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식당 2월의 메뉴
7년 전 텃밭을 했던 경험으로 냉이가 혹독한 겨울을 나면서 뿌리를 깊게 내리는 식물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그냥 봄 즈음, 땅에서 쉽게 나오는 나물쯤으로 생각했었는데, 갈무리한 배추밭 사이사이로 뿌리를 내리며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깊고 고요한 향을 품으며 봄을 알리는 식물이었다니..
올해 유독 추위를 많이 탔던 나는, 봄나물의 향이 스멀스멀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뭔가 온도로서 따뜻함을 전하는 것과는 다르게, 말없이 겨울을 받아내고, 켜켜이 쌓아온 향으로서 조용히 따스함을 전하는, 뿌리 깊은 생명의 향이 그리웠다고 해야 하나.
아직은 매우 이른 봄이라서 시장에 가도 냉이가 많이 보이진 않았지만, 그래도 운 좋게 싱싱한 냉이를 구할 수 있게 되어서 오래간만에 귀하게 튀겨보기로 했다.
원래는 냉이와 함께 쑥, 달래 등.. 여러 가지 봄나물을 조금씩 튀겨서 봄향을 실~컷 느끼게 만들어보고 싶었지만, 쑥은 아직 너무 일렀고, 달래도 마음에 드는 것을 찾기가 어려워서 단호박과 양파를 함께 튀김에 곁들여보았다. 뭔가 3가지의 조합은 그다지 흔하진 않았지만, 냉이를 돋보일 수 있는 조화라는 생각에 한 접시에 담게 되었다.
1월을 끝으로 국물요리를 졸업할 생각이었지만, 나는 종종 즐겨 먹던 메밀국수를 튀김과 함께 메뉴에 올렸다. 어쩌다 보니 국수와 튀김, 뭔가 함께 먹기에 딱 좋은 궁합으로 여겨졌다. 서로의 맛과 질감을 보완해 줄 수 있고, 함께 먹었을 때 더 맛있게 느껴지는 시너지 효과가 나는 짝꿍 같다고나 할까. 한 번은 어떤 손님께서 '이렇게 국수와 튀김을 함께 먹으니 훨씬 맛있네요'라고 말씀해 주셨다. 나도 동의한다는 표현으로 '그렇지요? 감사합니다'라고 답했다.
냉이는 국을 끓여 먹을 때가 제일 향을 깊이 느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딱 적절한 온도와 타이밍에 튀겨진 냉이를 한 입 베어 물어보니, 매력적인 향을 그대로 품고 있었다. 솥밥으로도 해 먹고, 무쳐도 먹고, 이렇게 튀겨도 보고.. 앞으로 3월, 4월, 5월의 봄나물들을 차례차례 만나가며 이런저런 다양한 요리로 해먹을 생각을 하니 괜히 마음 한 구석이 신이 나서 들썩거리는 것 같았다.
이젠 식당 문을 연지도 2달이 훌쩍 지났고, 아주 조금씩 소소한 단골손님도 생기기 시작했다. 이렇게 작고 안 보이는 골목에 위치해서 찾기도 힘든 식당을 일부러 발걸음 해서 와주시고, 식사를 하고 가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서, 내가 좋아하는 일이 타인에게도 필요하고 이로울 수 있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음을 느끼곤 한다. 그럴 때면 퇴근할 즈음, 피곤한 몸을 이끌고 장을 보러 가는 발걸음도 훨씬 가볍게 느껴진다.
겨우내 부지런히 만들어 두었던 유자소금, 유자청, 유자폰즈 덕분에 튀김요리가 훨씬 든든하고 수월했던 거 같다. 그 계절에 나고 자라는 아이들을 최상의 맛으로 저장, 발효시켜 놓으면 어떤 계절의 재료들이 다가오더라도 함께 조화시킬 수 있는 무궁무진한 방법들을 하나씩 배울 수 있게 된다.
한 달 전에는 레몬으로 소금을 만들고, 발효레몬을 담갔는데, 여름의 채소들과 짝지어줄 생각에 요러쿵 저러쿵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마다 적어두고 있다. 얼마 전 엄마가 오셔서 열무 3단을 사 오셨는데, 만들어 놓은 레몬 소금으로 간을 해서 김치를 담가두고 맛이 익어가는 걸 지켜보고 있다. 과연.. 처음 시도해 본 맛은 어떨지 당장 알 수 없지만, 이렇게 같은 재료 속에서 새로운 맛의 조화를 찾아가는 과정들이 나는 참 재미있고 좋다.
1년을 한 바퀴 돌고 나면 어느 정도 계절의 재료들을 이해할 수 있을까. 아니면 3번, 5번을 돌고 나면 또 어떤 지혜와 깊이가 더해지게 될까?
식당을 하는 것이 나에겐 배움의 장이고, 만남의 장인 거 같다. 직접 시장에 가서 장을 보고, 농부님들의 농산물을 직접 만나기도 하면서, 온오프라인을 동시에 넘나들며 요리할 수 있는 시대. 이런 시대에 태어난 나의 요리들은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펼쳐지게 될지 나도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