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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랑 Jun 03. 2017

이상한 나라의 브런치

브런치 작가는 어떤 사람들일까?

짧은 기간이지만 브런치에 가입하고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늘 '이색적인 브런치 환경'에 호기심이 들곤 합니다. 마침 즐겨 듣던 팟캐에서 '브런치'에 대해 제삼자적 관점에서 분석하는 내용을 듣곤, 브런치 내부에서 느끼는 것과 외부에서 보는 온도차가 확연히 느껴지더군요. 다른 작가님들은 왜 브런치에 오셨나요? 제가 보는 느낌을 적어봅니다.



폐쇄성


브런치는 알다시피 가입만으로는 글을 쓸 수 없습니다. 심사를 통해 작가 승인(등업)을 거쳐야 하고, 그 심사과정에서 꽤 많은 비율로 탈락하기 때문에 <그들만의 리그>라는 폐쇄적 인식이 외부에 퍼질 수 있습니다. 현재 브런치 작가로 등록된 분들은 약 2만 명가량이 된다고 합니다. (기사에 나와있더라고요) 그리고 브런치 작가 신청 시 승인받는 비율은 최근에 약 5~10% 사이라고 얼핏(?) 들은 기억이 납니다. 심사 탈락 후에 다시 재도전하는 분들을 감안해도, 2만 명의 브런치 작가가 탄생하기 위해서 그동안 10만 이상의 신청자가 있었다는 뜻이겠죠.


브런치는 탄생한 지 고작 2년도 채 안 지났습니다. 초기에는 아마 적극적인 작가 유치를 위해서 각계에서 활동하던 분들을 섭외하기도 했을 테고, 작가 신청 시 승인 비율이 약간 높았겠죠. 그러나 <상업적인 광고, 홍보글>을 배제하는 정책 때문에 차츰 탈락 비율도 높아졌을 겁니다. 인터넷 전체적으론 순수하게 글쓰기 하는 분들이 의외로 많지 않거든요. 상업적인 인터넷 생태계에서 <순혈주의>를 고집하는 브런치 정책은 다소 낯설기도 합니다.


무튼, 그동안 브런치에 신청했다가 탈락한 분들은 아무래도 브런치 시스템에 대해 호의적이긴 쉽지 않습니다. '날 받아주지 않은 공간'에 대해서는 무시하는 게 정상적 반응이죠. 반면에 그런 폐쇄성 때문에 뭔가 독특한 공간을 원했던 이들이 계속 브런치로 조금씩 모여들고 있습니다.


브런치, 아는 사람들은 알지만 모르는 이들은 전혀 모르는 공간이 되었다.



카카오는 왜 브런치에 투자만 하는가?


기존의 블로그, 포스트 등은 해당 포털 사이트에 쌓이는 콘텐츠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부가적인 수익을 창출했습니다. 어찌 보면 자발적인 개개인들의 콘텐츠를 공짜로 써먹는 셈이 되죠. 물론 영리한 개개인들(?)은 바이럴 마케팅이나 홍보, 또는 각자의 목적을 위해 포털을 활용합니다.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라고 할까요? 네이버 같은 경우, 예전에 '파워블로거'제도를 적극 활용하여 개인 콘텐츠 생산자들을 끌어모았습니다. 처음엔 만 명 단위로 뽑다가, 차츰 파워블로거들의 상업화로 역효과를 겪으면서 숫자를 줄여서 막판에는 고작 100여 명 뽑았고, 결국 폐지했습니다.


네이버 파워블로거는 선정 연도가 중요하다. 마지막 선정자들이 진정한 파워블로거들이었다.


네이버는 이제 더 이상 콘텐츠를 구애하지 않아도, 알아서 콘텐츠가 모이는 수준이라 자평하는 듯합니다. 공룡의 자만일까요? 신기하지만 최근에 네이버는 개개인이 '순수한 글쓰기'를 하기엔 점점 삭막한 곳처럼 느껴집니다. 조직화, 시스템화 된 공간은 이곳 브런치에 머물고 있는 님들이 원하는 <작가적 자유로움>에 어울리지 않죠. 다른 말로는 작가 친화적인 공간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기성 작가들이 강조되고, 대형 기획사들이 전면에 떠오르는 포털 시대는 개인들에겐 맥 빠지는 일이죠.


우리나라 포털 역사에서 한때 다음은 네이버보다 앞섰었죠. 그러다가 추월당했고, 스마트폰 시대에 카카오톡이 등극하면서 다시 '카카오-다음'이 되어 네이버를 재추격 하고 있습니다. 그런 와중에 카카오가 이곳 '브런치'를 만들었죠. 얼핏 보기엔 기존 콘텐츠들에 비해 차별화된, 조금 더 필터링되고 정제된 텍스트 위주의 콘텐츠를 모으려는 의도라고 보입니다. 텍스트는 모든 콘텐츠의 가장 기초적인 재료가 되기도 하죠. 게다가 상업적인 가공 콘텐츠를 배제하고 있습니다. 이걸 요리로 비유하자면....


- 텍스트 : 밭에서 수확한 농산물 식재료, 또는 바다에서 갓 잡은 해산물.

- 콘텐츠 : 그런 식재료들을 적절하게 조리하여 맛있는 음식으로 조리하는 레시피.

- 상업화 : 레시피를 가지고 진짜 식당에 소개하여 손님들이 맛보게 하고, 수익을 얻는 과정.


조금 표현이  어색한가요? :)

물론 갓 잡은 싱싱한 물고기를 그냥 횟감으로 날름 삼키는 레시피도 있습니다. 텍스트 그 자체도 훌륭한 요리가 되어 독자들에게 직접 다가설 수 있죠. 그러나 텍스트는 확산성이 낮습니다. 좋은 텍스트는 웹툰, 방송, 동영상의 기본 요소가 되어 훨씬 많은 이들에게 직접 다가설 수도 있거든요. 현재 브런치는 가공되지 않은 원초적인 식재료를 수집하는 듯 보입니다. 반면에 대중적인 접근성은 떨어집니다. 거대한 저온 식재료 창고를 건설하고는, 작가들이 계속 텍스트만 쌓게 하고 있죠.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텍스트를 모으는 게 아니라 작가들을 수집하고 있는 듯 보입니다. 이런 시스템을 유지하려면 예산이 꽤 필요합니다. 들어간 돈에 비해, 아웃풋(수익)은 비교도 안되게 적을 것이 당연하게 보이고요. 이런 브런치가 언제까지 존속될지도 약간 걱정될 지경입니다.


네이버라면 당장 브런치 글들을 가공해서 마구 뿌려 트래픽을 유발했을 것이다.



이상한 나라의 브런치


브런치에 관한 글들을 찾아서 읽어보기도 했습니다. 어떤 글에서는 저자  왈 "가봤더니 에세이, 여행기가 대부분이고 다양하지 못하더라." 맞는 말입니다. 브런치에 글 쓰면서 '브런치답게' 써야 한다는 중압감은 누구나 느끼실 거예요. 마치 책을 쓰듯 정제된 화법과 정갈한 문장이 많습니다. 블로그처럼 편하게 쓰는 분들도 있지만, 작가적 의무감이랄까요?


또한 콘텐츠의 주제와 저작권 때문에 마구 퍼다가 짜깁기하지 못하므로 한계성도 있다고 합니다. 이것도 맞는 듯 보입니다. 독창적인 콘텐츠는 쉬운 말이 아니죠. 지금도 옆 동네 블로그에 가면 온통 짜깁기된 글들이 넘쳐납니다. 반면에 브런치는 최초 소스에 가까운 원천 콘텐츠가 많죠. 그런 콘텐츠는 생산성도 떨어지고, 개인 입장에서는 주제도 한정적입니다. 직접 찍은 사진과, 나만이 아는 노하우가 적용된 글쓰기에서 그나마 유리한 게 에세이, 여행기죠. 그런데 그런 브런치 작가들의 글을 보면 이미 예전에 상당한 수준에서 글쓰기 훈련이 된 분들이 많습니다. 다른 곳에서 쉽게 해왔던 다작을 포기하고, 브런치답게 글 쓰려니 고심하는 게 "똭" 보입니다.


아까 말했듯, 브런치가 왠지 차별화되고 고상한 <작가들의 공간>이라는 이미지 덕분에 많은 이들이 신청했다가 탈락합니다. 탈락한 분들은 아무래도 브런치 글의 주된 소비층이 되기 어려울 겁니다. 아마도 브런치 글의 최대 독자층은 <브런치 작가님들>이 아닐까요? 카카오가 브런치 글을 자사의 매체들에 적극적으로 띄우지도 않는 상황에서...


요즘 출판계에 재밌는 현상이 있죠. '책을 내는 작가들이 서로 책을 사준다.' 이것이 문화적 퇴보 현상인지, 아니면 글을 제대로 읽던 주요 소비층이 이제는 직접 글을 쓰는 수준으로 진화한 것인지는 불분명합니다. 글을 즐겨 읽는 이들은 글을 잘 쓸 가능성이 높아지고, 차츰 쓰다 보면 인생 버킷리스트로 <나만의 책 출간>이 목표가 되는 게 자연스럽죠. 그러나 책을 사서 읽어줄 독자층이 과거에 비해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브런치는 이런 현실에서 글을 즐겨 읽고, 쓰며, 책을 내거나, 내려고 하는 이들이 모여드는 최후의 낙원이 되어가는지 모릅니다. 일단 대중적이진 않아요. 세상엔 브런치를 모르는 사람이 훨씬 많습니다. 카카오도 브런치를 적극 홍보하지 않고 있고요. 그럼에도 글을 좋아하는 이들이 알음알음 브런치에 계속 모이고 있습니다. 확산속도는 비교적 느리지만, 브런치북 콘테스트가 계속 진행되면서 참가자와 출품작 숫자가 증가세를 유지하는 것이 증거라고 할 수 있겠죠. 이번 브런치북에 1,600여 명의 작가들이 2,400여 작품을 출품했다고 합니다. 전체 브런치 작가님들 중에서 적극적이지 않은 분들 빼고는 1할이 넘는 분들이 참여한 셈이죠.


브런치는 대중에겐 알려지지 않은 곳이다. 그러나 글 좋아하는 이라면 한 번쯤 접해봤을 곳이기도 하다.



브런치 작가?


사실 저는 <작가>라는 표현을 그다지 좋아하진 않습니다. 스스로는 <작자>라고 하죠. 좁은 의미에서 작가란, 전시회나 발표회, 출간 등을 통해서 등단한 사람을 뜻하기도 합니다. 어떤 협회에 의해 인증받은 이들을 뜻하기도 하고요. <브런치 작가>라는 호칭은 IT업체인 카카오 브런치가 인증한다는 말입니다. 기존의 어떠한 문학, 예술적 등단 시스템과도 이질적이죠. 그럼에도 미래에는 이러한 퓨전 작가 시스템이 더 가능성 높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얼마 전에 얼핏(?) 듣기론, 지금 브런치에는 기존에 베스트셀러 작가님들도 여럿 계시고, 유명인들도 꽤 있으시더군요. 이미 책을 내서 히트 쳤는데, 다시금 브런치에 기고하여 책을 낼 기회를 엿보시는 분들이 있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이해가 안 되더군요. 하지만 요즘 사정이 그렇다고 합니다. 브런치는 책을 내려는 분들에게 돌파구를 제공하기도 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다고 볼 수 있습니다.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자비출판에 비해, 1인 POD 출판은 향후 대세가 될지도 모릅니다. 기존에는 출판사에 투고하여 기획 출판하거나, 공모전 등으로 출판을 했겠지만 그런 기회는 차츰 줄어들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책을 출판하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이제는 그렇게 출간된 책이 다른 목적을 위한 과정이 되기도 합니다. 브런치가 차츰 작가님들 개개인의 출간을 돕는 방향으로 나서는 것도, 그러한 작가적 니즈에 부응하는 당연한 결과겠죠.


책을 내는 이들은 크게 두 가지 목적이 있다. 하나는 자기만족과 성취감, 또 하나는 도약을 위한 발판.



카페에서 커피 한잔 마시며 남는 시간에 짧게 쓰려고 했는데, 커피 다 마셨습니다. 이만 줄이고 다음에 기회 되면 생각나는 이야기를 덪붙여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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