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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랑 Apr 09. 2017

브런치 표류기

어느 화성인의 이야기

어디에서도 안 했던 내 이야기를 해본다. 요즘 낯선 브런치에서 헤매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기 위한 브레이크 타임도 필요한 듯 느껴진다. 아니, 낯설다기보다는 푸근하지만 어색하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나(님)는 오래도록 다른 세계에서 살아왔는지 모른다. 너(님)들께서 트윗과 페이스북을 통해 서로 공감대를 형성하며 나아갈 때, 거의 은둔하고 있었다. 단 하나의 커뮤니티, 그 속에서도 폐쇄된 공간에 십여 년을 머물며 세상을 바라보는 유일한 창으로 느끼며 살아왔었다. 그러나 아늑했던 아지트는 어처구니없는 사건으로 폐쇄가 되었고, 초신성이 폭발하면 수 억년을 항성 깊숙한 내부에서 생성해온 중원소들이 우주로 쏟아지듯, 낯선 공간으로 튕겨져 나가서 헤매는 순간이 시작된다.


사이트 폭발 직전에 이미 몇 가지 전조 증상이 있었다. 그곳에 써왔던 만개가 넘는 글들이 외부로 무단 유출되어, 어떤 이는 블로그에 자기 글인양 통째로 퍼 날랐고, 심지어 메이저 언론 사설에도 떡하니 여러 개가 짜깁기 되어 엉뚱한 전문가의 탈을 쓰고 올라와 있었다. 그래서 남들이 다 한다는 블로그를 만들었고, 그곳에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원작자 시비를 가리기 위해 주요한 글들을 몽땅 아카이브 해놓게 된다.


흥미위주의 과학 블로그, 기사들은 많지만, 오로지 단 하나의 기술에 대해 쓰인 딱딱한 블로그에 백만이 넘는 방문객이 찾아주고 2백만 가량의 조회수를 보여준 것은 열악한 국내 사정상 이례적이다. 아쉽지만, 그 세계에는 제대로 아는 사람은 많아도, 제대로 표현하는 사람이 극히 드물기 때문이리라. 그러면서 다른 블로그들이 꽤 상업적이란 것을 느끼게 되었다. 블로그의 상업화 기로에서 포기했다. 아무래도 그런 선택은 성격과 맞지 않다.


갈 곳 없는 이는 여전히 심심했다. 커뮤니티 사이트는 서로 수다 떨고 대화를 한다. 하지만 과학기술 블로그는 일방형이기 쉬워서 반응이 없다. 설령 반응하고 싶어도 다른 반박 논증을 쉽게 제기하기 힘든 상황도 한몫했을 것이다. 차라리 흔한 정치 이야기를 했으면, 치열한 말다툼 속에서 운우지락을 즐길 수 있었을지도...


외계 행성과 같은 몇몇 커뮤니티도 전전해봤고, 어떤 곳에서는 글을 쓰면 수 천~ 수 만의 조회수로 반응해줬다. 그러나 대화는 없었다. 그저 일방적인 정보 전달에 그치는 이야기는 재미없다. 딴지일보에도 잠시 머물렀다. 그곳은 비교적 글쓰기가 자유롭고, 제2의 중흥기를 맞이한 참이라서 정보유통 매개체로도 유용했던 시기였다. 딴지에 올린 기사글 수십 개 중에서 조회수가 10만 단위를 넘기는 글들이 나오기 시작했었다. 10만, 20만, 30만... 그저 좋아하는 분야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이들이 많다는 것이 즐거웠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대화는 없었다."


지금의 딴지일보는 최근 인터넷에 넘쳐나는 어떤 무리들에 점거되어, 기사를 써도 조회수 1만을 채 넘기기 힘든 열악한 시기로 회귀했다. 더 이상 다양한 독자들이 읽어주는 매체가 아닌 이상, 아쉽지만 잠시 접어야 했다. 하이에나들에게 밥을 주긴 싫다는 게 더 정확한 심정이다.


계속된 유랑 속에서 드디어 오프라인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모니터에 떠오르는 글자만이 아닌, 직접 사람과 사람이 만나 대화를 나누는 커뮤니케이션에 나갈 순간이 된 것이다. 대화가 없으면 서로를 이해하기 힘들다. 무의미한 행위라고 여겼던,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접목을 어쩔 수 없이 시도한다. 그리고 벽에 부딪친다.


너무나 당연한 것들이 일상에서는 다수에 의해 핍박받고,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남을 비하하는 일이 그렇게 많다는 게 새삼 놀라웠다.


듣기 좋은 소리는 달콤한 유혹이다.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어야 살아있는 사람이란 생각에, 쓴소리를 잔뜩 내뱉곤 커뮤니티를 접는다. 예전부터 그랬지만, 지금도 나는 혼자다. 이제 더 이상 다 함께 즐길 수 있으리란 희망을 버렸다. 그 무렵 브런치가 눈에 들어왔다.




브런치 이전에도 여러 공간을 기웃거리며 글 쓸 여건이 되는지 살펴보았다. 페이스북은 왠지 어색해서 그냥 안 한다. 트윗은 다들 하라기에 했지만, 친목질을 못하는 성격상 트친도 별로 없는 듣보 트윗이다. 그리고 트윗과 페이스북 등은, 이미 다른 유명인들이 점거하여 묘한 수직관계가 형성되어 있었다. 그들은 매우 배타적이라는 느낌이 든다.


브런치는 조금 색다르다. 일단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이들이 많이 모여있다. 그런데 하나같이 비슷한 주제와 향기만 풍기는 듯 보인다. 왤까? 너무 고상한 것은 아닐까? 어느 한적한 주말 오전에 멋진 호텔 로비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는 듯한, 이런 분위기는 숨 막힐 듯하다. 세상은 호텔 안 로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길에 나서면 풍겨오는 음식 찌꺼기 냄새와 발길에 걸리는 쓰레기가 공존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브런치의 글쓰기 시스템은 매우 편리하다. 이것은 인정한다.


지금껏 써온 수많은 글들, 그 글을 쓰기 위해 했던 일련의 작업 과정을 생각하면, 얼마나 쓸데없는 치장에 시간을 낭비했는지 알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글에 담긴 핵심 키워드들과 내용 전개를 위한 텍스트들이다. 그럼에도 텍스트로만 구성된 글이 대중성이 없다는 이유 때문에, 글을 돋보이기 위해서 엉뚱한 사진과 그럴싸한 그림을 수없이 붙이게 된다. 심지어 글 속에 또 다른 글들이 뒤엉키게 되고, 여러 글타래들이 연관성도 떨어진다. 그런 잘 포장된 글들이 얼마나 불특정 다수에게 인기를 끌게 되는지 안다면, 그 유혹을 져버리기도 힘들다.


글을 써서 공개할 때, 모든 작자들은 그 글이 얼마나 생명력을 갖게 되고 널리 퍼져나가는지 궁금하게 된다. 조회수, 인용수, 추천수, 그리고 댓글에 연연한다. 첫 댓글이 좋아야 댓글의 흐름도 정해지는 점 때문에, 어떤 작자는 댓글에 매우 민감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런 것은 브런치에서 별 소용이 없어 보인다. 이곳에선 읽을 사람도 한정적이라서 댓글도 없고, 그냥 속으로 삼킨다. SNS에 퍼 나르기 위한 플랫폼으로서의 브런치는, 페이스북에 밀려서 파급력도 떨어진다. 정보의 축적량과 접근성에서는 네이버 블로그에 상대가 안된다. 그러나 브런치의 가능성은 분명히 있는데, 브런치팀은 예전에 보았던 어떤 편집부처럼 기회가 왔을 때 제대로 살리지 못하는 듯하다.


절대로 작가들에게 끌려다니지 말라. 작가를 위한 글쓰기 플랫폼은 없다. 독자를 먼저 생각하라.


글을 보면 그 글의 쓰임새는 금세 정해진다. 고상하고 어렵게 쓰인 긴 글은 독자층의 한계가 여실하다. 물론 이미 유명한 사람의 글이라면 글쓴이의 품격을 높이기 위한 액세서리 역할은 충분하다. 그러나 필명을 가리고 블라인드 테스트를 한다면, 지금 나온 베스트셀러 상당수는 곧바로 휴지통으로 직행하리라. 보기 편한 글이 좋다. 적당한 길이의 짧은 글이 더 좋다. 독자의 눈높이에 맞춘 글이 제대로 된 글이다. 그런 글은 쓰기 상당히 어렵기도 하다.


브런치를 통해서, 글쓰기를 읽는 이의 눈높이와 맞추는 연습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팩트 폭격으로 상대의 기선을 제압하기 이전에, 정말 다른 이들이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가 뭔지 짐작하는 것이다. 같은 눈높이에서 대화를 나누고 싶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내 생각의 우물에도 작은 물결을 일으키고 싶다. 글쓰기는 대화의 기술 중에 한가지일뿐이다. 그리고 그를 통해서 <글짓기>까지 이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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