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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랑 Jun 20. 2017

Поехали

지구별을 떠나기 위한 여정의 시작


너의 조그만 별에서는 의자를 몇 발짝 뒤로 물려 놓기만 하면 되었지.

그래서 언제나 원할 때면 너는 석양을 바라볼 수 있었지……

“어느 날 나는 해가 지는 걸 마흔세 번이나 보았어!”

그리고는 잠시 후 너는 다시 말했지.

“몹시 슬플 때에는 해지는 모습을 좋아하게 되지……”

“마흔세 번 본 날 그럼 너는 몹시 슬펐니?”

그러나 어린 왕자는 대답이 없었다.

                                                              - 생텍쥐베리의 <어린 왕자> 중에서                                                 


  아주 오랜 일이다.     

  유카탄 반도의 캉쿤이란 곳이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았던 시절, 에어컨도 없는 구닥다리 닛산 자동차를 몰고 정글을 헤맨 일이 있었다. 지도를 따라 꾸불꾸불 길을 지나자, 저 멀리 고대 유적이 어렴풋 보이기 시작한다.

  "금일 파업 중!" 수백 km를 고생하며 달려온 보람이 허무하게 무너졌다. 아쉽지만 나지막이 보이는 피라미드의 윗부분만 스치고 돌아온 기억이 생생하다.

    

  해 질 무렵, 바닷가 숙소로 돌아와 마음 한구석 불만을 털어내기 위해 산책에 나선다. 카리브해를 배경으로 한 <진홍의 해적>이란 영화가 기억나는가? 그때 눈에 들어온 석양은 너무나 강렬하여 표현하기 힘든 색깔이었다. 진홍색이란 무엇인지 진정 느낄 수 있던 순간.  하늘과 바다를 동시에 핏빛으로 물들이던 태양은 서서히 자주색 베일로 얼굴을 가리며 사라져 간다. 수천 번 봐왔던 해지는 모습 중에서 아주 특별한 하루로 남았다.     

  <어린 왕자>는 생텍쥐베리 자신을 투영했는지 모른다. 마음이 울적할 때 노을을 바라보며 감상에 빠진 추억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린 왕자는 아주 조그만 소행성 B612에 살고 있었다. 그저 의자를 몇 발자국 뒤로 물려 놓는 것만으로도 다시 떠오른 석양을 볼 수 있는....   

  

  그때 나도 어린 왕자처럼 의자를 뒤로 물려서 강렬했던 진홍빛 석양을 마흔세 번 볼 수는 없었을까? 사실을 말하자면 이곳 지구별에서는 마흔세 번 볼 수 없다. 그러나 하루에 열여섯 번 볼 수 있는 곳이 아주 가까운 곳에 존재한다. "그곳은 지금 당신 머리 위로 펼쳐져 있다." 서울-대구 정도의 거리만 올라가면 된다. 누구도 보지 못한 아름다운 일몰을 90분마다 감상할 수 있으리라.


코룔뇨프 :  
    “예비 단계... 중간... 엔진 점화... 이륙! 귀관의 즐거운 비행을 기원한다. 모든 것이 정상이다.”
가가린 :
    “Поехали!” (빠예할리 : 가자!)
                                                                                               - 1961년 4월의 어느 날


  잊혀진 이야기....     

  우주에 갔던 용기 있는 자들의 말 중에서 하나만 떠올려 보자. 혹시 이것이 생각나지 않는가? "이것은 한 인간의 작은 발자국이지만, 인류에게 있어서는 거대한 도약입니다." 달에 첫 발을 내딘 닐 암스트롱이 했던 말이다. 한번 상상해보라. 나름 거룩하지만, 조금 상투적인 멘트가 아닌가? 저 문구를 생각해낸 사람이 암스트롱 본인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수억 명의 인류가 기다렸던, 달에서 들려온 첫 음성은 어쩐지 어색했다. 외계 별에 처음 내려서는 우주인의 흥분과, 심장이 "쿵쿵" 뛰는 듯한 긴장감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이것은 인류 첫 우주비행사인 유리 가가린이 우주로 떠나면서 내뱉은 말이다. "빠예할리!" 이 단어 하나에 모든 것이 함축되어 있다. 우리가 잊고 지내온 이야기들을 해보자. 세르게이 코룔뇨프는 우주를 처음 정복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사람이다. 역사는 늘 1등만 기억하고, 2등은 잊는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의 기억에는 우주정복에서 2등을 했던 폰 브라운 박사만 남아있다. 마찬가지로 우주인 중에서 1등을 했던 가가린이 무슨 말을 했는지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왤까? 혹시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기 때문은 아닐까?

    

"역사상 최초로 인류가 우주에 진출했습니다만, 그 사람은 빨갱이입니다." - 당시 미국의 보도 내용.    

 

  가가린이 우주에 가서 "지구는 푸르다."라고 했다는 둥, 온갖 멋있는 말에 대한 썰이 난무한다. 하지만 모두 거짓이다. 당시에는 우주로 떠난 가가린과 직접 교신할 기술이 없었다. 떠나면서 했던 짤막한 말이 전부였고, 나중에 지구로 돌아와서 소감을 말하게 된다. "지구는 마치 푸른 베일로 감싼 신부와도 같아 보였다."가 훗날 언급한 것이다. 그는 우주로 떠나면서 느끼는 모든 감정을 매우 짧고도 비장하게 말했다. 순식간에 불덩이가 되어 다시 어머니 별로 추락하게 될지도 몰랐다. 아니면 영원히 지구를 맴돌며 돌아오지 못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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