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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랑 Apr 09. 2017

익스팬스

SF 미드, Expanse로 알아보는 우주 시대 이야기

SyFy에서 방영한 지 조금 된 미드 <익스팬스 : The expanse>가 그저 그런 B급 SF물이라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었다. SyFy가 리메이크한 <배틀스타 갤럭티카>에 다소 실망했던지라, SyFy의 우주 SF 드라마에 대한 기대감도 조금 시들했던 편이다. 오래전 명작인 갤럭티카에 복잡한 심리묘사를 치중하다 보니, 전개가 지지부진하고 볼거리도 줄었기 때문이었다. 한정된 예산으로 방대한 스케일의 SF물을 제작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것도 시즌당 10부작이나 되는 드라마라면 더욱 그렇다.


티브이를 거의 안 보기 때문에, 미드를 볼 기회도 많지 않다. 그렇지만 무슨 이유에 선지 갑자기 익스팬스를 보고 싶어 졌다. 새로운 글을 쓰는데 소재를 더 찾다 보니 그랬을까? 결과적으로 1박 2일에 걸쳐서 시즌 1을 모두 봤다. 요즘 시즌2가 중반을 넘기고 있다는데, 조만간 그것도 볼 것이다. (이미 보고 있다.)


생각보다 매우 괜찮은 SF 우주 드라마였다.


익스팬스를 흥미롭게 봤던 이유는 아마도 드라마 속에서 보이는 우주에서의 상황이 다른 SF영화나 드라마에 비해 매우 실감 나게 잘 표현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너무 리얼리즘으로 흐르면 지루하고 재미없으므로, 어느 정도 비약은 반드시 필요한데, 적절하게 사실과 비약을 조합했다.


많은 이들은 드라마의 스토리 전개, 캐릭터의 연기력을 주된 관전 포인트로 보는 편이다. 하지만 가끔은 화려한 볼거리, 바탕이 되는 세계관에 집중해서 보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 드라마는 후자에게 매우 흥미진진할 것이다. 익스팬스의 세계관은, 내가 상상하는 미래상과 꽤 일치한다. 모든 SF작가, 평론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는 요소가, 그들이 상상하는 미래상이 어떤 것이냐는 문제이다. 그것의 차이에 따라서 글 쓰는 방향이 전혀 달라지기 때문이다. 특히 우주 항해에 대해 전문적으로 논하는 필자에겐 더욱 중요하다.



소설 익스팬스의 매력은 무엇인가?


익스팬스는 <제임스 S.A. 코리>가 2011년부터 연재하고 있는 우주 SF 시리즈물이다. 제임스 코리는 사실 두 명의 저자, 다니얼 에이브라함과 타이 프랭크가 공동 집필할 때 쓰는 필명이다. 이것을 SyFy에서 다시금 드라마로 재구성한 것이 <The Expanse>인 것이다.


원작 소설은 <1편 : 깨어난 괴물>에서 시작해서 <6편 : 바빌론의 잿더미>까지, 2011년부터 매년 출간되고 있다. 이외에도 중간중간에 단편 형식의 e-Book도 나오면서 거대한 세계관을 배경으로 전개되는 와중이다. 원작의 공동 저자인 타이 프랭크는 아마도 SF덕후이며, 게임광인 듯하다. 바로 익스펜스의 가장 큰 매력이 되는 세계관은 프랭크가 롤플레잉 게임을 위해 세웠던 세계관이라 한다. 여기에 전문 작가인 에이브라함이 가세하여 스토리를 입히면서 익스팬스가 탄생했다.


익스팬스 세계의 창조자들, 어느쪽이 프랭크인지는 딱 봐도 알 수 있다.


소설의 세계관은 매우 중요하다. 우주 SF 세계관에 흔히 등장하는 워프 드라이브나 반중력 장치도 존재하지 않고, 인류는 좁은 태양계에 갇혀있다. 하지만 포커스가 내행성(지구, 금성, 화성)을 벗어나서, 외행성(목성, 토성)의 또 다른 작은 행성계(거대 가스행성의 위성들)에 맞춰졌다. 화성과 목성 사이에 위치한 소행성 벨트 역시 주된 무대가 된다. 하지만 그런 좁은 태양계도 인류에겐 너무 벅차다. 지구에서 목성까지 가려면 최소한 5~6년은 걸리는 게 지금의 한계이다. 이런 공간과 시간의 제약을, 익스팬스에서는 다소 과감하게 배제하여 해소하고 있는 편이다.

리얼리즘 우주 소설은 너무 전개가 느려서, 지루하고 따분할 수 있다.


제임스 코리는 일단 배경이 되는 행성들과, 소행성, 위성들을 마치 롤플레잉 게임상의 여러 도시들처럼 실제 지명으로 설정하고, 각 장소들에 걸맞은 역할을 부여했다. 현실에서는 사람이 생존하기 어려운 곳들 조차도, 그냥 창밖으로 보이는 평온한 초원처럼 묘사하긴 했지만, 덕분에 세계관이 크게 확장되었다. 그리고 그런 미지의 성곽마다 다양한 사회를 대입했다. 이제 게임의 배경이 완성되었으니, 그 안에서 주인공이 될 몇 명의 전사들을 선발하고, 여러 도시를 오가면서 벌이는 게임처럼 진행하면서 계속 소설이 양산되고 있다.


세계관이 부실한 SF소설들은 스스로의 팽창을 견디지 못하고 붕괴해가는데 반해, 익스팬스는 이미 단단한 울타리에 갇힌 상태로 조율되고 있다. 적당한 크기의 무대가 주어진 상태에서, 배우들을 등장시키고 대본을 만들어 나가면서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주게 된다.


익스팬스 시리즈를 관통하면서 등장하는 여러 요소들은 때론 너무 과한 조미료처럼 눈에 거슬린다. 그러나 상업성을 갖추기 위함이라 여기면 어느 정도 애교로 봐줄 수 있을 것이다. 뜬금없이 등장한 외계 생명체가 대표적이다. SF 드라마에서 외계 생명체는 적어도 조연급 이상이 되기 쉬운데, 익스팬스에서는 오로지 스토리 전개를 위한 도구로 전락한 느낌이다. 인간들의 탐욕과 호기심, 두려움 때문에 판도라의 상자를 계속 열었다가, 닫았다가 반복하고 있다. 아마도 외계 생명체가 아닌, 고대 종족의 초문명 정도만 되었어도 무리 없이 전개가 될 지경이다.



드라마 익스팬스는 어떻게 원작을 바꿔놨나?


소설은 텍스트로 이루어져서 독자들의 상상력을 극대화시킨다. 이것은 독자들의 상상에 따라, 각자가 다른 우주를 머릿속에서 그리도록 한다. 하지만 영상이 전면에 나서는 드라마의 경우, 감독의 상상력이 결정적으로 좌우된다. 원작자들은 레시피를 제공했을 뿐이지만, 감독은 직접 요리를 해서 관객이 시식할 수 있도록 차려준다.


SF 걸작 소설들이 영화나 드라마로 제작되면서 망했던 예는 수없이 많다.


미드 익스팬스의 제작자들은 새로운 우주세기를 맞아서, 현재 인류가 가진 진보된 기술과 근미래 비전을 드라마에 고스란히 녹여내는 데 성공했다. 필자 특성상, 어떤 SF영화나 드라마를 보더라도 그 속에서 묘사되는 자잘한 기술 관련 사항을 눈여겨보는 편이다. <그래비티>를 보면서 실소를 머금었고, <인터스텔라>를 보며 졸았던 사람이다. 당초 익스팬스를 보고 나서, 드라마에 등장하는 여러 우주선과 우주항해법, 소행성들의 특징과 우주에서 인류가 거주하는 상황을 자세히 분석한 설명서를 쓸 참이었다. 물론 익스팬스에도 옥에 티가 너무 많아서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이고 있지만, 그런 모든 결함을 상쇄시키고도 남을 아름다운 영상들로 꽉 차있다.


최첨단 우주선들이 왜 우주에서 구식 기관포를 쏴대고 있는가?


이건 비슷한 부류끼리 통하는 감이다. 익스팬스 세계관을 창조한 타이 프랭크는 아마도 어떤 게임을 즐겨하고 있을 것이다. 그 게임은 스페이스X의 일론 머스크 조차도 즐겨하고 있으며, NASA와 스페이스X 직원들 상당수가 즐기고 있다. 그리고 드라마를 제작한 이들 중에도 분명히 섞여 있다. 우주전쟁에서 흔히 등장하는 레이저포도 없고, 입자포도 없다. 작은 우주 전투정 한 척이 거대한 우주 전투함들 사이를 누비면서 종횡무진 활약하고 있다. 이것이 미래에 벌어질 진짜 우주전쟁의 참모습이기 때문이다.


익스팬스 시즌2 Ep11에서 로시난테가 목성 위성들의 중력을 파도 타듯 항행하는 장면은, 해당 분야에 관심 있는 이들에겐 짜릿한 장면이다. 시간과 공간을 압축했지만, 그딴 오류는 눈감아줄 정도로 아름답게 묘사했다.


드라마는 사실과 허구를 적절히 섞어가면서, 여러 시각의 관객들을 모두 충족시켜주려 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매우 성공적으로 조합하여 그럴듯하게 보인다는 게 놀랍다. 인문학의 관점, 감성의 관점, 기술의 관점 모두 골고루 포용하고 있다. <배틀스타 갤럭티카>처럼 원작이 가진 흥미진진한 볼거리를, 지지부진한 전개로 망쳤던 SyFy의 갤럭티카는 잊자. 익스팬스는 내내 긴박하게 전개되며, 화려한 우주 전투씬과 볼거리를 제공한다. 최근의 영화들이 잊고 있던 자극적인 영상미들이, 리얼리티라는 무시 못할 지원군을 바탕으로 다시 부활했다.


머리 아프게 몰입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스토리의 전개는 누구나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임팩트를 예고하면서 길게 끌지도 않아서, 바로바로 사건들이 계속 터진다. 그런 다발 사건들이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또 다른 사건의 시작이 되므로 어색하지도 않다. 결정적으로 익스팬스의 단단한 세계관에 꽉 붙잡혀 있기 때문에 전개가 매끄럽다. 오로지 변수가 되는 불확실성은 외계 생명체의 존재뿐이다. 원작자들도 그랬지만, 드라마 제작자들도 외계 생명체를 제대로 뽕 뽑아먹는 편이다.



익스팬스, 그 이전과 이후


익스팬스는 마치 곧 인류에게 다가올 우주세기를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우주 SF물에서 보였던 현실과 동떨어진 그런 세상에서 한걸음 가까이 다가왔다. 한때 활기찬 우주세기를 예견했던 SF의 시대는 지고, 디스토피아적인 우주세기가 흔히 보였던 게 최근의 일이다. 익스팬스가 보여주는 우주세기는 희망과 절망이 공존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돈키호테> 같은 주인공들이 여전히 미래에도 존재할 것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새로운 우주세기에 인류가 정착하게 될 수많은 지역들은 모두 지구와 다소 동떨어진 독자 생태계를 구성하게 된다. 그런 작은 사회들이 태양계 곳곳에서 태동하고 커나가게 되면, 어머니 지구별은 그런 자식들의 성장을 지켜보며 어떻게 행동할지 궁금하다. 아마도 금세기가 지나기 전에 인류가 직면하게 될 거대한 사회적 실험을, 이렇게 소설과 드라마를 통해서 미리 간접 체험하는 것이 트렌드가 될지 모른다.


한때 우주 SF는 왠지 거창하고 근사한 우주선과 광선포의 전유물로 여겨졌다면, 앞으로는 서서히 아침 드라마처럼 당연하게 느껴질 것이다. 익스팬스를 통해서 차츰 우주에서도 총 쏘고 싸울 수 있으며, 행성들의 중력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도 알 수 있다. 물론 익스팬스는 허구적인 SF의 한 부류이다. 거짓말도 너무 나아가면 황당하지만, 적당하면 그럴듯해 보인다. 이런 작품들이 차츰 늘어날수록, 인류는 우주에 대한 친밀감을 느끼면서 나아가는데 주저함을 줄일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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