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기술이자 습관이예요
분석력이 좋다는 얘기를 들으면 기분이 좋습니다. 예의상 던지는 빈말이라도 좋습니다. 분석력이라는 것이 타고나는 성질의 것이었다면 이 정도로 좋아하진 않았을 것 같습니다. 분석력은 노력 여하에 따라 습득하고 또 익숙해 질 수 있거든요. 습관에 가까운 기술입니다.
기술은 특정 작업이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식과 능력을 활용하는 것으로, 사물을 잘 다룰 수 있는 방법을 말합니다. 습관은 학습된 행위가 되풀이되며 생기는, 비교적 고정된 반응 양식을 말하죠. 분석력이나 사고력은 반복적인 연습과 실제 활용을 통해 학습되고 또 숙달됩니다. 습관과 기술의 범주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거죠.
이번 포스팅은 그 습관과 기술을 끌어올리는데 도움될 만한 또다른 책들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작게는 인간 심리의 미묘한 움직임부터 크게는 집단과 인류의 코드까지 뭐가 많긴 하군요.
생각에 관한 생각 (Thinking, Fast and Slow_대니얼 카너먼_2011)
우리 뇌는 약 95%의 결정을 직관(Fast System)에 의존합니다. 생존에 필요한 에너지 효율 때문이죠. 우리가 특정 뉴스를 보고 관련 지분매각을 결정한다거나 브랜드 로고만 보고 제품을 고르는 행위가 이에 속합니다. 효율 문제긴 한데 빠르게 결정하다보니 확증 편향, 기저율 무시, 손실 회피 같은 부작용이 생깁니다.
예를 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물건의 가치를 실제 시세보다 2~3배 높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바로 ‘소유 효과’죠. 일상에서 이런 편향을 인식하는 작업은 분석력을 확실히 올려줍니다. 무의식적 판단 패턴을 의식화하는 과정 자체가 사고의 질을 높이는 훈련이 되거든요.
이 책은 데이터 해석 전에 필터링해야 할 인간의 본능적 오류를 보여줍니다. 의도적으로라도 다양한 정보를 고려하고 직관과 분석의 균형을 잡아야한다고 말합니다. 나와 반대되는 의견을 일부러 접하고 '편향은 존재한다' 인지하고 들어가는 것 만으로도 실수가 크게 줄어듭니다. 머릿속에서 자체 검토 위원회가 상시 열리니 상황에 따라 직관(Fast System)과 분석(Slow System)을 번갈아 사용하는 우리 뇌도 한층 효율적으로 쓸 수 있게 됩니다.
인지편향을 깨닫는 건 무척 어려운 일입니다. 삶의 과정에서 드러날 때마다 발견하는 게 중요하죠. 내재되어 있던 편견을 발견할 때마다 '내가 왜 이렇게 생각했지'라는 질문을 빙자한 반성이 필요합니다. 이 과정이 누적되면 자연스럽게 사고의 질이 높아집니다. 복잡한 문제도 입체적으로 바라볼 여지가 생깁니다.
“직관은 편견의 온상이지만, 동시에 창의성의 씨앗이다. 중요한 건 두 시스템의 협업을 설계하는 일이다.”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88가지 심리실험(나이토 요시히토_2020)
읽는데 부담이 없습니다. 앞서 소개한 '빅데이터를 지배하는 통계의 힘'과 비슷한 부류죠. ‘싸구려 맥주에 고급 라벨을 붙이면 실제로 맛있다고 느끼는가?’,‘관중이 많은 마라톤 코스에서 주자들의 기록이 향상되는가?’ 같은 질문들이 이어집니다. 생뚱맞지만 한 번은 궁금했을 법한 내용들이라 펼쳐보게 되는 그런 마력이 있습니다.
흔히 우린 인간은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한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여기에선 '홈경기라도 너무 과하게 응원하면 되려 긴장해서 승률이 떨어진다', '일할때 누가 지켜보면 확실히 속도가 빨라진다' 같은 얘길 하죠. 인간이 얼마나 체계적이고 예측 가능하게 비합리적인가를 다양한 실험과 사례로 보여줍니다.
댄 애리얼리의 상식 밖의 경제학에서도 비슷한 얘기들이 나옵니다. 소비자들은 같은 아스피린이라도 1센트보다 50센트를 택한다. 왜? 그게 더 효과가 좋다고 느끼니까. 어린이집에서는 부모가 늦게 아이를 데려가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벌금을 도입했는데, 오히려 부모들의 지각 횟수가 증가했다. 왜? 벌금이 되려 돈으로 시간을 사는 명분이 되었으니까. 상식적인 거 같으면서도 상식적이지 않은 존재가 인간이 아닌가 싶습니다.
(상식 밖의 경제학도 괜찮습니다만) 그래도 이 책을 소개하는건 문장의 전개방식 때문입니다. 전문용어가 많이 등장하지 않고 '이런 현상이 있는데 관련된 연구 논문은 이렇고 실험으로 얻어진 결과로 000이라 부른다' 라는 식으로 풀어나갑니다. 변인통제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성실히 언급하고 있어서 그래도 신경을 많이 썼단 느낌이 듭니다. 다 읽고나면 하얀 셔츠를 사야겠다는 생각이 물씬 들지만요.
“통계 수치보다 그 배경에 있는 인간의 비합리성이 진짜 스토리텔러입니다.”
세계사 인류학자 (The WEIRDest People in the World_조지프 헨리치_2020)
과거 포스팅에서 가급적 데이터 분석에서 특정 연령대나 성별 등 인구통계학적 변수는 배제하는 게 좋다고 말씀드린바 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놓치는 게 너무 많아지거든요. 요즘엔 가진 경험이나 가치관 같은 심리변수를 권하는 추세입니다. 아마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주제와도 이어지는 맥락이라 생각합니다.
이 책에선 WEIRD(Western, Educated, Industrialized, Rich, Democratic : 서구권의 고학력, 산업화된, 부유하며 민주적인 사회에서 수집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연구를 지칭) 프레임을 지적합니다. 전 세계 인구 12%에 불과한 WEIRD 집단이 연구 샘플의 대다수를 차지하는게 말이 되냐는 얘기죠. 유용한 부분도 있는 프레임이지만 일견 합당한 지적입니다.
WEIRD엔 여러 단점이 있지만 문화 간 다양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획일화된 관점을 보인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습니다. 인간 행동과 심리를 이해하는 데 특정 문화적 맥락이 하나의 기준처럼 작용하고 일반화되면 그 결과의 신뢰성은 떨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이 책에서는 문화적 변수에 주목하라고 말합니다. 주로 언어를 다루는 저에겐 중요한 대목입니다. 일례로 아프리카 부족 사회에서는 개인주의적 사고가 병리로 간주되며, 동아시아에서는 집단의 조화를 중시하는 ‘관계적 인지’가 발달했습니다. 의사소통 패턴이나 표현 역시 다른 의미가 작용할 여지가 충분히 있는거죠. 주로 한글을 다루니 활용의 여지는 적습니다만, 해석의 기준에 대한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기회였지 않나 합니다.
“문화는 문제 해결의 방식을 규정하는 보이지 않는 알고리즘입니다.”
이 세 권은 각각 다른 방향에서 분석력을 끌어올려 줍니다. 인지오류라는 함정의 위험, 실험적 검증, 문화적 변수을 통해 사고의 폭을 넓혀줍니다. 이들을 종합하면 카페 메뉴판 디자인, 지하철 혼잡도 패턴 같은 사소한 일상조차 분석의 대상으로 보이지 않을까요.
아, 그게 좋은 건지는 잘 모르겠군요(긁적).