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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쓸 만한 조과장 Mar 22. 2020

엄마가 사준 마스크를 끼고

그 속에 전해지는 엄마의 온도

"아들 이거 끼고 가"


"아니 엄마 마스크 어디서 났어"


"요기 앞에 약국 있잖아, 어제가 마스크 살 수 있는 날이라 2개 샀어"


"아이 내가 준 것도 있는데 뭐하러 나갔어. 나는 마스크 있어 엄마 써"


"아니야 너 써, 네가 준 것도 남아 있어 네가 써 알았지"


계속된 실랑이 끝에 나는 엄마가 준 마스크를 마지못해 받다.  회사에서 마스크를 넉넉하게 받아 가족에게도 마스크를 일부 나눠주었다. 엄마는 이 마스크를 받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약 긴 줄을 서 있었을 이다. 어제 뜯은 마스크를 접고 엄마가 준 마스크를 펼치며 마를 생각해보았다




우리 엄마는 참 정이 많다. 엘리베이터에서 처음 보는 사람도 장바구니에 산 걸 보며 말을 거는 능력이 있다. 그래서 어릴 적 엄마랑 마트에 장 보러 갈 때면 '아이고 네가 그 아들내미구나' 하며 아주머니들이 반가워하셨다. 우리 엄마는 그럼 말없이 호호 웃으며 손사래를 치며 자리를 떠나고는 했다.


엄마는 그렇다고 외향적인 편은 아니다. 모임을 가지기도 귀찮아하고 나서기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그래서 주말에는 조용히 TV를 보고 가끔 글을 쓰기도 한다. 가끔 내게 최근에 생각나서 쓴 시라며 보내주는데 나보다 더 20대 스러운 감성을 지니신 거 같다고 느낀다. 최근에는 취미로 주민센터에서 하는 노래 배우기를 다니셨는데, 한동안 코로나로 가지 못하여 많이 아쉬워했다.


이런 엄마도 가끔 밉고 속상할 때가 있다. 고모 엄마와 시댁에 대해 왈가왈부해도 듣고만 있을 때다. 나는 그런 고모의 모습에 화가 나 소리치면, 엄마는 나를 불러, 고모가 속상할 수 있으니 나갈 때 배웅 가라고 했다. 엄마가 속상한고 아픈 건 왜 티를 안내는 거냐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는 상황에 모는 게 미워졌다


 엄마가 내게 제일 많이 물어보는 질문은 '아들 밥은 먹었어'이다. 내가 20살 때 엄마는 장을 보러 가는 길에 길가에서 오는 차와 부딪치는 사고를 당했다. 소식을 듣고 병원에 달려간 엄마의 얼굴에는 붕대 위에 선한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엄마는 머리를 다쳐 혼수상태에 있었다. 나와 동생은 일주일간 엄마가 깨어나길 기다려야 했다. 일주일 후, 의사는 엄마가 큰 사고로 잠시 사람을 못 알아볼 수 도 있으니 놀라지 말고 차근차근 설명하라고 했다.


"엄마 나 누군지 알아보겠어?"


"응 알아보지 우리 아들"


"엄마 다행이야 몸은 좀 어때"


"응 괜찮아. 너는 밥은 먹었고?"


엄마는 중환자실에서 생사를 오가는 중에도 처음 깨어나서 내게 한말이 '밥은 먹었어'였다.  지금도 그날을 생각하면 눈시울이 붉어지고는 한다. 그 이후에도 엄마는 매일 내가 퇴근할 시간쯤이면 '저녁은 먹고 와' '따뜻한 거 챙겨 먹어' 하며 카톡을 남긴다. 매일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마는 내 저녁을 챙겨주었다



 

출근길 이른 시간부터 약국 앞에 줄을 길게 선 어르신들의 모습이 보인다. 길가에  서있는 어르신들도 누군가에 가족이자 사랑하는 자식을 위해 기다리는 부모님의 모습일 수 도 있다고 느꼈다 


주변을 돌아볼 여유도, 내 몸 하나 챙기기도 버거운 현실이다. 코로나로 사회적거리두기 캠페인이 한창인 요즘, 사람들과 같이 식사하고 얼굴 보기는 더욱 어려워다. 가족 간 전염 사례도 많다 보니 가족 간에도 알게 모르게 거리를 두게 된다


하지만 이런 와중에도 나는 왠지 가족에 대한 마음이 애틋해다. 거리를 멀어졌지만 온정은 마스크를 통해 더 따뜻하게 전달된다. 아직 쓰지 않은 마스크는 남아있지만 이번 주는 왠지 엄마와 아버지를 위해 마스크를 하나씩 사드리고 싶다.


 어쩌면 코로나 19가 너무나 익숙해서 스쳐 지냈던 가족의 사랑을 일깨워주는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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