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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쓸 만한 조과장 Apr 11. 2020

우리는 상실의 시대에 살고 있다

오랜 사람과 옛것이 더 소중한 이유

우리는 상실의 시대를 살고 있다
나이가 들수록 새로움보다 익숙한 그 무언가가 더 좋다


# 레몬생강청


최근에 친한 동생으로부터 '레몬생강청'을 선물 받았다. 생일인 줄 착각하고 보냈다는 말에, 7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하구나 생각이 들었다. 친한 동생을 처음 만나게 된 건 함께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알바를 하던 때였다. 가끔 멍 때리는 걸 좋아해서 세던  까먹기도 하고, 얘기 중에도 홀로 생각이 다른 곳으로 갔다 오기도 했다.


그래서 내게 선물을 보낸 것도 왠지 멍 때리다가 보낸 게 아닌가 상상했다. 생각을 하니 재밌어 홀로 피식 웃으며 고맙다는 카톡을 보냈다. 그러다가 문득 내 주변을 다시 돌아보니, 그 시절 함께 했던 추억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이 사라졌다는 생각 들었다.


죽거나 이별한 사람들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만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자연스럽게 나와 멀어지는 사람들이 떠올랐다. 맛있게 음식을 먹고 텅 빈 그릇을 볼 때 허전함같은 아련한 마음이 들었다


# 지나간 것이 떠올라


잔나비의 "뜨거운 여름밤은 가고 남은 건 볼품없지만"을 들으면 임현정의 "사랑은 봄비처럼 이별은 겨울비처럼"이 떠오르고, 검정치마의 "나랑 아니면" 들으면  쿨에 "아로하"를 듣고 싶어 진다. 물론 다 좋은 곡들이지만, 문득 요즘 노래를 듣다 보면 이전 노래들이 생각나 다시 들어볼 때가 있다.


90년 생들은 2000년대 곡을 들으면 "역시 2000년대가 가요 전성기였어, 요즘 아이돌 노래는 그 시절 감성을 절대 못 따라가"라고 말한다. 처음에는 나도 그렇다고 생각을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 노래의 멜로디나 가사보다, 그 시절에 내 모습이 좋아서 그 노래들은 좋아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도 마찬가지인 거 같다. 회사에서 만난 사람보다 이십 대 함께 캠퍼스를 보낸 사람들이 그립고, 캠퍼스 사람들보다는 철없이 학교를 다니던 중고등학교 친구들이 그립다. 그 시절 친구들과 함께하는 모든 게 새로웠고, 내 감정은 작은 일에도 풀잎처럼 흔들렸고, 작은 실수도 철없기에 용서됐던 그 시절이 그립다


유튜브와 카카오톡은 세상과 우리를 더 긴밀하게 연결시키며 생활의 편리함을 주었다. 대신 MP3와 문자서비스는 점차 우리 삶에서 멀어지게 됐다. 덕분에 집에서 최신곡을 MP3에 넣기 위한 노력도, 문자를 꽉 채워 보내기 위한 고민도 안 하게 되었지만, 문득 그 시절의 소통방식과 내 모습들을 상실한거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상실의 시대


이처럼 나이가 들면서 내가 알고 지내던 것들이 점차 사라다. 사람과의 관계도, 내가 쓰는 물건도, 그리고 모습과 생각들도 하나하나 변하면서 상실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느낀다. 더 이상 무언가를 잃고 싶지 않지만, 죽음이별, 그리고 피할 수 없는 세상의 변화 속에서 수많은 상실들을 직면하게 되는 거 같다


군대에 있을 때 하루키의 소설 '상실의 시대(부제 노르웨이 숲)'를 처음 읽었다. 상실의 시대는 군대라는 삭막한 공간 속에서도 가슴을 뛰게하고 얼굴이 붉혀지는 장면들을 상상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그렇게 야한 소설로만 알았던 그 책을 29살이 되어 독서모임을 통해 다시 읽어보니, 조금은 새롭게 느껴지는 부분들이 있었다


주인공(와타나베)가 경험했던 젊은 날의 우정과 사랑은 때묻지 않아 아름다웠고, 친한 친구의 죽음(가즈키)과 첫사랑의 상실(나오코)속에서도 그 우정과 사랑을 기억 속에서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노력했던 모습은 순수했다.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상실을 마주하며, 지난 기억들을 가슴에 묻고 새로운 사랑을 받아들이고 그녀를 찾는 장면은, 흡사 사랑과 이별을 통해 성장해가는 우리모습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상실의 시기는 한 번쯤은 혹은 인생을 살면서 계속 거쳐야 하는 관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렇기에 갑자기 허무함과 공허함이 몰아친다고 해도, 그건 전혀 이상한 감정이 아니다. 우리는 새로운것보다 우리가 얻을 것을 잃어가는거에 더 익숙해지는 시기를 맞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상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서툴고 아쉽기만 하다. 그렇기에 오래 알고 지낸 사람들이 더 소중하게 다가온다. 친한 동생이 준 요 '레몬 생강청'다른 선물보다 특별하게 느껴진다. 상실의 시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심심한 위로를 전하며 지금도 함께하는 사람들에게 감사함을 전한다

 

#레몬생각청 # 한스푼 #잘 먹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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