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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비 May 25. 2021

우리집 멍물이

어쩌다, 냥집사

나는 고양이를 무서워하고 강아지도 보는 것만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인연의 시작 


작년 가을 즈음.

마당에서 캠프파이어를 하면 가끔 찾아와 고기나 먹태 한 점씩을 받아 먹던 길냥이가 

어느 날 부터인지 아침마다 집 앞에 왔다. 

집 앞에 찾아오는 길냥이에게 끓는 물에 스팸을 여러번 헹구어주면서 

우리 인연이 시작되었다. 


한 두번 스팸이나 멸치 등을 주니 녀석은 거의 매일 찾아왔고

애교를 부리며 냐옹거리고 배를 보여주어 길냥이에서 개냥이가 되었다. 

동물을 엄청 사랑하는 여보야는 급기야 20kg짜리 고양이 사료를 주문했다. 


하루에 한 번 개냥이 밥주기가 일상이 될 무렵 겨울이 왔다. 

눈보라가 몰아치던 날 이른 아침부터 녀석이 우리집 앞에서 냐옹거리길래

얼어죽을까 염려되어 집 마당에 스티로폼과 종이박스로 집을 만들어 주었다. 


매일 밥도 얻어먹고 집도 가진 녀석에게 질투를 해서인지 

녀석보다 덩치가 한 뼘은 더 큰 동네 길냥이들이 개냥이 집 앞(우리집 마당)에 종종 찾아와 그르릉 거렸다. 

그런 길냥이랑 싸웠는지 하루는 뒷다리에 큰 상처를 입은 채 다리를 절뚝거리며 나타났다. 

시간이 조금 지나면 자연스레 낫겠지 싶었는데 하루 이틀 지나도 낫지는 않고 

오히려 앉지도 못할만큼 상태가 악화되었다. 

동물보호센터에 전화했더니 신고자가 직접 포획을 해야한다고 했다. 

태어나서 처음 고양이를 안아봤다. 

안가려고 발버둥 쳤는데 뒷다리가 다친데다 사람 손을 타서인지 나름 순순히 포획틀 안까지 들어가주었다. 

포획틀에 들어가서 어찌나 울던지. 

연신 치료 잘받고 돌아오라며 괜찮다고 안심시켜 주는 말을 했었는데 알아는 들었는지.

동물보호센터에서는 동물병원으로 인계시켜 상처도 치료하고 중성화수술도 시켜서 집 앞으로 데려다 주었다. 



냥며들다


다시 우리집에 온 녀석은 훌쩍 커 있었다. 

우리에게 조금 더 특별한 존재가 된 것 같아 

멍물이(냥이가 아니고 댕댕이 같아서 '멍' + 까매서 먹'물')라고 이름 붙여주었다. 

그 다음부터는 우리를 더 잘 따랐다.

강아지처럼 동네 산책도 같이 하고,(난 정말이지 고양이 산책은 듣도 보도 못했었다.)

예쁘다고 사진 찍으려고 하면 찍으라고 포즈도 취해준다. 

캠프파이어하면 어느새 옆에 와서 종이박스 안에 누워 졸고 있는다. 

매일같이 배를 내어주며 냐옹거리고 누워서 개처럼 꼬리도 살짝살짝 흔든다. 

(이웃집 쫄리-개-네 집에서 자기도 하고 사료도 종종 먹고 온다는데 쫄리한테 배웠나보다)


어디갔나 싶어 테라스 창문에서 "멍물아~" 부르면 밖에 있다가 

우리집 대문으로 당당하게 냐옹거리며 휘리릭 달려온다. 

여보야 퇴근 시간이면 어김없이 여보야를 기다렸다가 주차장부터 집 앞까지 따라온다. 


가끔씩 집 밖에 쌓아둔 페인트통(잡초뽑기용)을 다 엎어버리고 

장작을 덮어놓은 방수천을 다 찢어놓고 

잡초 뽑을 때 자기랑 놀아달라고 귀찮게 굴어서 

30분이면 끝날 일을 2시간이 넘도록 하기도 하지만 

매번 녀석의 애교에 마음이 사르르 녹아버린다. 


얼마 전 아주버니 결혼식 때문에 육지에 가느라 며칠 집을 비운 적이 있었다. 

멍물이가 너무 걱정이 되어 사료랑 물을 잔뜩 주고는 

"우리 육지 다녀올테니까 밥 잘 챙겨먹고 있어." 했더니 "냐옹 ~" 대답하는데 왠지 알아듣는 듯 했다. 

육지에 가 있던 2박 3일 동안 멍물이는 잘 있는지 외롭지는 않을지 걱정했었는데 

왠걸, 집에 오니 멍물이는 혼자가 아니었다. 


우유(오드아이를 가진 흰 고양이)라는 친구를 사귀어서 

(동네 꼬마가 "우유야 ~ !!" 부르며 찾아다니길래 흰 냥이 이름이 우유인 줄 알게 되었다. 

동네 집에서 돌봐주는 길냥이라고 했다.)

냥이 두 마리가 우리집 마당에서 놀고 있었다. 

우리가 도착했는데 멍물이가 냐옹 하는 게 

우리가 반가워서도 있지만 우유한테 우리를 인사시켜 주는 것 같았다.  

"내가 말했지? 우리집 집사들이야."


어쨋든 혼자 외롭게 지내지 않을까 걱정했던 게 기우였구나 싶어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동안 길냥이들이랑 싸우기만 하고 냥이 친구들도 못 사귀고

동네에 다니면서 사람들한테 애교만 피우고 놀아달라고 해서  

'혹시 자기가 사람인 줄 아는 거 아냐?' 걱정했는데 

녀석이 냥이 친구를 사귀고 자기 밥도 양보하는 걸 보니 너무 기특했다. 



앞으로도 


길냥이에서 개냥이가 되고 다시 멍물이가 될 때까지

9개월 이상을 우리집 마당에서 함께 한 녀석.

시험관을 시작하고 몇 번의 실패를 경험하는 동안 우리에게 찾아온 한 생명. 

녀석을 돌보면서 우리도 참 많은 위로와 기쁨을 받았다.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를 도닥여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우리를 찾아와 준 멍물이에게도 고맙다. 


멍물아 ~ 앞으로도 건강하게 잘 지내보자 :) 





멍물이 사진


잘생긴 멍물이 - 사진 찍는다니까 포즈 취해준다
산책 중인 멍물이
△ 치료받고 와서 허겁지겁 밥 먹는 멍물이                                                          △ 상자 안에서 졸고 있는 멍물이


△ 식빵이 자세 멍물이                                                            △ 우리 캠프파이어 하면 상자에 들어가 조는 멍물이
노을 보는 멍물이, 나무 위에 새 보는 멍물이
저 뒤 엎어진 페인트통 ㅜ 사고 쳤다고 혼냈더니 모르쇠 눈 하면서 배 보이며 애교 떠는 멍물이
멍물이랑 놀아주기 -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높다고 냐옹거리더니 이제 나무 위에도 성큼성큼 올라감
샤시 앞에 작은 쥐를 물어다 놔서 혼냈더니 또 모르쇠 눈 하고 쳐다보는 멍물이
새로 사귄 친구 우유랑 밥도 잘 나눠먹는 멍물이



태어나서 눈 처음 보는 멍물이
비 내린 뒤 멍물이랑 산책
멍물이랑 우유랑 놀아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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