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회사에서는 내 자리에 시도 때도 없이 쌓이는 업무들로 인하여 몸과 마음이 지쳤다. 그냥 어디론가 훌훌 떠나고 싶었던 찰나, 오랜 고등학교 친구 A로부터 주말에 자기네 논밭에서 고기나 먹자는 카톡을 받았다. 같은단톡 방에 있던 나와 친구 B는 친구 A의 제안에 흔쾌히 좋다고 하였다.
나와 친구 B는 일요일 아침 10시에 이마트에서 만나 먹을거리를 샀다. 친구 A는 늦는다고 연락이 왔지만 이제는 친구끼리 익숙한 일이라 짜증 나지도 않았다. 나와 친구 B는 서로 적당히 안다는 듯 캔맥 6개와 두툼한 목살 몇 덩어리, 그리고 안주로 과자와 후식으로 먹을 비빔면을 샀다. 장을 다보고 출출하여 핫도그를 시켜먹자 친구 A가 와서 우리 셋은 차를 타고 A네 논밭으로 향하였다
친구네 논밭은 조용하고 한적하였다. 눈앞에는 흙내음이 나는 논밭과 햇볕을 피할 수 있는 통나무 원두막이 보였고, 귀를 기울이면 차 엔진 소리 대신 청량한 새소리가 울려 퍼졌다. 자동차 매연도 없었고, 스마트폰을 보며 지나가는 사람들도 없었다. 조금 평소보다 뜨거운 햇볕과 살랑거리는 바람만이 내 몸을 반겨주었다.
우리는 누가 정하지도 않았지만 각자 알아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찾아 했다. 한 명은 토치로 불을 집혔고, 한 친구는 집에서 싸온 파김치, 쌈장, 밥 등을 식탁에 펼쳤고, 나는 걸레를 빨아 우리가 먹을 장소 구석구석을 닦았다. 고기를 불판에 세팅했고, 반찬들을 가지런하게 식탁에 정리해놓자 우리는 캔맥뚜껑을 까고 건배를 했다. 탄산 넘기는 소리와 고기가 불판에 올라가는 소리가 익숙한 하모니를 자아냈다
야~크으 맥주 죽이네
고기 잘 익었다, 이제 내 가구 울게 언넝먹어라
와 파김치 이거 집에서 담근 거야? 와 맛있네
이마트에서 산 캔맥주와 돼지고기가 특별하지 않듯이 맥주와 고기는 익숙한 맛이었다. 다만 이 맛은 익숙하다고 표현하기에는논밭이 주는 한적한 분위기와 거리낌 없이 눈치 볼 필요 없는 친구들, 침묵할 필요도 없고 억지로 말을 꺼낼 필요도 없이 편하게 먹을 수 있는 내 모습이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고기를 먹고 나서는 불판을 정리하고 비빔면을 끓여먹었다, 얼음이 녹아 미지근한 비빔면이었지만 남자셋은 군대에서 먹은 쌀국수마냥 잘 먹었다. 누군가 무슨 실수를 해도 별 짜증이 나지 않았는데 모두 비슷한 맘이었던 거 같았다. 그리고 낙지볶음을 판에다가 구워 반주로 먹으며, 요즘 만나는 사람은 있냐는 등, 주식 투자하기에 어떤 종목이 좋다는 등, 요즘 이런 차를 사고 싶다는 등 30살을 맞이하는 남자들의 평범한 얘기들을 나눴다.
그렇게 얘기들을 하다가 술기운도 나고 배도 불러 정자에 퍼질러 누웠다. 이제는 오그라드는 대화 나눌 나이는 지났는지 각자 핸드폰을 보며 카톡 연락 온 곳은 없는지, 커뮤니티에는 재미난 게 뭐 올라왔는지 봤다. 참 별거 아닌 일상, 특별한 거 없는 오전이었지만 그런 친구들의 모습을 보니 웃음이 낫다.
<한적한 논밭에서 아재 3명이 고기 구어먹고 쉬는 모습>
# 내 인생에서 행복했던 한 달
내 인생에서 행복했던 순간을 뽑으라면 빼먹지 않고 말하는 순간이 있다. 대학교 4학년때 한 달간 상해 교통대학교로 어학연수를 갔던 때이다. 어학연수라고 부르기도 민망하기에 한 달간 상해에 놀러 갔다가 표현하는 게 더 적합할 거 같다. 4학년 1학기를 마친 직후 취업을 앞두고 간 거라 좀 더 남다른 의미가 있었다.
그 시기는 '취업'이라는 대한민국 취준생으로서 지녀야 했던 무게감이 있었다. 집에서는 알게 모르게 부모님 눈치가 보였고, 학교에서는 잘된 사람들과 비교를 하게 되고, 스스로는 준비가 부족하다고 채찍질을 했던 시기였다. 그런 내가 '취준'이라는 짐들을 한국에 내려두고 상해 여행을 택한 건 꽤 의외의 선택이었다. 하지만 큰 기대가 없어서일까 도피로 떠난 선택은 값진 한달은선사해주었다.
함께 간 동료들은 학교, 전공, 나이도제각각인 20명의 학생들이었다. 중국어를 잘하는 사람도 있었고, 나처럼 취업을 앞둔 사람, 이제 학교를 들어온 새내기도 있었다. 그렇게 서로의 상황이 다른 사람들이 만나 우리는 처음 학교에 입학한 새내기처럼 상해에서 학교를 다녔다.
수업이 끝나면 가까운 어디로든 떠났다. 새로운 걸 먹어보고, 새로운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고, 관광지에 가면 숨겨진 끼를 발산하며 사진을 찍어댔다. 우리는 학교에서 지원해주는 호텔에서 2인 1실로 지냈는데 저녁에는 있는 사람들끼리 모여 방에서 놀았다. 시장에서 산 안주와 맥주를 마시고, 한국에서 가져온 얼굴 팩도 하고, 개인적인 고민들을 나눴다. 매일이 행복했고 지나가는 시간이 아쉬웠던 한 달이었다.
돌이켜보면 그 순간이 행복했던건 엄청 특별하거나 새로운 경험이 있어서는 아니었다. 물론 새로운 사람들과 낯선 곳을 다니며 느끼는 기억도 새로웠지만, 아침밥을 같이먹고, 등교길에 장난도 치고,저녁에는 뭘 먹으로 갈지 고민하고, 자기전에는 서로의 고민을 나눴던 그 소소한 일상들이 내게는 행복한기억으로 남는다
<16.7 중국 상해에서의 한달 , 왼쪽 아래는 야간 오토바이 타는 사진>
# 일상에서 소소한 행복을 찾기를
이전에 '씀'이라는 어플을 사용하며 일상의 순간들을 글로 메모했다. 당시 나의 닉네임은"소행남"으로"소소한 행복을 찾는 남자"의 줄임말이었다. 일상에서 소소한 행복을 찾고 기록하고 싶다는 의미에서 소행남이라고 지었다. 그렇게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중요하다고 생각한 내가 어느순간 바쁜일상에 치여 그 흔한 친구들과의 만남조차뒤로 미루는거같다
몇주전 성수동에 있는 마리몬드를 방문했다. 마리몬드 계산대 앞에는 손님들 대상으로 무료로 제공하는 포춘레터가 있었는데 우연히 뽑은 포춘 레터에서 아래와 같은 문장이 나왔다.
그동안 참 많이 참았어요. 한번 더 참으면 마음에 병이 날 거예요. 더는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면 소리 꽥 지르고 내행복을 찾아 새롭게 떠나보세요
<마리몬드에서 뽑은 포춘 레터>
이 문장을 들었을 때 피식 웃음이 나오며 약간 울컥했던 거 같다. 불행을 피하기위해 사는 건 아닌지 작은 행복조차도 느끼려고 하지않고 뒤로 미루는 자신에게 포춘 레터가 일침을 가하는 거 같았다. 가끔 일상을 바쁘게 지내다 보면 내 주변에 행복이 있는지 못느끼게 된다. 대신 이 시기만 지나면, 이 일만 마치면 그때는 내가 원하는 행복을 찾겠다고 말이다
근데 인생이라는 게 계획대로 잘 되지 않는다. 계획했던 여행이 물거품이 되거나, 막상 계획만큼 즐겁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계획만 바라보고 행복을 뒤로 미루는 건 잔인한 선택일 수도 있다고 느낀다. 그럴 때일수록 내가 느낄 수 있는 행복을 지금 일상에서 더 느끼려는 노력이 필요한 거 같다.
내가 어떤 일에 행복해하는지, 그리고 그 행복했던 순간들은 언제였는지 스스로는 잘 기억하고 있다. 바쁜 일상에 치여 까먹을 수는 있지만, 돌이켜보면 누구나 그런 순간들을 있었을 것이다. 행복을 넘 멀리서 찾지 말고,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말고 일상에서 소소한 행복을 느끼면 어떨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