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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랜들리 May 14. 2023

끊을 수 없는 내 달콤한 허망, 초콜릿

초콜릿이 내 소울푸드가 된 이유

보통 한국인의 소울푸드라고 하면 순댓국, 김치찌개 같은 음식이다. 하지만 나의 소울푸드는 조금 다르다. 나의 소울푸드는 항상 초콜릿이었다. 편의점에서 파는 투플러스원 초콜릿부터 한 알에 2000원이 넘어가는 비싼 수제 초콜릿까지. 각자의 개성대로 초콜릿이라면 다 좋아하는 편이다. 요즘 빠진 초콜릿은 앤디스 민트 초콜릿. 화이트 초콜릿은 좋아하지 않는다.


주말이면 우리 가족 넷은 1시간 거리에 있는 까르푸라는 대형마트에 드라이브를 가곤 했다. 드라이브가 지루해질 때쯤이면 작은 주유소 겸 편의점에 들렀는데, 우리는 그곳을 ‘방앗간’이라고 불렀다. 아빠는 담배와 주유, 엄마는 화장실, 동생은 군것질, 그리고 나는 초콜릿. 각자의 목적을 가지고.


동생은 과자 혹은 사탕, 가끔은 희한하게 생긴 음료수병을 집어 들곤 했는데, 나는 매번 린트 초콜릿을 골랐다. 다른 것을 사볼까 고민도 해봤지만 항상 이 초콜릿이었다. 고급스러워 보이는 포장지와 얇은 은박지. 그리고 진하다 못해 검은 초콜릿. 딸각딸각 조각을 내서 입에 넣곤 창밖을 내다보곤 했다. 입에서 초콜릿을 녹이다 보면 어느새 차멀미는 가라앉고 까르푸에 도착해 있었다.


어린 내게 초콜릿은 이를 썩게 하는 주범이었지만 내 철없는 초코사랑에 고맙게도 엄마는 꽤 관대했다. 우물쭈물했던 어린 시절에도 아이스크림 맛 선택에 있어서는 당당하게 ‘초코’를 외쳤다. 초콜릿이라면 환장할 나이는 지났지만, 아직 나에게 초콜릿은 특별하다.


초콜릿을 생각하면 생각나는 연애가 있다. 얼떨결에 시작한 그 연애에 나는 진심이 없었다. 첫 단추부터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저 흐르는 대로 방치하던 그런 연애. 초콜릿부터 마카롱 등 단 것을 자주 선물해 주던 그는 11월 11일에도 내게 빼빼로 묶음을 선물해 주었다. 아, 응 그래 고마워. 평소와 같이 미적지근하게 선물을 건네받곤 집으로 돌아왔지만, 말할 수 없는 죄책감이 밀려들었다. 고심 끝에 나는 그다음 날  그를 카페로 불렀다.


카페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말할 타이밍을 찾았지만, 너무 조용한 탓에 실패. 자주 가던 술집에서 술을 마시며 말을 꺼내 보려 했지만, 왁자지껄한 분위기에 또 실패. 결국 캔맥주 두 개를 사서 운동장 돌계단에 앉아 조심스럽게 하고 싶은 말을 꺼냈다. 그런데 그는 크게 놀라는 눈치가 아니었다.


내가 오늘 헤어지자고 말할 것을 알고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가 예감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니가 한 번도 나를 먼저 보자고 부른 적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마음이 없는 너가 나를 부른 이유는 하나밖에 없지 않으냐’라고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어쩐지 항상 자신감과 밝은 기운이 넘치던 그는 유독 그날따라 말이 없었다. 그렇게 뜨뜻미지근한 연애가 끝났다.


집에 돌아와 그에게 받은 초콜릿을 하나 뜯어먹어봤다. 너무 많이 먹으면 이가 썩을 텐데. 살이 찔 텐데. 초콜릿을 먹을 때는 왜 이런 죄책감이 느껴지는 걸까. 생각하면서 사치 덩어리 초콜릿을 입에서 녹인다. 초콜릿은 연애처럼 감미롭고 섹시하다.


달콤 씁쓰름한 덩어리를 혀로 굴리고 있으면 세로토닌이 온몸에 흡수되는 기분이다. 그리고 끝맛은 허망하다. 맛이 희미해지면서 입 안이 텁텁해지기 시작한다. 꼭 연애처럼. 아무리 텁텁해도 결국 달콤함으로 미화되어 또 생각날 초콜릿이 원망스럽기도, 내 마음을 알아주는 듯한 초콜릿이 고맙기도 하다. 이토록 슬프고 허망한 음식은 아마 초콜릿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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