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블티 = 점심
버블티를 좋아하지 않는다.
두꺼운 빨대로 입안에 액체와 고체가 한 번에 들어와, 씹어야 할지 마셔야 할지 도통 모르겠다. 누군가와 밥을 먹는다는 것은 그런 버블티를 마시는 기분이다. 상대에게 온 신경을 쏟는 통에 음식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 줄 모르고 먹는다. 그러다 음식을 반 이상 남기기도, 뒤늦게 허겁지겁 먹다가 체를 하기도 한다.
대화하며 밥을 싹싹 긁어먹는 사람들이 경이롭게 느껴진다. 그들을 볼 때면 인터넷 먹방을 보는 기분이다. 별풍선은 못 주더라도 반찬 하나라도 가까이 밀어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자주는 아니지만 종종 어려운 점심 약속이 생긴다. 잘 모르는 선배와 먹는 점심, 아직은 어색한 후배에게 사주는 점심, 그리고 회사 지인과 먹는 점심. 셋 이상 먹는 점심 식사는 그나마 괜찮지만, 나와 상대. 둘이서 먹는 1대 1 점심은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다. 그런 날은 음식을 깨작거리다 달달한 음료수를 사 마시곤 한다.
공백.
나는 그 공백이 싫다. 무슨 이야기를 꺼내야 할지 감도 안 잡히는, 짧지만 무거운 침묵. 식당에 들어서기 전까지는 어렵지 않다. 좋아하는 음식은 있나요? 저는 매운 걸 좋아하지 않아요. 음식 취향 이야기를 하며 식당을 고르고, 날씨 이야기를 할 수도 있기 때문에. 식당에 들어서면 자리를 잡고 메뉴를 고른다. 난 이거. 사이드도 나눠 먹을까요? 물도 미리 따라 둔다. 테이블 아래에서 식기를 꺼내 앞에 놓아주기도 하며.
종업원이 메뉴를 확인하고 돌아서면 내가 싫어하는 순간이 시작된다. 점심 식사의 가장 큰 고비. 공백. 스테인리스 컵에 담긴 물을 한 모금 마셔봐도 날카롭고 비릿하게 느껴진다.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침묵을 깨기 위해 하는 이런 질문은 그 순간을 더 어색하게 만든다. 그때부터 나는 열심히 머리를 굴리기 시작한다. 어떤 질문이 가장 적당할지.
대화가 끊기지 않아 금세 분위기가 풀어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주제를 꺼내도 대화가 툭툭 끊어지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모든 대화에 자신의 이야기를 빽빽하게 채워 넣어 점심을 먹기도 전에 속을 더부룩하게 만드는 사람도 있다.
그런 작은 점심 추억들이 모이면 점심을 먹고 싶은 사람이 생기기도, 기피하고 싶은 사람이 생기기도 한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덜컥 겁이 나기도 한다. 나는 어떤 점심 상대일까. 혹시 대화가 툭툭 끊어지게 만드는 사람은 아닐까. 좋아하는 주제의 이야기가 나오면 나도 모르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기도 하는데. 이야기를 빽빽하게 욱여넣는 사람은 아닐까.
점심 약속은 아직도 쉽지 않은 일이다. 지금도 낯선 상대와 밥을 먹을 때면 내 앞에 있는 그릇을 싹싹 비워내진 못한다. 그래도 그 너머에 있는 나의 점심 상대에게 온전히 집중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달달한 음료수를 사 먹게 되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