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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쓸 만한 조과장 May 05. 2020

우리 불행배틀은 하지 말자

비정규직과 취준생, 그리고 직장인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그러므로 나는 멀리 보려고 노력한다.
                                                                                                            - 찰리 채플린-


# 계약직 채용면접 중


지난주에 내가 다니는 기관에 계약직 채용면접이 있었다. 수많은 지원자들이 긴장된 모습으로 면접 대기장소에 도착했고, 나는 그들의 체온을 점검한 후 수험 대기표를 건네주었다. 면접장 대기장소에는 종이 넘기는 소리 외에는 적막함만 흘렀다.


그러다 지원자 중 낯익은 얼굴 한 명이 들어왔다. 어제까지 타 부서에서 계약직으로 근무하고 있던 ㅇㅇ사원이었다. 다른 직원을 통해 들어보니 올해 정규직 공채 서류를 넣었는데 떨어졌다고 한다. 회사에서는 일도 똑 부러지게 잘하기로 소문이 자자한 직원이기에 서류전형 결과가 더욱 안타깝게 다가왔다.


ㅇㅇ사원이 다시 계약직 채용면접 자리에 온 기분은 차마 내가 짐작할 수 없는 기분이라 생각했다. 나는 그녀에게 무언가 위로의 말을 건네야 할 거 같은 의무감이 있었지만 말이 입 밖으로 꺼내지지가 않았다. 면접 대기 중에도, 면접이 끝나고 그녀가 자리를 떠나는 중에도 나는 어떤 말도 할 수없었다.


그러다 문뜩 그런 생각들을 떨쳐버리기로 했다. 내가 얼마나 저 친구의 마음을 안다고 얘기할 수 있을까. 어쭙잖은 위로는 그 사람을 위한 게 아닌 내 마음의 짐을 덜기 위해 말하는 거라 생각했다.  그날 누군가는 생일이어서 동료들의 축하 속에 생일 케이크를 불었지만, 누군가는 정규직이 아니라서 다시 자신의 자리를 두고 면접을 보고 왔다. 나는 한 공간에서 양극화된 상황을 경험하며 찝찝한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취준생 멘토링 중


나는 지난달부터 코멘토에서 취준생 대상 직무 멘토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 일요일에는 몇 명의 취준생을 대상으로 공공기관 실무업무에 대한 온라인 강의를 진행했다. 첫 강의라는 설렘과 긴장감도 있었지만 계약직 채용면접 직후라 그런지 멘토로서 더 책임감이 느껴졌다.


실제 강의를 진행하며 Q&A를 받다 보니, 취준생들의 걱정과 고민들이 더 와 닿았다. "인턴을 하려고 해도 실무경험이 필요해요", "요즘에는 알바 자리도 구하기 어려운데 어떻게 해야 하죠" 질문들을 받다 보면 말문이 턱 막히기도 했다. 준비했던 답변들은 있지만 질문들을 들으니 마음이 무거워졌다


나의 경험에도 취업시장 힘들다. 어딜 가도 경쟁률은 100대 1이 넘었고, 인턴 구하기가 웬만한 곳 취업하는 거만큼이나 어려웠다. 그렇다고 내 경험을 지식 삼아 취준생들에게 이렇게 하면 된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시간이 지나며 취업시장은 계속 치열해졌고, 한 명 한 명이 느끼는 치열함은 나와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대신 강의 마지막쯤에 이런 말을 전했다.  

"여러분이 취업으로 힘든 상황이 있다면, 너무 좌절하거나 스스로 자책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취업을 해야 한다면 나와 타협하거나 포기하지 않으셨으면 해요. 솔직히 이런 거 물어봐도 되나 싶은 것도 제게 물어보세요. 제가 아는 선에서 보안에 문제 되는 않는 선에서 다 알려드릴 테니 저를 통해 다 뽑아가신다고 생각하세요."

내가 할 수 있는 건 내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거라 생각했다. 어쭙잖은 위로와 격려 대신 도움이 될만한 정보는 알려주고, 궁금한 거 있으면 찾아봐주고, 그래서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면 나도 기꺼이 시간을 내겠다고 말이다. 그게 그들의 고통과 걱정을 조금 덜어주는 내 역할이라고 생각을 했다.


# 찰리채플린의 한마디


계약직 채용면접, 취준생 멘토링 등 최근 일련의 사건들을 겪고 나서 생각난 문장이 하나 있다 찰리채플린이 말한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라는 문장이었다. 다른 사람의 인생을 멀리서보면 다들 잘 사는 거처럼 보이지만,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다 하나씩 인생의 고통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계약직을 걸고 면접 보러 온 그녀와, 알바 자리도 구하기 힘들다고 말한 취준생을 보며, 내가 느낀 감정은 정규직으로서 안도감은 아닌, 직장인으로서 나의 고통이었다. 직장인이 되었지만,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일상, 팀원과의 갈등, 쌓여가는 나이 등 내게는 내 앞에 놓인 문제가 가장 큰 고민이기 때문이다.


이는 내가 누군가보다 낫다고 해서 위로되는 것도 아니고, 상대방의 불행을 통해 나를 위로해서도 안 되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찰리채플린이 그 뒤에 이은 말처럼, <그러므로 나는 멀리 보려고 노력한다>라는 말을 내 방식대로 곱씹어봤다


그 방식은 계약직을 걸고 다시 온 그녀에게 회사 동료로서 조금 더 성심성의껏 대하는 것이고, 내 도움이 필요한 취준생을 위해서는 멘토로서 최선을 다하 것이. 내가 느꼈던 찝찝함과 책임감을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몰두하는데 쓰려고 한다. 그런 노력이 내가 느끼는 고통도 승화하는 방법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였다


# 불행 배틀은 하지 말자


그럼에도 우리는 상대방보다 나은 내모습을 보며 위안을 얻을때가 있다. 개인적으로 안좋다고 생각하는 방향이 바로'불행배틀'. 불행배틀은 서로 누가 누가 더 힘든지 내기하듯이 얘기하는 것이다. 불행 배틀은 보통 아래와 같은 방식으로 이어진다.


A: 나 어제 ㅇㅇ팀장님 때문에 너무 힘들었어..

B: 아 그랬구나.. 근데  우리 팀장은 더 심한 거 같아 왜 나면..

A: 아 그래 너도 힘들었겠다. 근데 내 팀장님은 그게 아니라 이게 더 심해..

B: 그렇겠지.. 그래도 너네는 팀 분위기 좋잖아 우리 팀은..


힘든 얘기 하다 보면 이런 대화가 오고 갈 수 있다. 대신 한 명이 조금 위트 있게 웃고 끝내면 좋은데, 계속 서로 누가 더 불행한지 얘기하다 보면 끝이 없다. 오히려 먼저 말한 사람도 스트레스가 쌓여 말을 괜히 꺼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불행 배틀의 승자는 없다. 말한 사람도 상대방도 더 우울해질 뿐이다.


불행 배틀을 하지 않으려면 마음 체력이 필요하다 . 나혼자 힘든것이 아니라 대기업에 다니는 친구도, 부모님 잘 만나 놀고 먹는 주변사람도, 나보다 잘 나보이는 직장동료도 가까이서 보면 각자의 힘든 게 있겠지라고 마음의 여유를 가져야 한. 나는 요즘 인스타에 소소하게 직장인 공감할만한 짧은 글들을 올린다.


이제와서 포기하지마
알고있어 나와의싸움
그럼에도 잘해왔잖아
힘을내봐 거의다왔어
그래그래 넌할수있어

           - 휴 일어났다-

   

위 시는 월요일 아침 출근하기 싫지만 그래도 출근하기 위해 일어나야 하는 마음을 표현한 시이다. 따분하고 지루하게 보일 수 있는 월요일 아침을 조금은 피식할 수 있게 제목에 반전을 넣어서 써보았다.


힘든 상황 승화하는 법은 누군가와 불행을 비교 하는 것이 아니라, 소소한 얘기로 내 고민과 슬픔을 나누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그 속에는 힘든얘기도 있겠지만 마무리는 웃음이 되어야 한다


각자 인생에 비극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 우리 불행배틀은 그만하고 다정한 농담으로 대화를 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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