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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쓸 만한 조과장 Mar 07. 2020

개지 않은 이불만이 내 공허함을 알아주지만

공허함을 홀로 마주하는 법

오래간만에 동기 세명과 저녁에 술자리를 했다. 나는 일이 많아 늦게 참석하였고, 이미 있던 동기들은 술을 5~6병 먹은 후라 취기가 많이 올라와 있었다. 술자리를 마치고 막차시간이 되어  동기와 함께 집에 가는 길 그녀와 이런저런 사는 얘기들을 나누었다.


"ㅇㅇ아 사는 게 너무 공허하다"


"그러니까 술을 좀 그만 먹어"


"알아, 술을 먹어도 채워지지 않는 거, 근데 너무 공허해"


"어떤 게 공허한데?"


" 그냥 사는 게 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의미 있는지도 모르겠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도 모르겠어.."


술에 취해 조금 더 격하게 말하긴 했지만, 그녀의 말이 장난스럽게 받아 드려지지는 않았다. 공허하다는 그 말에 나는 어떠한 적절한 말을 떠올리지 못한 체 헤어졌다. 홀로 집으로 발걸음을 향하는 길, 나도 괜스레 마음이 공허해지는 거 같은 밤이었다.


# 어김없이 공허함이 찾아온다


공허함이란 무엇일까. 가끔 불쑥 찾아오기도 하고, 어김없이 찾아와 괴롭히며 놓아주지 않는 경우도 있다. 심리적으로 공허함은 '삶의 의미를 느끼지 못하고 맘이 텅 빈 상태(emptiness)를 말한다. 보통 어떤 일로 외로움, 허탈함, 또는 허무한 감정을 느끼면 습관적으로 '공허하다'라는 표현을 쓰곤 한다


나 또한 공허함이 불쑥 찾아와 괴롭히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열심히 했는데 결과가 안 좋거나 또는 소중한 사람과 헤어졌을 때  세상에 혼자가 된 거 마냥 공허함이 밀려왔다. 이중에서도 가장 괴로울 때는 공허한 마음으로 인해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다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 때이다


 감정 주체 못 하면 순간적으로 충동적인 행동들을 하게 된다. 술을 주량 이상으로 마시거나, 속이 안 좋을 정도로 폭식을 하거나, 그동안 꾸준히 해왔던 일들을 엎어버리는  나를 필요 이상으로 망가트린다. 물론 잠깐의 일탈로 인해 나아지면 괜찮지만, 저렇게 일탈을 하고 나면 공허한 마음은 더 깊어질 때가 많다


# 모두 공허함을 품고 산다


나는 공허한 감정을 잘 공유하지 않으려고 했다. 특히 고등학교를 남고로 가서 그런지, 다들 털털하게 잘 지내는 거처럼 보이는데 나 혼자 우울해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다 대학에 올라와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과 속 얘기를 나누면서, 많은 사람들이 나처럼 공허함을 느끼고 지낸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하지만 사회에 나보니 누군가에게 공허한 마음을 털어놓는 게 쉽지 않다고 느낀다. 아무리 친했던 사람이라도, 이제 각자가 추구하는 방향과 생각들이 다르다 보니 온전히 서로를 이해해주기 어려워졌다. 내가 사회에서 이런저런 경험과 시련들이 쌓인 만큼, 모두가 각자 상황에서 자신만의 짐을 짊어지며 살고 있었다.


한 번은 친한 친구에게 회사에서 말 못 할 어려운 점들을 털어놨는데, 그 친구는 오히려 내게 배부른 소리라며 다니는 기업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서로가 다른 황을 겪고 있으니, 이렇게 생각하는 건 당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다만 내 맘을 주변 사람들에게 공감받는 게 이전만큼 쉽지 않다는 건 느끼게 되었다.



# 공허함을 홀로 마주하는 법


내가 공허할 때 말하지 않아도 안아주고 묵묵하게 어깨를 빌려줄 사람이 있다면 좋겠지만, 나 혼자 이겨내야 할 경우들은 자주 발생다. 한때는 캔맥주 하나에 유튜브를 보며 공허함을 달래기도 했지만 날이 갈수록 별 효과가 없는 거 같다. 요즘 내가 종종 공허함을 잊기 위해 하는 행동을 간단하게 소개한다.


하나는 내가 그동안 잘해온 일을 보는 것이다. 보통 공허한 감정이 들면 현실에 대한 분노와 자괴감으로 이어진다. 이때 그동안 내가 어떤 걸 이뤄왔고 무엇을 잘해왔는지 보면 무너져 내리는 걸 막아낼 수 있다. 거창하거나 남들에 비해 특별한 게 필요한 게 아니다. 무언가를 꾸준히 했고, 나에게 의미 있었던 일이면 된다.


나의 경우, 눈에 잘 띄는 노트북이나 다이어리나 혹은 스마트폰에 내가 이뤄왔던 것들을 기록해 놓는다. 회사 다니며 했던 노무사 공부시간,  한 해 동안 읽은 책 목록, 그리고 다짐했던 것을 이룬 날들을 적어놓았다. 별거 아니지만 꾸준히 해온 거를 눈으로 보면 성장하고 있는 나를 통해 맘이 채워지기도 한다.


두 번째는 세상과 소통하려고 것이다. 세상에는 나 혼자가 아니다. 하지만 공허함이 찾아들고 가족, 친구, 연인이 내 맘을 이해 못하거나 떠나면 혼자라는 기분이 든다. 그럴 경우 내가 좋아하는 일을 통해 주변과 소통하거나, 내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곳에 내 맘을 적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된다.


나의 경우, 독서모임과 유튜브 채널을 자주 이용했다. 책에 대해 모임원들과 얘기하다 보면 돈, 업무, 결혼 등 잠시 일상의 무게를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다. 또한 굳이 멀리 가지 않아도 유튜브를 통해 나와 비슷한 사람들과 댓글로 소통하다 보니 뜻밖의 말로 위로를 얻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 개지 않은 이불만이 내 공허함을 알아주지만


공허함이라는 감정을 이겨내는 건 쉽지 않다. 이게 어른이 되는 과정인가 생각도 들고, 앞으로 나이가 들면 공허함이라는 감정도 아려서 무뎌졌으면 좋겠다


공허한 마음에 잠을 뒤척이고 일어나면, 오직 개지 않은 이불만이 나를 감싸고 있다. 어쩌면 내 공허함은 밤잠을 설치며, 이마까지 덮고 흐느끼며 울던 내 이불만이 유일하게 알아줄 거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렇지만 공허함이 몰려온다고 해서, 더이상 세상을 비난하거나 나를 더 자책하지는 않으려고 한다. 나는 계속 성장하고 있고 세상나 혼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공허함에 잠시 빠지더라도 훌훌털고 일상으로 돌아가길 바란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격려의 말도 전했으면 싶다


"지금까지 잘해왔다고, 그리고 앞으로도 잘 해낼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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