기를 먹지 않고 채식주의를 하는 것이 동물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 구체적으로 알지 못했다. 그렇기에 ‘고기를 먹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은 영화를 볼 때 뿐 이었고 다시금 나의 식탁에 고기를 자주 올렸다.     

 

제주로 이주해서 친해진 이웃들을 초대해 저녁 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이웃 중 한 친구가 본인이 먹을 음식을 가져왔다. 그 친구는 자신을 비건이라고 소개했고 바비큐와 새우를 준비했던 우리는 왠지 모를 미안함과 궁금함 사이에서 비건의 일상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다가 지난 9월 「나의 비거니즘 만화」라는 책을 읽었다. 

「나의 비거니즘 만화」는 그림과 글로 비거니즘이 어떻게 자연과 동물에게 도움이 되는지를 쉽게 풀어냈다.         


아프냐? 나도 아프다    


 우리 인간들은 집, 놀이터, 카페, 학교, 회사 등 머물 수 있는 공간이 다양한 반면

고기로 태어난 돼지들의 삶과 세상은 거의 똑같다.     


 아기돼지는 분만사에서 태어나 생후 일주일이 지나면 꼬리를 잘린다. 돼지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다른 돼지의 꼬리를 물어뜯기 때문에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이 때 돼지의 꼬리는 펜치나 열선이 있는 가위로 마취 없이 잘라낸다. 어미 돼지의 젖을 상하게 할 수 있기 때문에 송곳니도 마취 없이 자른다. 생후 3주가 지나면 자돈사로 옮겨 2개월 동안 생활하는데 자돈사의 환기 시설은 악취와 가스를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바닥에는 돼지의 배설물이 빠질 수 있도록 길쭉한 구멍이 빼곡하게 뚫려 있으나 많은 양을 감당하지 못해 지저분한 환경에 그대로 노출된다. 비좁고 지저분한 곳에서 자라다가 생후 6개월이 되면 도축을 한다. 돼지의 자연 수명이 10 ~ 15세인 걸 고려하면 아직 아기 돼지일 때 죽게 되는 것이다.     


 돼지가 도축장으로 갈 때에는 트럭에 실리는데 낯선 환경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서 쉽게 트럭에 타려 하지 않는다. 움직이지 않으려는 돼지는 철봉으로 찌르거나 전기 충격기로 전기 충격을 가한다. 도축장에 들어서면 전기충격기로 충격을 가하거나 이산화탄소 가스에 노출해 기절시킨다. 이 두 가지 방법 모두 실패하면 칼로 경정맥을 찔러 피를 내보내는데 이 과정에서 돼지의 숨이 멎게 되고 그 뒤 다듬어진 고기와 내장 등의 부산물이 트럭에 실려 도축장을 떠나게 된다.     


 그동안 나는 삼겹살이나 목살을 먹으며 돼지를 생각하지 않았다. 


음식이 되기 이전의 삶을 생각해보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그림과 함께 정보를 접하고 나니 ‘나의 식탁에 올라왔던 붉은 고기 이전의 돼지는 나와 같이 즐거워하고 아픔도 느끼는 살아있는 생명체였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반려견으로 많이 기르는 웰시코기도 인간의 유익을 위해 희생된 가엾은 동물이었다. 짧은 꼬리를 타고난 웰시코기는 일부 품종일 뿐이고 오로지 인간의 구미에 맞춰 미용 때문에 대부분 단미 수술을 거쳐 꼬리가 짧아진 것이라고 한다.

단지 인간이 보기에 귀엽다는 이유만으로 큰 고통을 가하고 그를 보며 즐거워했던 나. ‘그동안 난 참 무지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비거니즘 만화」를 읽으며 문어발을 씹다가 혀를 깨물었다. 으아. 아파서 얼굴을 찡그렸는데 책 속의 돼지와 웰시코기가 나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 했다.


 "아프냐? 나도 아프다."




안 먹으면 환경이 살아난다     


당장 나 한사람이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이 환경보호와 무슨 연관이 있을까?     


이 책을 읽고 나서 명확히 알게 되었다. 

비거니즘의 실천은 환경보호의 실천과 맞물려 있다는 걸.     


축산업은 넓은 토지가 필요하기에 산림을 많이 훼손하게 된다.

아마존 열대우림의 70%가 목초지, 도살장, 사료 경작지를 마련하기 위해 벌목된다. 


가축의 분뇨는 환경을 오염시킨다.

1만 마리의 소가 배출하는 노폐물 양은 11만 명이 사는 도시에서 나오는 쓰레기의 양과 맞먹고

전 세계 가축 분뇨에 포함된 질소와 인은 강과 바다의 부영양화를 촉진한다.     


축산업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는 지구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14 ~ 18%를 차지한다고 추정되는데 이는 전 세계 모든 운송 수단이 배출하는 온실가스 배출량과 비슷한 수준이다. 한 마리 소가 1년에 방출하는 메탄가스는 100kg 정도이며, 전 세계 소가 발생시키는 메탄가스는 전체 메탄 배출의 25%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전 세계 곡물 생산량의 3분의 1이 가축 먹이로 사용된다. 국제식량정책연구소는 2020년까지 선진국들이 육류 소비를 50% 줄일 경우 개발도상국에서 굶주리며 살아가는 360만 명의 어린이를 구제할 수 있을 거라 밝혔다. UN세계식량이사회는 현재 가축 사료로 쓰이는 곡물량의 10 ~ 15%로 세계 인구를 먹이기 충분한 양이 될 거라 추산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2011년 생산한 항생제의 80% 이상이 가축에 쓰였는데

사람이 고기를 섭취할 때 잔류 호르몬과 잔류 항생제를 섭취할 위험이 따르게 된다.  

   

사육장에서 발생한 바이러스는 인간의 건강에 위협이 된다.

조류인플루엔자, 신종플루, 광우병 등 인간을 감염시키는 전염병은 공장식 가축 사육과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 전쟁으로 인한 사망자는 6억 1,900만 명인데 인간은 3일마다 그만큼의 동물을 죽인다.  

   

고기의 섭취를 줄이면 환경보호 뿐 아니라 인간의 건강 위협과 대규모 동물 학대를 막을 수 있다. 




No! 완벽주의     


폴로 선언 이후에도 나는 깜빡깜빡 잊곤 한다. 


얼마 전에 남편과 백반정식을 먹으러 갔다. 고등어구이와 같이 나온 제육볶음을 아무 생각 없이 상추에 싸서 마늘과 무말랭이를 얹어 야무지게 먹었다. 그렇게 몇 쌈을 더 먹었는데 남편이 "폴리인가 뭔가 한다고 하지 않았어?" 물었다.

아차차. 그제서야 자연스럽게 제육볶음으로 가던 젓가락질을 멈추고 고등어구이에만 집중했다.   

  

폴로 선언을 하고 나니 세상에 돼지고기와 소고기로 만든 음식이 얼마나 많이 보이던지.. 나의 최애 음식인 만두도 돼지고기로 만들어 졌고, 집 펜트리에 쌓여있는 스팸도 돼지고기, 심지어 심심하면 먹던 라면도 소고기스프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제 음식을 먹으면서 이게 돼지고기인지 소고기인지 생각하게 된다. 이전의 습관 때문에 자주 생각 없이 모든 음식이 입으로 직행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는다.    

 

불완전한 실천이라도 의미가 있고, 완벽하지 않아도 작은 노력 하나로도 지구를 지켜갈 수 있다는 글이 내게 용기를 주었다.     


폴로 선언과 비슷한 시기에 물도 끓여 먹기 시작했다. 어느 날 분리수거를 하는데 생수 페트병이 너무 많이 나와서 쓰레기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가 선택한 방법이다. 냉동실에 그동안 양가 부모님이 보내주셨던 돼지감자, 대추, 생강 등 건강 재료들이 가득해서 생수를 대신해 끓여 마시기로 했다. 워낙 물을 많이 마셔서 2 ~ 3일에 한 번씩은 물을 끓여서 식히는 귀찮음을 여러 번 반복해야 하지만 확실히 쓰레기가 줄었다. 의미 있는 귀찮음이기에 기꺼이 움직인다.     


 완벽하지 않아도 즐거운 걸음이다. 

나의 작은 실천이 동물의 비윤리적인 죽음을 줄이고, 환경을 살리는데 도움이 되기에.

무엇보다 나 스스로가 한 걸음의 실천으로 뿌듯하고 행복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나의 ‘폴로 선언’이 삶을 가두는 틀이 아니라

나의 세계를 보다 평화적으로 넓히는 ‘삶의 방향'이 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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