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쓸 만한 조과장 May 16. 2020

쓸쓸함은 기록되어야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많은 날은 쓸쓸하지 않았던 날들이니까

쓸쓸함은 기록되어야 한다고, 기록하지 않은 날이 기록한 날보다는 훨씬 많고, 아이러니하게도 그렇다면 그 많은 날은 쓸쓸하지 않았던 날들이니까.
        - 밤은 이야기하기 좋은 시간이니까요 이도우-


쓸쓸함은 무엇일까. 생각해보면 나는 일상에서 '쓸쓸함'이라는 표현을 잘 안 쓰는 거 같다. 외로움과 씁쓸함 그 중간 어딘가에 쓸쓸함이라는 단어가 존재하는 거 같은데,  왠지 '외롭다'와 '씁쓸하다'라는 표현이 더 친숙하다. 그래서 쓸쓸함에 대해 한번 얘기해볼까 한다. 나와 계속 함께 했지만 기록하지 않았던 나날들을 기록하고 싶다.


그 쓸쓸함은 로즈데이에 즐거워하는 커플을 보며 홀로 핸드폰을 보다가 닫은 하루부터, 지금까지 나와 함께하는 외할머니와의 통화, 어머니가 끓여준 녹차가 담긴 보온병, 그리고 홀로 마신 소주와 짬뽕국물까지 내 인생 곳곳에 있는 순간들이었다.


#. 외할머니의 목소리


나의 외할머니는 올해로 나이가 86세이다. 외할머니는 커피를 직접 내려마시기를 좋아하고, 가만히 있는걸 안 좋아하셔서 우리 집에 냄비받침이나 바구니를 만들어 보내주시고는 했다. 하지만 세월은 속일 수 없는지 최근에는 연달아 2번의 큰 수술을 받으셨다. 외삼촌은 외할머니 수술이 잘 마무리되었다고는 했지만 나이가 있어 거동이 어려워지셨다고 전했다. 그리고는 바쁘겠지만 외할머니에게 안부전화라도 한통 하라고 했다.


외할머니를 생각하면 어린 시절 내게 건넨 따뜻한 말들이 떠오른다. 돈 많이 벌어서 좋은 곳 데려다 드릴게요 하면 '괜찮다 대신 행복하게 살아야 돼'라고 대답해주신 분이다. 이 말 외에도 내가 힘들 때 해주신 좋은 말들이 많았지만 막상 통화를 하려 지난 말들이 떠오르지 않았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기억났던 말들이었다. 여자 친구와 부모님을 대하는 마음에 대해 좋은 말을 전해주셨는데 그 말들을 머릿속에서 지운 거 같았다.


떠오르지 않는 생각을 뒤로하고 미안한 마음으로 외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 뒤편에는 'ㅇㅇ이니' 하며 반갑게 맞이하는 목소리와 그럼에도 말을 힘겹게 이어가는 외할머니의 얼굴이 그려졌다. 나는 더 힘껏 명량한 목소리로 안부인사를 전하고 길지 않은 가족의 안부만 확인한 후 통화를 끊었다. 삶과 죽음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지만, 외할머니를 상실하기 전 내가 먼저 외할머니를 머릿속에서 지워버린 거 같아 코끝이 찡해졌다.


#. 짬뽕에 소주 한잔


'조 대리님, 나이 들면 혼자 술 먹을 날이 많을 거예요. 집 주변에 괜찮은 술집 하나 찾아두세요' 작년 겨울 부산 서면에 있던 Bar에서 함께 칵테일을 마신 연구원님이 술자리 말미에 내게 전한 말이다. 연구원님은 나보다 4살 정도 많은 형이다. 그는 평소에 홀로 술을 마시는 걸 즐긴다고 하였다. 이유는 나이가 들다 보니 이제는 친구들과도 만나기도 쉽지 않고, 나 홀로 술로 견뎌내야 하는 얘기들이 생겼기 때문이라고 했다.


올해 새로운 팀으로 발령을 받고 나에게도 그런 날이 생겼다. 안전담당을 맡아 코로나로 정신없는 한주를 보내며 처리해야 할 본연의 업무들로 회사생활에 지칠 때였다. 회사에서는 팀장님과 타 팀 직원들이 격려와 칭찬을 아낌없이 보내주었지만, 내 눈에는 그런 나와 상황을 마냥 달갑게 기뻐해주지 않는 사람들도 보였다. 그들의 마음도 이해는 갔다. 회사라는 곳은 평가받고, 그들이 원하지 않더라도 경쟁으로 모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날은 핸드폰을 뒤적이다가, 친구도, 선배도, 회사 동료도 그 누구랑도 술을 먹고 싶지 않았다. 누구를 불러 내 얘기를 털어놓기도 듣기도 싫었다. 그래서 홀로 조금 낡은 듯한 중식집에 들어가 짬뽕 하나와 소주 하나를 시켰다. 넓은 식당에 드문드문 홀로 소주를 마시는 사람들이 보였다. 홀로 말없이 짬뽕 한 젓가락에 소주를 마셨다. 한잔, 두 잔, 그리고 마지막 잔까지 마셨다. 그렇게 부산에서 연구원이 전했던 그 말을 돌아봤다.

 

#. 보온병과 포스트잇


올해 초 노무사 시험을 공부할 때였다. 후회 없는 20대를 보내기 위해 무얼 할까 고민하였을 때 제일 먼저 노무사 시험이 떠올랐다. 주변 사람들에게 노무사를 준비한다고 말하니 회사 다니며 따는 건 다들 무리라고 했다. 그래서 난 더 오기로 하고 싶었다. 공부계획을 세우고 최소 한주에 20시간씩 공부를 이어갔다. 문제도 술술 풀렸다. 이대로만 하면 1차 시험은 거뜬하게 통과할 거 같았다. 붙으면 부모님도 좋아하시겠지 생각했다.


그러다가 점차 계획에 차질이 생기기 시작했다. 야근하는 날이 많아지고, 회사에서도 자리를 위해 어쩔 수 없이 회식을 가야 하는 날도 생겼다. 그렇게 하루씩 공부계획을 지키지 못하는 날들이 생기자 계획은 밀리게 되었다. 그런 나날들이 쌓이니 점점 공부하는 게 짜증 나고 지쳤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엄마가 내게 밥 먹었냐고 살갑게 물어도 신경질적으로 답했다. 공부해야 된다고 방문을 닫았고, 엄마는 방해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하루는 일이 많아 11시가 넘어 집에 도착했다. 공부는 포기한냥 씻고 자려고 했다. 집안은 다들 자는지 고요했고 나를 기다려주는 사람은 없었다. 방안에 들어가니 책상에 엄마가 남긴 보온병과 포스트잇이 하나 놓여있었다. 포스트잇에는 '아들 쉬엄쉬엄 공부해 녹차 끓여놨으니 잘 마셔'라는 텍스트가 적혀 있었다. 보온병에 담긴 녹차를 덜어 마시니 따뜻했다. 엄마는 내게 항상 보온병처럼 따뜻했고 나는 그날도 서툰 아들이었다.


#. 오늘은 로즈데이


여자 친구와 헤어진 지 6개월가량 지났다. 주변에서 연애 안 하냐고 좋은 사람 소개해 준다고 하면 '그냥 아직은 별생각 없네요. 혼자 지내는 것도 좀 필요할 거 같아요 '라고 답했다. 그래도 꼬치꼬치 묻는 사람들이 있으면 '요즘에 이것저것 하느라 바쁘고 아직 이른 거 같아요'라고 말했다. 실제로 매주 브런치와 인스타그램에 글을 쓰고, 취준생을 위해 멘토링 하고, 금융 공부도 하며 홀로 바쁘게 시간을 보내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렇게 홀로 몇 개월을 보내다 보니 종종 사랑을 하는 내 모습이 그리워졌다. 주말이 되면 손잡고 놀러 가고 싶고, 재밌는 영화가 나오면 함께 팝콘 하나 들고 보러 가고 싶었다. 퇴근 후 함께 밤거리를 걸으며 오늘 짜증 났던 일을 털어놓을 사람이 있었으면 싶었다. 눈에 들어오는 사람도 있었고, 맘이 왔다 갔기도 했지만 금세 생각을 버리기로 했다. 아직은 내가 새로운 사랑을 할 준비가 안된 거 같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5.14일 로즈데이가 되니 회사 직원 중 꽃을 사는 사람들이 생겼다. 평소에는 무뚝뚝하던 차장님도 사내부부인 ㅇ팀장님에게 줄 꽃이라며 꽃을 사 오셨다. 거리에 나오니 몇몇 꽃을 든 젊은 커플들이 보였다. 그들 중에는 문득 사랑을 하던 내 얼굴이 스쳐 보이는 남자도 있었다. 나는 허한 맘에 잠시 연락처를 뒤적거렸지만 다시 주머니 속에 핸드폰을 넣었다. 혼자 지내는 게 필요할 거 같다는 내 결정이 왠지 차가운 밤공기 같았다.



쓸쓸함에 대해 글을 쓰다 보니,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그 순간들이 쓸쓸하지 않았다고 느낀다.  할머니의 목소리도, 홀로 마신 소주도, 따뜻한 녹차도, 그리고 로즈데이 날 차가운 밤공기도 쓸쓸하다기보다 소중했던 기억이 있었기에 생긴 기억 파편인 거 같다. 그 순간들을 다시 기억하며 글로 채워 넣으니 마냥 쓸쓸하지만은 않았다.


그래서 쓸쓸함도 기록해야 되는 거 같다.  밤하늘에 텅 빈 하늘보다는 얕게라도 빛나는 별이 있는 밤하늘이 좀 더 아름다운 거처럼, 나의 쓸쓸함도 흩날리는 거보다 기록하는 게 좋은 거 같다. 


여러분쓸쓸함은 어디에 기록되고 있나요?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 불행배틀은 하지 말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