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카타브라를 외친 마법사들, 4차 산업혁명을 외치다.
지난 대선에서 후보들이 공약을 내놓으면서 더욱 관심도가 높아진 키워드, 2016년 1월의 다보스포럼에서 클라우스 슈밥이 언급한 그 단어는 이래저래 우리네 생활 깊숙이 파고들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산업혁명'이란 단어의 고전적 의미를 살펴보자. 18세기에 영국부터 시작된 방적 산업의 급속한 기술 발전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이전까지 인력과 단순한 수공업에 의존했던 인류의 경제 체제는, 수력과 증기기관이 적극 도입된 대량생산 시스템이 적용되면서 생산력이 급격하게 증가한다. 이를 통해서 국가 간 무역이 활성화되고 자본의 성장을 도왔다. 한마디로 어떤 기술로 인해서 생산/소비가 촉진되어 인류의 삶에 큰(혁명적) 변화를 초래하는 것을 '산업혁명'이라 정의할 수 있다.
'산업혁명'이라는 용어는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에 의해 최초로 언급되었다.
이후 중화학 공업과, 컨베이어 벨트 등을 사용한 대량 생산체계까지 접어들면서 1차 산업혁명(방적 기술, 증기기관)과 구분하기 위해 2차 산업혁명이라는 용어도 사용된다. 그런데 3차 산업혁명이란 용어는 오랜 기간 등장하지 않았다. 오히려 'IT혁명'이라는 단어가 심심찮게 눈에 뜨였을 뿐이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정보통신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3차 산업혁명이라 불릴 만했지만 그러진 않는다.
'3차 산업혁명'이라는 용어는 2012년에 경제학자 제레미 리프킨이 처음 언급했다.
의외로 3차 산업혁명은 뒤늦게 사용될 뻔했다. 인터넷과 재생에너지 기술이 결합하여 인류의 미래를 이끄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이룰 것이라는 전망에서 제시된 것이다. 결국 1, 2차 산업혁명과 3차 산업혁명 사이에는 큰 갭이 생긴다. 이 틈을 비집고 들어간 것이 <4차 산업혁명>이다.
아직 도래하지도 않은 3차 산업혁명 시대를 놓고, 4차 산업혁명을 주장하다 보니 '산업혁명 전체'의 재정의가 필요해졌다. 클라우스 슈밥은 3차 산업혁명이 1960년대부터 시작된 컴퓨터 기술을 이용한 자동화 생산 시스템이 근간 이슈라 주장하고, 현재는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등이 결합된 새로운 4차 산업혁명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말한다. 그런데 왜 지금까지 어떠한 역사학자, 경제학자들도 '3차 산업혁명'의 완성을 주장하지 않았을까? 그것은 시대별로 이슈가 될만한 신기술이 끊임없이 출현했지만, 과거 1차 산업혁명처럼 인류의 삶을 송두리째 바꿀 혁명적인 기술이라 주장하기엔 조금 부족했기 때문은 아닐까? 심지어 'IT혁명' 조차도 산업혁명의 반열에 오르진 못했다.
4차 산업혁명이란 용어는 독일이 추진하는 인더스트리 4.0이라는 용어에서 착안하여 나왔을 거라는 추정이 있다. 현재 어떤 국가도 공식적으로 '4차 산업혁명'을 언급하진 않는다.
현실로 돌아와 보자.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데이터 마이닝 등은 이미 오랜 기간 쌓아져 온 분야들이다. 갑툭튀 해서 짠~하고 나타난 신기술이 아니란 뜻이다. 1970년대에 이미 드라마에서 인공지능 판사가 사람을 대신해서 판결을 내리는 시나리오까지 있었다. '4차 산업혁명'의 주요 구성요소로 등장하고 있는 키워드들은 모두 서서히 진화해온 각 분야 기술들이다. 그걸 몽땅 짬뽕해서 뭔가 주장하는 게 4차 산업혁명의 실체가 아닐까?
그냥 앞으로 돈이 될 듯한 이슈는 몽땅 총집합시켰다.
귀찮게 4차 산업혁명 구성요소 하나하나를 미분해서 따져보진 않겠다. 그럼 글이 너무 길어지며, 핵심을 찌르지 않고 주변 곁가지를 쳐나가는 식의 비효율적 비평이 되기 때문이다. 인공지능 자율주행으로 인해서 곧 수십만 명의 트럭 기사들이 해고될 거라는 식의 위협적인 이슈는 해당 분야에 한정된 것이다. 아디다스 공장에서 고작 수십 명이 다루는 자동화 로봇들이 신발을 생산한다는 이슈도 이미 오랜 기간 진행된 공장자동화의 예에 불과하다. 모든 것이 대중의 관심을 사로잡는 마법의 주문에 불과할지 모른다.
<아브라카타브라>를 외친 고대의 마법사들, < 4차 산업혁명>을 외치는 현대의 연금술사들. 둘 사이의 공통점은 '뭔가 그럴듯하다.'라는 점이다. 대중은 그런 마법의 주문에 혹하기 쉽다.
아마도 이 글을 비판하는 분들은 "각 기술에 대한 정확한 비평도 없이, 그냥 자기주장만 하시네요."라고 역 비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4차 산업혁명>도 클라우스 슈밥의 자기주장에 불과하단 사실만 알아달라. 그걸 추종하고 신성시하는 이들, 정책 이슈로 삼아서 엄청난 국가예산을 투입할 구실로 만들려는 관료들만 아니라면 말이다.
4차 산업혁명 관련된 서적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어찌 보면 미래에 각광받을 기술들에 대한 총정리판이며, 혁명적으로 바뀔 미래 패러다임에 대한 예언서이기 때문에 더 잘 팔리는지 모른다. 대중은 자신의 일자리가 어떻게 사라지는지 두려워한다. 자율주행에 위협받는 대형 운전면허를 따는 것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어울리는 자격증을 준비하는 게 현명한 선택이 될지 모르기에 관심을 두는 것이다.
편의점 알바, 커피숍 알바, 패스트푸드점 알바는 가장 먼저 사라진다고 한다. 최저시급에 의지하는 우리 시대 젊은이들에게는 최후의 보루였는데 말이다. 회계사, 법무사도 사라진단다.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겼다. 이런 자극적인 기사에 반응하지 않을 대중은 없다. 점점 초라해져 가는 인간들, 그리고 로봇과 인공지능이 지배하는 디스토피아적인 미래상... 그것이 <4차 산업혁명>이라는 키워드를 구사하는 연금술사들이 노리는 공포가 아닐까?
영화 <설국열차>를 보면, 완전 자동화된 완벽한 기관차임에도 좁은 공간에서 수리를 담당할 몸집 작은 아이들이 필요했다.
인간이 배제된, 인공지능과 기계문명(배틀스타 갤럭티카에 나오는 사일런 문명과도 같은...)을 꿈꾸는 이들이 과연 있을까? 만약 그러한 문명이 출현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일부 사람들의 탐욕이 불러온 결과일 것이다. 지금껏 모든 산업혁명은 잉여물자와 자본을 출현시켰고, 그것은 소수의 독점물이 되었다. 나머지 다수는 여전히 고통받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분배가 공평했다면 그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왜냐면 인류 전체의 생산능력은 계속 향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항상 어떤 곳에는 물자가 부족할까?
4차 산업 혁명론에 의하면, 미래에는 신기술에 의지해서 생산력을 배가시킨 일부 선도국가들이 나머지 국가들을 지배한다는 식으로 설명한다. 물론 그럴 수도 있지만, 이미 지금도 그러고 있지 않는가? 또한 핵심 키워드가 너무 지구적인 것에 머무르고 있다. 곧 도래할 <우주세기 : 인류의 타행성 진출>과, 핵무기 경쟁으로 인한 세력 구도의 변화, 미국 중심의 세계 경제가 차츰 양극화하는 것은 빼먹었다.
순전히 사견이다. 우리나라 실정에서 <4차 산업혁명> 키워드는 재벌과 관료들에게 엄청 좋은 이슈가 된다. 재벌들은 구조조정과 같은 사회적 저항 이슈에서 유용하게 써먹을 공격 수단이 된다. 수만 명의 은행 직원을 해고하면서 "외국은 이미 4차 산업혁명으로 인공지능을 적극 도입해서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라고 주장하면 된다. 금융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피치 못할 선택이었다고 해명하면 되는 게 아닌가? 현대자동차도 수십만 해고하면서 "4차 산업혁명 때문에 무인 로봇공장의 외국 업체들에 대항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라고 할 테니...
정부 관료들에겐 더 좋은 먹잇감이다. 매번 정권이 바뀔 때마다 키워드를 바꾸면서 이슈를 만들고, 예산을 퍼붓는 게 그네들의 습성이다. 관료조직은 결코 생산활동은 안 하면서, 일을 만들어서 소모하는 습성이 크다. 물론 적절한 예산 투입과 집행은 우리 사회를 원활하게 돌리는 원동력이 된다. 문제는 그런 힘이 엉뚱한 곳에 집중될 때 극소수의 기득권층이 과실을 독차지한다는 것이다.
지난 정권의 창조경제를 생각해보라. 4차 산업혁명은 잘못 쓰면 제2의 창조경제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며칠 전에 뉴질랜드에서 새로운 로켓 하나가 실험 발사되었다. 로켓랩의 '일렉트론'이라는 녀석인데, 이 로켓의 특징은 주요 부품인 터보펌프를 '전기모터'로 대체했다는 점이다. 관련 분야에서 매우 혁신적인 시도인데, 덤으로 추가한 기술이 '3차원 프린팅'이다. 로켓의 일부 부품을 3D 프린팅으로 제작했다는 것이다. 국내 언론에는 일렉트론의 발사 소식과 함께 '3D 프린팅으로 제작된 로켓!'이 강조되어 보도되더라. 그걸 보면서 기분이 착잡했다. 다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
일렉트론 로켓에서 중요한 이슈는 전기모터 기술이다. 3D 프린팅은 양념에 불과했다.
사실 3D 프린팅이 왜 4차 산업혁명의 주요 구성 요소에 포함되는지 이해가 안 된다. 해당 분야 종사자들에겐 죄송하지만, 그런 식이면 너무나 중요한 기술이 많다. IT업체들의 주요 기술도 슬쩍 이름을 바꿔서 끼어들고 있다. 예산 타 먹으려는 꼼수가 아닐까? 다른 나라들은 그냥 가십거리로 여기는 키워드가, 왜 우리나라에선 구국의 키워드로 변모했을까?
모든 산업혁명들은 일부에게는 기존 일자리를 빼앗아가지만, 반면에 새로운 일자리와 줄어든 노동시간, 그리고 잉여물자와 자본을 창출한다. 합리적인 산업혁명이라면 그런 혁명의 과실은 각자에게 배분되어야 마땅하다. 자본가는 더 적은 자본으로 많은 이익을 창출하여 이득을 취한다. 하지만 이익을 독점하는 게 아니라, 고용자들에게도 더 적은 노동시간에 많은 임금을 제공하는 게 맞다. 만약 기업들의 이익이 늘어나는데 반해, 인건비가 줄어든다면 그 차액은 정부가 환수해서 배분하는 것도 고려할 만하다. 신기술로 다른 나라의 자원과 돈을 약탈하는, 제국주의적 산업혁명이라면 아마도 국제적 분쟁을 야기할 것이다. 과학기술은 어디까지나 인류 전체의 삶을 향상시키는 방향으로 가는 게 맞다. 소수 국가가 압도적인 생산력으로 지구의 자원을 독식하려 한다면, 분명 그에 대한 반발로 범지구적인 전쟁도 야기할 수 있을 테니까.
빌 게이츠는 천재다. 로봇으로 대체되어 자본이 이득을 취하면, 그 로봇에게 세금을 부과하자고 한다. 만약 사람이 일했으면 그는 돈을 써서 경제를 순환시키고, 세금도 낸다. 로봇에게 면세특권 주면 경제정의에 어긋난다는 사실을 정확히 지적했다.
인공지능과 로봇은 인류에게 노동으로부터 자유를 선사하고, 쾌적한 삶을 선사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그것들로 인해서 남게 되는 여유시간에 각자 취미활동, 예술과 같은 인간적인 행위를 취할 수 있으리라. 그럼에도 4차 산업혁명에 열거되는 기술들은 죄다 나름 혁신적인 것들이라 각 분야의 구도를 바꿀 수 있다. 산업의 패러다임이 각 분야에서 조금씩 바뀌고 있다. 특정 기술로 인한 것이 아닌, 분배와 경제 체제의 패러다임 변화에서 비롯되는 측면도 크다는 것을 염두에 두자.
지금 세계 각국의 정치는 퇴보하고 있다. 원리주의와 폐쇄주의가 대세인 시기이다. 왤까? 그간의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에 대한 반발은 아닐까? 인류가 항상 진보해온 것만은 아니다. 고대 아테네도 결국 멸망했다. 사람은 불합리한 동물이기에, 기술 발전이 다수 인간을 위협하면 반기를 들 가능성도 있다.
세상은 급변하고 있다. 불공평한 고용과 자본에 대한 이슈는 늘 우리를 괴롭힌다. 계급화되어가는 경제 현실에 대한 반발도 심해지고 있다. 당장 우리나라 정치현실을 보자. 기득권의 오랜 독식이 임계치를 넘어서 대중적 저항에 직면한 현실이다. 원래 이런 게 혁명인 것이다. <한국의 제2차 민주주의 시민혁명>
4차 경제혁명을 논하기 이전에, 이미 바뀌고 있는 각 산업분야 패러다임의 흐름에서 누군가가 적절하게 조율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국제적인 경제 흐름에도 주목하면서 너무 앞서지도 않고, 적당하게 끼어가는 전략도 좋을지 모른다. 아직 도래하지 않은 미래를 놓고 예단하여, 국내에서 먼저 대규모 구조조정 따위를 시도하진 말라. 관료들도 산업혁명을 대비하여 국가 연구예산을 투입하며 경중을 정확히 따지라. 어떤 외국 석학이 말했다고, 알파고가 이세돌 이겼다고 당장 인공지능이 당신을 위협하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항공-로켓 기술에 더 투자하는 것이 우리에겐 장기적으로 효율적일지도 모른다. 암만 예산 투입해도 국내 기반이 부족한 분야는 예산낭비로 끝날 수 있다. 재벌 관점에서 유리한 곳으로 예산을 투입하지 말라. 모두에게 공평해야 그것이 진정한 혁명이다.
아이러니 하지만 우주비행사라는 직업은 조만간 사라질 듯하다. 더 이상 막대한 예산을 들여서 우주비행사 훈련을 시키기보다는, 인공지능 오토파일럿이나 로봇이 우주에서 사람을 대신하게 된다. 그런데 우주비행사가 사라진 우주에 <우주여행객>들이 대신 들어설 것이다. 이런 게 4차 산업혁명에 더 부합하는 개념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