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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쓸 만한 조과장 Mar 30. 2020

아버지가 원했던 건 가족사진 한 장이었네

명품도, 최고급 식사도 아닌, 그 무엇보다도 값진 것

Photo by Ben White on Unsplash


오늘은 만연한 봄 날씨였다. 코로나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고 있지만, 따사로운 햇볕에 못 이겨 우리 가족도 오랜만에 밖을 나왔다. 아버지는 가족끼리 야외에 나왔으니 사진 한번 찍어야 한다고 엄마에게 나무 뒤에 가서 포즈를 취해보라고 했다


엄:"여기 꽃도 없는데 뭘 어떻게 찍어요 참"


아:아니 그래도 기분 내는 겸 찍는 거니까 한번 서봐, 자 찍는다 하나 둘 셋, 됐다 봐 봐"


엄:"아이 나무를 찍은 거야 뭘 찍은 거예요"


나: "꽃도 안 폈는데 사진을 어디서 찍어요 그냥 가요"


나는 산책을 마치고 내가 부모님을 위해 준비한 식사 장소로 데려가고 싶었지만, 아버지는 아랑곳하지 않고 가족사진을 찍을 만한 곳을 찾아다니셨다. 생각해보면 한동안 그 흔한 가족사진도 찍지 않은 거 같았다. 나도 마지못해 아버지에 동참하여 사람들이 없는 벤치에 앉아 셀카로 가족사진을 찍어드렸다


잠시나마 마스크를 벗고 가족 모두 환하게 웃는 사진을 보니 기분이 좋긴 하였다. 사진은 봄 분위기에 맞게 잘 나왔고 동생도 어머니도 아름다워 보였다. 근데 나보다 아버지가 더 사진을 맘에 들어하셨다. 점심 식사하는 중에도, 집에 와서도, 아버지는 "내가 사준 옷이 엄마한테 잘 맞네" 하며 사진을 흡족하게 보셨다.



나는 엄마에게는 '엄마'라고 부르는 게 익숙하고 아빠에게는 '아버지'라고 부르는 게 익숙하다. 아들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나이가 들다 보니 어릴 적처럼 '아빠'라는 말이 잘 나오지는 않는다


어릴 적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면, 저녁 늦게 옛날 통닭을 가져오던 모습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퇴근시간쯤 맞춰 초인종이 올리면 나는 아버지 오른손에 오늘은 뭘 들고 왔을지 기대하며 마중 나가고는 했다. 그리고 그 모습에 아버지도 흡족해하며 검은 봉지에서 맛난 걸 꺼내 주셨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조금씩 아버지와 부딪치는 일들이 생겨났다. 동생을 울게 하거나, 집에 물건을 부시면 아버지는 내게 매를 드는 시늉을 하며 크게 야단을 치고는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무서운 얼굴을 하고 야단을 치셨지만, 성만 내시고 내 몸에 회초리를 드시지는 않으셨던 거 같다.


그리고 내가 초등학교 5년이 되던 해 아버지는 지병이 있던 고혈압으로 인해 수술을 하시고 오랜 병원생활을 하게 되셨다. 나와 동생은 자연스레 할머니 밑에서 자라게 되었고 아버지와 얘기하고 함께했던 시간들이 학교의 친구 컴퓨터 속 캐릭터가 대체하였다


시간이 지나 중학교를 다닐 무렵, 아버지는 퇴원하셨지만 나와의 거리는 멀어진 후였다. 아버지는 힘들게 일하는 엄마에게도 툭툭 화를 내셨고, 나는 그 모습이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마찬가지로 내게도 그 잔소리는 심해지셨고 나는 아버지와 담을 쌓고 지내듯이 말을 안 하며 지냈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챙겨주셨다. 대학 입시 때도 아버지는 내 결과에 대해 직접적으로 말하지는 않으셨지만, 친척들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내 아들이 얼마나 열심히 공부했고, 전공할 학과가 얼마나 유망한 학과인지 자랑스럽게 말해주셨다.


물론 대학에 와서도 아버지와는 다투는 일은 많았다. 다툴 때면 빨리 사회에 나와 독립하고 싶기도, 훌쩍 결혼하여 조금 떨어져 살고 싶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시간을 돌이켜 보면 그런 아버지의 잔소리 덕분에, 남들보다 조금 일찍 성숙해졌고, 사회에 필요한 사람으로서 적응할 수 있었다.


내가 듣기 싫은 소리는 아버지도 원하지 않았던 말이라는 걸 나이가 들다 보니 조금씩 느끼게 되었다.



월급을 부모님께 타고 좋은 옷이나 근사한 식사를 대접하려고 하면, 아버지는 '네가 그런 돈이 어딨냐며, 아웃렛 가면 싸게 살 수 있는 거 비싸게 사지 마' 하며 핀잔을 주셨다. 그러면 난 또 거기에 지기 싫어 싸움을 하였고, 고리타분한 아버지와는 안 맞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돌렸다.


오늘 가족사진을 보며 흡족해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니, 아버지가 원했던 건 근사한 식사가 아니라 우리 가족이 환하게 웃고 있는 가족사진 한 장이었던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가족사진 한 장이 별게 아닐 수 있지만, 그 속에는 가장의 무게를 견디고 이겨낸 아버지의 인생이 담겨있었기 때문이다


 KB금융그룹이 만든 '하늘 같은 든든함, 아버지'라는 영상이 있다. 아들이 아버지가 되고 나서 아버지에 대한 여러 감정들을 생각하는 영상이다. 수십 번을 넘게 봤지만 지금도 울고 싶을 때는 이 영상을 본다


특히 영상 속에서 아버지가 아들에게 '못해준 게 많아서 미안하다'라는 말이 가슴을 아려오게 만든다. 자식에게 모든 걸 다 주시고도 그 힘든 일을 해내시고도 '미안하다'라는 말에 괜스레 코끝이 찡해진다. 그러면서도 아버지께 표현하는 게 쉽지 않고 또 돌아가면 맘과 다른 말이 나오기도 한다


그럼에도 점차 어깨가 처지시고 주름이 많아지는 아버지에게 조금은 더 맘을 표현해야겠다고 생각한다. 


내게 어린 시절 사진이 값진 거처럼, 아버지를 위한 가족사진도 충분히 값진 선물이 될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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