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 나는 양심의 가책까지 느낀다.
나는 웬만한 미드와 영화는 거의 섭렵한 영화, 미드 광이다. 이 즐거움을 여기저기 알리기 위해 친구들에게 꼭 보라고 권하기도, 관련 대화 주제가 나오면 신나서 말이 많아지기도 한다. 그리고 가끔 생각나는 예전 남자친구가 있다. 그는 내가 보라 하는 영화나 미드를 꼬박꼬박 챙겨보곤 했다. 그가 내 옆에서 핸드폰으로 나의 추천작을 볼 때면 이어폰 한쪽을 건네받아 같이 보곤 했다. 이미 본 거 아니야? 응, 그냥 다시 보고 싶어서. 의아해하는 그에게 싱겁게 대답해 주곤.
그렇게 우리는 ‘프리즌 브레이크’, ‘하우스 오브 카드’와 같은 대작들을 정주행 했다. 나는 그와 같은 감정과 시선으로 침묵 속에서 몰입하기 좋아했다. 내가 이 영화를 보며 느꼈던 감정을 그도 지금 똑같이 느끼고 있을까 생각하며. 간간이 그가 나에게 유혹을 못 참고 영화 내용을 물어보기도 했다. 이 사람, 이제 어떻게 되는 거야?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물어보는 그에게 나는 새침하게 대답을 해주기도 했다. 그건 말할 수 없지. 보면 알아.
특이하게도 그는 지루한 오프닝을 끝까지 다 보곤 했다. 넷플릭스의 간편한 기능 ‘건너뛰기’가 있는데도. 매번 똑같은 장면의 오프닝을 꿋꿋이 봤다. 내가 오프닝 건너뛰기를 누르려고 하면 다급하게 제지할 정도였는데, 어쩌다 건너뛰기를 누르는 날엔 낮게 불평하기도 했다. 참다못한 어느 날은 왜 항상 같은 장면의 오프닝을 보는 건지 툴툴거리며 물어봤다.
미국풍경을 어디 가서 보겠어.
웅장한 노래와 함께 슥슥 바뀌는 하우스 오브 카드의 오프닝을 보며 그가 말했다. 그놈의 미국풍경. 별거 아닌 말이 불쑥 마음을 사로잡을 때가 있다. 미국풍경. 귀여운 말이라고 생각했다. 맞는 말이었다. 멋진 야경도, 자유의 여신상과 그 아래로 빠르게 지나가는 성냥갑 같은 차들 그리고 워싱턴의 국회의사당도. 이럴 때 아니면 언제 보겠는가. 꼭 처음 보는 장면을 보는 것처럼 항상 오프닝을 끝까지 지켜보는 그가 고집 센 아이 같기도, 그 쓸데없는 확고함이 어른스러워 보이기도 했다. 그때부터 나는 군말 없이 그와 함께 오프닝을 진지하게 몰입하여 보곤 했다. 멋진 미국풍경을.
영화관에서 보는 영화가 재미있게 느껴지는 이유 중 하나는 건너뛰기의 유혹이 없기 때문이다. 영화의 지루한 부분도, 재미있는 부분도 온전히 몰입하게 되어 작은 여운 하나까지도 챙겨가게 만들기 때문에. 아마 그는 그런 것들을 말해주고 싶던 게 아닐까. 이제 건너뛰기를 누를 때면, 어디선가 그가 불평하는 소리가 들리는 거 같아, 괜히 마음이 찔린다. 이게 뭐라고 양심의 가책까지. 헛웃음을 참으며 건너뛰기를 누른다.
나는 아직도 가끔 영화 오프닝을 본다. 그는 아직도 오프닝을 열심히 볼까. 미국풍경이 아닌 다른 오프닝도 있을 텐데, 그런 것도 그렇게 진지한 자세로 볼까. 생각하며. 슥슥 지나가는 지루한 오프닝을 그의 눈으로 진지하게 본다.
그놈의 미국 풍경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