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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쓸 만한 조과장 May 26. 2020

한 학생의 인생 고민상담을 해주다

어쩌다보니 눈물이 났다

<멘토님 덕분에 붙었습니다!!!!>의 연장선으로 코멘토를 하며 있었던 에피소드를 하나 소개하고자 한다. 나는 5월부터 코멘토를 통해 직무부트캠프 멘토로 활동하고 있다. 매주 직무와 관련된 실무과제를 내주고, 멘티들은 과제를 풀며, 나는 다시 또 그 과제들을 온라인세션을 통해 피드백해준다. 이게 나의 5주간의 역할이다


하지만 멘티들 자소서 첨삭을 시작으로 나의 메일 주소가 오픈(?)되면서 나의 할 일들이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중 하나가 이번 글에서 소개할 한 멘티의 개인상담 요청이었다. 음성으로만 대화만 하고 서로 얼굴도 모르는 한 멘티를 상담해 주며 있었던 소소한 에피소드를 얘기해보고자 한다.


소개할 멘티 김ㅇㅇ(편의상 멘티 B 양)은 나의 직무부트 캠프에 가장 먼저 들어온 취준생이다. 직무부트캠프 단체 카톡방에 다른 멘티들이 들어오기 전, B양은 내게 여러 가지를 물어보고는 했다


"멘토님, 제가 전공은 ㅇㅇ학과인데, 공공기관 사무행정에 적합할까요?, 멘토님 제가 중간에 휴학을 했는데 혹시 면접 때 어려운 부분은 없을까요? 멘토님 제가.."


한번 질문을 보내면 장문의 카톡이 올라왔다. 몇 번은 카톡창 메시지 안에 말하고 싶은 내용을 담지 못하여, 나는 종종 전체보기를 눌러 보낸 질문 내용을 확인해야 했다. 질문은 보다 보면 이 친구가 많은 생각과 고민들을 하는구나를 실감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나도 좀 더 정성담아 전체보기를 누를 정도로 빼꼭하게 답을 보내곤 했다


그러다 다른 멘티들이 하나 둘 들어오기 시작하자, B양은 이전처럼 긴 장문의 질문을 보내지 않았다. 아무래도 보는 다른 취준생 눈이 있어서 인 거 같다. 나라도 단체 톡방에 내 개인적인 질문을 구구절절 쓰기는 쉽지 않았을 거 같다. 그렇게 3주쯤 A군의 자소서 첨삭 요청으로 나의 메일 주소가 톡방에 알려지자 B양은 내게 궁금한 사항을 메일로 보내왔다


"멘토님 안녕하세요. 저도 자소서 참석을 드리기에 앞서, 제 계획에 고민이 있어(?) 끄적끄적 적어봅니다. 저는 ㅇㅇ대학교 ㅇㅇ년도 졸업생입니다. 학교에서는 식품영양사 자격증을 땄고, 올해 1월부터는 오픽과 토익..<생략>



B양은 자소서 첨삭보다는 개인적인 고민에 대해 길게 메일로 보내주었다. 주요 내용은 졸업하고 취업준비를 위해 여러 가지를 시도해보고 있지만 성과가 없고, 알바몬 등에 구직을 올려도 경쟁률이 너무 치열하고, 돌이켜보면 뭔가 준비한 것이 없어 불안하고, 그럼에도 앞으로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막막하다는 내용이었다.


메일 내용 중 수많은 ㅠㅠ와 ㅎㅎ가 섞인 문장들을 읽다 보니, 웃프다는 표현이 생각났다. 마음을 다 안다고 할 수없지만, 내용에서 느껴지는 취준생으로서의 답답함과 서러움이 있었다. 그래서 이 친구에게만큼은 더 위로가 되고 도움이 되는 답변을 주고 싶었다. 나는 고심 끝에 어렵게 아래와 같이 문장을 써 내려갔다.


"B양님의 글을 한번, 두 번, 세 번 읽으며 어떤 말을 드리면 좋을까 고민이 많았어요

그래서 우선 가벼운 얘기부터 시작해볼까 합니다 저도 집안도 경상도라 그런지 말에서 가끔 사투리는 남아 있는 거 같아요 근데 지역에 있는 분들과 얘기하다 보면 ㅇㅇ이 청년들이 취업하기 어려운 곳이구나를 느껴요..(생략)"


우선 가벼운 글로 메일을 시작했다. B양의 모든 걸 다 안다고 할 수가 없기에, 취업시장이 사회 구조적으로 비정상적이고 그렇기에 많은 청년들이 비슷한 고민들이 있다는 점, 내가 느끼는 B의 성격과 장점, 마지막으로 B양이 물어본 현실적으로 취업에 준비될만한 조언들을 담아서 답장했다.


긴 상담 메일을 보낸 이후 B양은 긴 답장에 감사하다고 메일을 보내주었다. 내가 준 답이 괜찮았을까 조금이나마 생각하는데 도움이 됐을까  반응을 확인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지난 토요일 B양으로부터 고민상담이 빼곡하게 적힌 장문 메일을 받고 내가 가깝다고 다가갔다는 생각은 들었다  


지난 토요일 온라인세션이 있는 직후였다. 나는 보통 온라인세션때 멘티들이 한발 더 성장하기 위해 항상 고쳐야 할 점을 넣는 편이다 그날도 이런저런 부분들을 피드백해주었는데, B양이 중간에는 네네 하다가 세션 마지막쯤 무언가를 말하려다 망설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혹시나 해서 끝나고 몇 분 뒤 메일을 들어가니 아래와 같은 메일이 와 있었다


"멘토님 고민 고민이에요. 오늘 코멘 토하면서 느낀 게 있어요. 저도 아는 단점인데 막 알아도 무시하고 넘어갔거든요. 그냥 자세히 안 알고 싶고 고쳐야 되는 건 알지만 그러기는 싫은..? 이게 난데?라는 생각요..(ㅠㅠ) 암튼 고쳐야 할 걸 말하자면요...(생략)"


정리를 하면 자신이 가진 성격의 단점과 고쳐야 할 점 5가지 정도에 대해 멘토님의 의견을 듣고 싶다는 거였다 고치고 싶지만 잘 안 되는 것들이 많고 고치려고 했지만 쉽지 않아 스트레스받다고 했다. 앞에 부분들은 그래도 취업과 관련된 정보와 고민상담이었다면, 이번 메일은 순수하게 자신의 개인적인 얘기와 고민이 중심이었다


내가 멘토라서, 혹은 조금 더 오래 살아서, 내 삶의 빗대어 조언을 해주고 싶지는 않았다. 무작정 노력을 하라고 싶지도 않았고,  부장님의 말처럼 '힘든 만큼 성장한다.'라고 말하고 싶지도, 유명한 책에서 성공한 사람들의 시크릿처럼 거창한 말을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더 고민이 많이 들었다. 지난번보다 더 고심 끝에 아래와 같이 메일을 써 내려갔다.


"우선 자신을 바꾸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인 거 같아요

B님이 마지막에 25년을 이렇게 살았는데 어떻게 고쳐야 할까요 하셨잖아요

저도 30년 정도 살고 있지만, 제가 가지고 있는 안 좋은 습관이나 성격은 생각만큼 잘 못 고쳐요

저는 혼잣말하는 버릇이 있거든요. 말하가다도 상대방이 못 알아듣게 혼자 소곤소곤거리고 합니다 저도 안 좋다고는 생각하는데 지금도 저는 혼잣말을 자주 해요  근데 이런 성격도 꼭 단점만 있는 거 같지는 않아요. 혼잣말하는 제가 가끔 좋기도 하고요.


고치고 싶은 게 있을 거예요

B님이 얘기했듯이, 창의적이고 싶고, 핵심만 요약하고 싶고., 잘하고 싶고.., 물론 방법들은 있는데

나의 강력한 의지나 외부에서 통제가 있지 않는 한 그동안 해왔던 습관을 바꾸기는 쉽지 않아요

그래서 그런 부분에서 너무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저는 아까도 얘기했듯이, 그런 행동이나 성격에 단점도 있겠지만 그만큼 장점도 있거든요. B님은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이나 깊은 생각들이 다 장점이에요

그러니 우선 스스로를 너무 몰아가지는 않았으면 해요

<중략>

얘기가 길었는데, 결론은 B님도 자신이 가진 문제의 정답을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근데 그 과정이 보통의 의지로는 어렵다 보니, 혹은 귀찮을 수도 있고, 누군가로 부터 의견이나 자극을 듣고 싶을 수도 있거든요 제 의견들도 한번 참고는 하시되, 스스로 자신의 성격을 나무라지는 말고 긍정적으로 하나둘씩 실행해갔으면 합니다 제가 B님을 보고 3주간 발전했다고 느낀 거처럼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는 날이 올 거예요ㅎ "


내 개인적인 얘기로 시작을 했다. 나도 고치려고 하는데 고쳐지지 않는 것들이 많고, 그럼에도 안 좋은 습관은 고치려고 한다. 다만 장단이라는 게 항상 붙어있는 거라 그 성격의 단점이 있으면 장점도 따라온다고 했다. 그렇기에 가끔은 단점있는 내가 좋다고 했다. 생략한 부분에는 조금 더 현실적인 조언들을 담았다. 책 읽기, 하는 일 시각화하기 등 작은 일부터 성취하도록 격려해줬다.


메일을 보낸 뒤, 몇 분 뒤에 짤막하게 답장이 왔다. 답을 보내지 않으려다가 답장을 보고 나서 눈물이 나 울었다고 한다. 자신의 단점을 자신도 좋아하고 있는 줄 이제 알았다고, 좀 더 자신에게 애정이 간다고 했다. 나도 그 말을 들으니 무언가 뿌듯함 이상의 감정이 왔다. 나의 글이 B양에게 많은 위로를 줄 수 있다는 것이 기뻤다.


어제도 다른 멘티로부터 자소서 첨삭 메일을 받았다. 하지만 이렇게 개인상담 요청은 아마 B양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지 않을까 싶다. 가끔 체력적으로 힘들기도 하지만 메일을 오픈한 것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누군가의 얘기를 듣으며 도움을 준다는 건 그만큼 나도 에너지를 얻는 일인 거 같기도 하다



이전에 군대에서 병영상담관을 했었다. 비행장에서 상담교육을 받으며, 교육강사가 했던 말이 기억에 난다


"상담은 사과를 깎는 과정과 비슷해요. 처음부터 문제를 해결해주려고 하지 말고 사과를 깍듯이 빙 둘러가며 내담자가 가진 고민을 스스로 풀게 해야 해요. 상담자의 역할은 문제를 해결해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 풀어갈 수 있도록 잘 들어주는 겁니다"


알듯하면서도 실제로는 어려운 말이다. 일상에서 얘기를 들어주다 보면 조언을 하고 싶어 지기도 하고, 답답함에 직언을 던지고 싶기도 한다. 그래서 이전에 썼던 글에서 친구가 말했던 <모든 문제의 답은 너 스스로가 알고 있어>를 나도 가슴에 새긴다.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나는 상담가인가를 돌아보며 어쩌다 보니 눈물을 나게 했던 소소한 에피소드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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