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신입직원들이 회사에 첫 출근을 하였다. 나는 신입직원 교육담당자로서 이들에게 2주간의 교육일정을 안내하고 오리엔테이션 하는 시간을 가졌다. 첫 출근날이기에 딱딱한 교육주제보다는 가볍게 작년도 입사 직원과 만나 감정카드로 마음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그렇게 20명 정도가 모여 대화를 나누던 중 한 신입직원이 질문을 했다.
"회사생활을 하시면서 우리 기관의 가장 큰 장점은 어떤 거라고 생각하세요?"
저 질문을 듣자 회의실에 한순간 정적이 흘렀다. 그러다 그 정적에 웃음이 빵 터졌고, 한 사람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사람들이 좋아요"
그러자 전년도 입사자들도 그 말에 동의를 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들이 좋다" 나도 이 말에 공감을 하는 편이다. 4년째 이 회사에 다니면서 직장동료들과 트러블들은 있었지만, 그래도 직장 내 인간관계 때문에 그만둘 정도로 힘들일은 없었다. 간부들도, 선배들도 함께 회사생활을 하기에는 괜찮은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나는 사람들이 좋다는 말을 속으로 되물으며 좋은 사람들이지만 동료는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동료란 함께 직장을 다니는 사람들을 뜻하기도 하지만 내게는 나와 마음이 맞고 함께 회사생활을 해내갈 사람을 의미했다. 한 후배의 말을 빌려서 표현하자면, 내가 모빌이라면 왼쪽으로 쓰러질 거 같을 때 함께 그 방향으로 움직여주는 걸 나는 동료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회사라는 조직은 좋은 사람들을 모아놓고 내가 원하는 동료로는 만들어 주지 않다.
구조적인 문제 중 하나가 성과연봉제라고 생각을 했다. 성과연봉제는 성과를 잘 낸 직원에게 상대적으로 더 많은 성과급여를 주는 것이다. 단순히 금전적인 차이뿐 아니라 부서와 개개인별로 성과에 따른 차등을 두어 경쟁을 부 축이는 것이 본질적인 문제가 아닌가 싶다. 그래서 표면적으로는 기관의 비전과 목표를 통해 사업을 운영하지만, 개인은 각자의 성과를 위해 치졸하게 굴기도 한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3년 전 내게 우리 회사의 장점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사람들이 좋다고 말하겠지만, 이런저런 사건들을 겪다 보니 지금은 그 말이 쉽게 입에서 떨어지지 않는 거 같다.
#2 직장 사람들과 독서모임 중
신입직원과의 첫 만남이 있는 날 저녁, 회사 사람들과 첫 독서모임을 하게 되었다. 작년부터 외부에서 독서모임을 나가고는 있었지만, 직장 사람들과 독서모임을 가지게 된 건 처음이었다. 신입직원 교육과 브런치 작가들의 인문학 교육이 있었기에 상당히 바쁜 날이었지만, 회사에서의 첫 독서모임을 빠지고 싶지는 않았다.
독서모임에는 팀장님부터 작년도에 입사한 신입직원까지 총 7명이 모였다. 우리는 같은 책을 한 달여간 읽고 회사 근처에 있는 카페에 모였다. 우리의 어색한 만남을 깨기 위해 이 모임의 주최자인 허과장님이 첫 말을 꺼냈다
"여러분 바쁘신 와중에 와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회사생활에서 직장동료들과 이렇게 함께 책으로 대화하는 시간을 한번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저는 이 책의 저자처럼 생각이 참 많은데요.(생략)
우리가 함께 읽은 책은 마스다 미리의 <나답게 살고 있습니다>라는 책이었다. 만화이다 보니 딱딱하지도 않았고, 또 중간중간 주인공이 느낀 말들이 가슴에 콕 박혀 재밌게 읽었다. 우리는 각자 좋아하는 문장을 엽서에 적어 테이블에 놓았고, 다시 그 엽서들을 뒤섞은 후 랜덤으로 엽서를 골라 읽어주기를 하였다. 읽는 사람은 엽서에 적힌 문장을 보고 자신의 생각을 말하며 누가 어떤 마음으로 썼는지를 추측했다.
<마스다미리-나답게 살고 있습니다>
같은 책이었지만 서로가 좋다고 느끼는 문장들을 제각각이었다. 서로 엽서를 읽어주다 보니, 재밌는 문장과 스토리에 웃기기도 하였고, 슬픈 얘기들을 하며 눈가가 촉촉해지기도 하였다. 어쩌면 이렇게 각기 다른 사람들이 만나 속 깊은 얘기를 나눈 건 모두가 처음이었던 거 같았다.
그러다가 이 모임에 주최자인 허과장님에 대한 칭찬들이 오고 갔다. 책보다는 허과장님이 좋아서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모임을 구성한 것도, 서로 눈물을 쏙 빼놓을 정도로 프로그램을짠 것도 허과장님의 생각이었다. 다만 여러 좋아하는 과장님에게도 회사생활에 고충들은 있었다.
사람은 이렇게 계속 자기 자신과 얘기하며 살고 있다. 이는 친구 한 명을 데리고 태어났다는 것이며, 그 친구는 죽을 때까지 함께 있어줍니다 <34p~35p>
허과장님은 위 문장에 대해 말하며 자신도 내면과의 대화를 많이 한다고 했다. 이렇게 회사생활을 하다 보니 내가 뭔가를 하자고 했을 때 온전한 마음으로 함께 해주는 동료는 찾기가 어려웠다고 했다. 허과장님의 말을 들으며 모두가 공감을 표했고, 나도 오전에 느꼈던 생각이 혼자만의 생각은 아니었다는 걸 느끼게 됐다.
#3 좋은 동료란 무엇일까
23년째 연재 중인 만화가 있다. 해적왕이 되고 싶었던 루피와 그 동료들의 모험담을 담은 <원피스>라는 만화이다. 지금 원피스는 이전만큼의 감동도 없고 스토리는 계속 산으로 간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장수하고 있는 명작 중에 하나이다. 그리고 원피스 만큼 동료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만화도 없는 거 같다.
검객 조로, 소매치기 나미, 요리사 상디, 발명가 우섭 등 서로 각기 다른 상황과 성향을 가진 캐릭터들이 루피와 함께 모험을 떠나기로 결정하는 데는 루피라는 캐릭터가 가진 진정성 있는 마음과 태도에 있었다. 처음에는 의도 없는 루피의 호의를 다들 의심하고 외면했지만 마지막에는 그의 진정성을 믿고 함께 떠나기로 한다.
회사라는 조직이 만드는 경쟁들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허과장님이 만든 독서모임을 다녀오며 루피가 생각나기도 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비슷한 고충과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걸 공유하고, 서로에 대해 진정성 있는 말과 경청을 한다면 직장에서 동료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그래서 구조적인 해결방안을 찾기보다는 주변 사람에게 진정성 있는 자세로 대해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최근 직장 동기 중 한 명이 내가 브런치 하는 걸 보고 자극을 받아 브런치 작가가 됐다는 소식을 전했다. 글과 목표는 서로 다를 수 있지만 새로운 목표를 시작한 동기에게 기쁜 마음으로 축하를 보내줬다. 한편으로 좋은 동료가 되는 건 이러한 소소한 축하부터 시작되는 게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