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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쓸 만한 조과장 Apr 19. 2020

어떤 말들은 죽지않고 마음속으로 들어가 살아남는다

지친 나를 일으켜준 한마디

말은 사람에 입에서 왔다가 사람의 귀에서 죽는다. 하지만 어떤 말들은 죽지 않고 사람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살아남는다
            -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없겠지만 '박준'-



어떤 말들은 가볍게 스쳐가고, 어떤 말들은 가슴속에 남는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사람들의 말들을 마주한다. 말 하마디로 천냥 빚도 갚는다는 속담이 있듯이, 말 한마디가 삶을 지탱해지기도 하고, 혹은 그 반대로 나쁜 말 잊지 못할 큰 상처를 주기도 한다.


이처럼 인간관계에서 말은 때 놓을 수 없는 존재이다. 상황에 따라 툭 던진 말이 큰 위안이 되기도 하고, 어떤 말은 시간이 지나면서 의미가 더 선명해지기도 한다. 내가 소개할 말들은 드라마, 영화 속 화려한 명대사는 아니지만 지친 순간 주변 사람들이 나를 끌어올린 기억 남는 말들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기준이지만, 소소한 에피소드와 함께 소개한다


# 그래도 인생은 살만하다

- 2014년, ㅇㅇ은행 부장님


대학교 2학년 여름방학 은행에서 단기 청원경찰 알바를 할 때였다. 다른 친구들은 해외를 가고 대외활동을 한다고 할 때, 나는 돈이 없어 매일 해야 할 아르바이트를 찾고 있었다. 은행에서 마지막 근로하는 날 은행 부장님이 같이 식사를 하자며 나를 불렀다. 마지막 근로라 맛있는 걸 사줄 거라 기대했지만 부장님은 근처에 있는 김치찌개 집으로 안내했다.


부장님은 나에 대한 호구조사만 한 후 서로 묵묵하게 김치찌개를 먹었다. 다 먹고 나와 부장님은 근방에 있는 시립도서관을 갔고, 우린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쌔며 열기를 식혔다. 공짜 에어컨 바람이 좋긴 한데 이게 뭐하는 일인가 싶던 참, 부장님이 갑자기 말을 건넸다 '사는 게 힘들지? 그래도 인생은 살만하다'   


23살, 내가 어른들에게 사는 게 쉽지 않다고 하면 대부분은 '아직 어리다', '사는 게 다 그래'라고 했다. 그랬기에 인생은 살만하다는 말이 잊히지 않는다. 나도 내가 어른이 될 때 저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부장님 얼굴도 기억 안 나지만, 아직도 그 골목 김치찌개 집을 지날 때면 그때가 생각난다.


# 네가 가진 문제의 답은 너 스스로 알고 있어

-???, 원ㅇㅇ 고등학교 동창


돈도 많고, 취업도 잘하고, 말 주변도 좋은 친구 한 명 있다. 만나면 하는 게 돈 자랑, 여자 자랑이다 보니 가끔은 재수 없기도 하지만, 힘든 순간에는 의리 있게 도와주고, 따뜻한 말을 건네주는 친구다. 그래서 가끔 힘들거나 우울한 날이며 그 친구에게 전화를 했고, 그는 장난반 진심반으로 내 고민들을 받아주곤 했다


연도는 기억이 안 나지만 그날도 무척이나 힘든 일이 있어 그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어떻게 해야 할까 난 모르겠으니 네가 좀 알려줘'라고 하자,  친구는 내게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문제의 답을 다 알고 있어, 그냥 호응이 필요해 얘기할 뿐이지, 너도 네 문제의 답은 알고 있을 거야'라고 말해줬다


팩폭 정도는 아니지만 머리를 탕 맞은듯한 말이었다. 생각해보면 다른 사람이 조언을 한다고 해서 내 결정이 달라지지도 않을 거 같았다. 지금도 문뜩 어려운 고민이 드거나, 지쳐있을 때는 그 친구의 말을 떠올린다. 내가 원하는 것이 그 사람의 위로인 건지, 아님 내가 내린 답을 알기 위한 건지 말이다.


# 닌 3년 후에 ㅇㅇ보다 더 성장해있을 거다.

-2017년, 강정 팀장님


2017년 26살에 인턴으로 첫 회사생활을 시작하였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대학교에서는 선임에 속했는데, 이제는 소속한 집단에서 제일 막내가 되었다. 일을 맡기면 실수가 생겼고, 질문을 하면 제대로 보고 질문하냐는 눈초리를 받았다. 그때는 내가 앞으로 회사생활을 잘할 수 있을지 막연한 걱정만 늘어났다.


그렇게 눈칫밥으로 인턴생활을 4개월로 마무리하던 중, 급작스럽게 인사이동이 생겨 다른 팀으로 가게 되었다. 팀장님은 발표가 나기 하루 전 내가 혹여나 맘 상하지 않도록 인사이동 사정에 대해 충분히 설명을 해주었다. 그러면서 '걱정마라 닌 3년 후에 ㅇㅇ보다 더 성장해있을 거다' 하는 말을 했다.


오늘은 무사히 넘길 수 있을까를 전전긍긍하던 때였다. 아무것도 없던 시절에 팀장님의 그 한마디는 큰 힘이 됐다. 인사이동 이후, 새로운 팀에서 힘든 순간이 올 때마다 나는 팀장님의 그 말을 되새겼다. 스스로 계속 잘한다고 생각을 했고, 실제로도 그렇게 되도록 노력했다. 그렇게 나는 지금 회사에서 4년을 맞이하게 되었다.


# 조 대리님은 뭘 해도 성공할 거예요. 제가 사람 보는 눈이 있거든요

-2020년, 강ㅇ흠 팀장님

 

2020년 1월 새로운 팀으로 인사발령을 받았다. 나는 2년 반 동안 함께해온 사업팀을 떠나 새로운 팀으로 가게 되었다. 새로운 팀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고, 함께한 팀을 떠나는 아쉬움도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회사생활에 의지가 된 팀장님을 다른 팀으로 떠나보내는 게 아쉬웠다.


팀장님은 50대 후반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어린 직원들에게도 존칭을 쓰는 겸손한 분이셨다. 그리고 주변 사람에게 배품의 기쁨을 아는 따뜻한 분이기도 했다. 하루는 같이 집에 가는 길에 내가 코를 훌쩍거리는 걸보고 시장에 가서 느릅나무 한통을 사주시고는 했다. 나도 그런 배려가 있는 어른이 되고 싶었다.


인사발령 이후 팀장님은 커피를 마시자며 나를 따로 불러냈고, 그동안 나를 지켜보며 느꼈던 생각을 말해주셨다. 그리고 웃으면서 '조 대리님은 뭘 해도 성공할 거예요 제가 사람 보는 눈이 있거든요'라고 말해주셨다. 내가 닮고 싶었던 분에게 들은 따스한 말 한마디는 그 무엇보다 값졌고, 그 믿음을 꼭 지켜드리고 싶다


# 한 번의 실수로 네가 살아온 인생이 부정당하지는 않을 거야

-2019년, 강ㅇㅇ 대리


2019년 11월 나는 개인적으로 어려운 상황이 있었다. 세상도 만만하고, 생각하면 다 된다고 생각해서 그랬을까 한 번의 실수는 크나큰 고통을 동반했다. 주변에서 위로를 해줘도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였기에 마음이 갑갑하고 힘들었다. 세상에 혼자가 된거 마냥 지난 살아온 인생이 허무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일들을 정리하려고 회사를 며칠 안나 가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동기들에게는 내상황을 어느 정도 전해줘야 할 거 같았다. 그리고 그날 저녁 입사동기 중에 맏언니 었던 누나로부터 장문의 카톡을 받았다 'ㅇㅇ아 그 상황이 얼마나 힘들었겠니, 너 인생의 가장 큰 실수일 수도 있겠지. 하지만 한 번의 실수로 네가 살아온 인생이 부정당하지는 않을 거야, 내가 아는 ㅇㅇ은 잘 해결해 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보통 부정적인 생각은 더 부정적으로 흘러가 나자신을 갉아먹는다. 그랬기에 주변사람들의 '힘내, 괜찮아, 너 잘못없어' 라는 말보다, 나를 갉아먹지 않게 했던 저 말이 더 큰 위로가 되었다. 이후 힘든 일로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동기누나가 했던 말을 되새기고는 한다. 나는 지금껏 잘해왔고, 이전에도 그랬듯이 잘 이겨낼 거라고.



시간이 흘렀지만, 내 가슴속에 남는 말을 선사해준 사람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힘들었던 순간 평범하지만 진심이 담긴 말들은 추운 맘을 녹이는 난로였고, 영화 속 주옥같은 명대사였고, 인생의 나침판이었다. 그렇기에 항상 따뜻한 사람이 못되더라도 주변 사람에게 말 한마디라도 따뜻하게 전해주려고 한다


말을 보면 그 사람의 그릇을 알 수 있다고 한다. 같은 말이라도 마음에 살아남는 말을 전하는 사람이 있고,  좋은 말이라도 그 무게를 품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지난 말들을 돌아보며 나는 어떤 그릇을 품고 있는 사람인가 다시 돌이켜보게 된다. 여러분들의 지친 맘을 울린 따뜻한 말 한마디무엇인가

Photo by J W on Unsplash


4.29. 코붱님 유튜브 채널에 영상도 있습니다:)

https://youtu.be/ULwLJNVenc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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